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무관심 속 손쉽게 갉아 먹힌 건보재정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기자수첩]전북 익산 모 약국 약사법 위반 의혹

전북경찰청 원광대학병원 한 약국 약사 송치

3년간 390억 원 요양 급여비 부당 수령

건보공단 '강 건너 불구경' 대응 논란

노컷뉴스

"면대(면허 대여) 약국."

법인이나 개인에게 약사 면허를 대여해 약사가 직접 약국을 운영하지 않으면서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를 불법적으로 타내는 약국을 말한다.

'면대 약국'은 사무장 병원과 함께 건보공단 재정을 갉아먹는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지만, 줄줄이 새는 건보 재정을 지키는 사람이 없다.

건보재정을 갉아먹는 장본인과 지키지 못한 사람들은 따로 있지만, 갉아진 건보재정은 결국 평범한 사람의 주머니에서 채워질 전망이다.

기자는 지난해 말 한 재단이 부지 내 약국을 불법 운영하며 약사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을 취재했다.

이 과정에서 전북경찰청이 해당 사건을 건보공단으로부터 수사 의뢰받아 검찰에 송치한 사실을 확인했다.

일반적으로 건보공단은 면대 약국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한 후 의심이 드는 경우 관련 자료를 경찰로 보내 수사 의뢰를 한다.

건보공단은 전북경찰청에 원광대학병원 인근의 한 약국이 2000년부터 2021년까지 '면대 약국'으로 2천억 원의 요양급여를 불법 편취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의뢰했다.

흔히 돈에 대한 기억은 돈을 준 사람이 받은 사람보다 더 잘 기억한다고 했던가. 건보공단이 산정한 부당 이득 2천억 원은 자의적인 금액이 아닌 수십 년간 쌓은 노하우를 기반한 금액이다.

실제 건보공단은 故 조양호 한진그룹 전 회장의 '면대 약국' 운영을 확인하고 1천억 원 상당의 부당 이득 환수 절차를 진행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약국의 부당 이득은 2천억 원에서 경찰의 수사 이후 390억으로 대폭 줄었다.

전북경찰청은 건보공단이 수사 의뢰한 원광대학병원 부지 인근 약국 소속의 A 약사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약사 면허를 대여한 후 다른 곳이 운영케해 390억 원 상당의 요양 급여비를 부당 수령한 것으로 보고 검찰에 송치했다.

산정된 액수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다. '수사 편의'와 같은 의혹을 제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형사사건의 경우 공소시효 5년이라든지(그래도 2016부터 산정됐어야 한다), 갚을 능력이 되지 않다든지 등 '반의반 토막' 난 부당 이득 환수금에 대한 짤막한 설명이 필요한 것뿐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금액 축소에도 경찰은 '공무상 비밀 누설 죄'에 해당해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경찰은 지난 13일과 지난 21일 두 차례에 걸쳐 도내 아파트 건설 현장을 다니며 돈을 갈취한 노조 사건을 대대적으로 언론에 알린 바 있다.

이 두 사건에 대한 경찰의 언론 대응의 차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노조에 대한 부분은 정부의 최우선 과제다"며 "건설 현장 불법 행위 근절에 대한 보여주기식 수사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노조에 대한 것은 공무상 비밀 누설 죄에 해당이 안 되는지, 공무상 비밀의 가치는 수사 당국의 취사선택 영역인지 반문하고 싶어지는 대목이다.

결국 대폭 축소된 390억 원에 대한 판단은 법원의 손으로 떠났다. 기소될 터이고 법원의 결정에 따라 사실상 더 줄어든 금액으로 환수 금액이 결정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노컷뉴스

익산 부근의 한 약국.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습니다. 김대한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환수 금액이 대폭 줄어든 배경에는 건보공단의 무관심도 큰 몫을 차지한다.

기자를 통해 상황을 접수한 건보공단 관계자는 "경찰이 수사했으니 뭐 알겠다고 해야죠"라고 대답했다. 수사 의뢰 당사자임에도 "경찰에 금액이 축소된 이유는 듣지 못했다"고 잘라 말했다.

건보공단의 '강 건너 불구경' 식 대응은 듣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알려고 하는 의지가 없는 것인지 궁금하게 한다.

건보공단은 한결같이 법원의 판단에 따라 처분된 금액으로 부당 이득을 환수할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면대 약국은 사무장 병원과 함께 건보재정을 갉아먹는 주요 원인이지만, 이로 인한 부당이득 환수금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건보재정은 이미 적자로 전환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건강보험 적립금은 2029년 완전히 소진될 예정이다.

앞선 사례를 통해 '왜 부당 이득 환수가 10%밖에 이루어지지 않은 지' 이해가 좀 더 선명해졌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설명 없는 경찰, '강 건너 불구경'의 건보공단 그리고 모두의 무관심 속에 건보재정이 손쉽게 갉아 먹히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 이메일 : jebo@cbs.co.kr
  • 카카오톡 : @노컷뉴스
  • 사이트 : https://url.kr/b71afn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