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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러 ‘핵무기 국외 배치’는 냉전 후 처음…유럽 핵균형 깨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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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지난 2월 만나 악수하고 있다. 모스크바/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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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수십년 동안 이런 일을 해왔다. 자신들의 전략 핵무기를 동맹국의 영토에 배치해왔다. (중략) 우리도 똑같은 일을 하기로 했다.”(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러시아는 지난해 2월 말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한 뒤 서구를 상대로 ‘핵 위협’을 일삼고, 킨잘(공대지 초음속 미사일)·사르마트(대형 대륙간탄도미사일)·치르콘(함대지 극초음속 미사일)·포세이돈(핵어뢰) 등 다양한 전략무기를 선보여왔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각) 밝힌 ‘핵무기 전진 배치’ 계획은 냉전 이후 30여년 동안 지켜온 큰 원칙을 허물었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다른 변화라고 해석할 수 있다. ‘형제국’인 벨라루스에 자신들이 보유한 전술 핵무기를 전진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러시아의 운명’을 건 이 전쟁에서 결코 타협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더 분명히 한 것이다. 니콜라이 소코프 빈군축·비확산센터(VCDNP) 선임 펠로는 <로이터> 통신에 “러시아는 국경 밖으로 핵무기를 이전하지 않았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껴왔다. 그런데 그들이 이를 바꿨다. 이는 큰 변화”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이날 밝힌 계획은 크게 두가지로 구성돼 있다. 첫번째는 전술 핵탄두 배치다. 푸틴 대통령은 이 “저장 시설의 건설 공사를 7월1일까지 마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옮긴 핵탄두의 운반 수단으로 벨라루스에 이미 배치해둔 단거리 미사일 ‘이스칸데르’(최대 사거리가 500㎞)와 벨라루스 군용기의 개조(10대. 4월3일부터 훈련 시작) 등을 언급했다. 개조된 군용기는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핵무기를 나를 수 있도록 개조를 도울 것”이라고 말한 벨라루스가 보유한 러시아제 수호이(Su)-25일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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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벨라루스는 이번 핵 전진 배치를 위해 오랜 준비를 해온 것으로 보인다.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사흘 뒤인 지난해 2월27일 개헌 국민투표(찬성률 65.1%)를 통해 “영토를 비핵화하고 중립국가화를 목표로 한다”(18조)는 헌법 조항을 삭제했다. 옛 소련 시절 이 나라엔 핵탄두가 탑재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배치돼 있었지만, 독립한 뒤인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를 통해 주권과 영토 보전을 약속받고 핵무기를 포기했다. 하지만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당신들(서구)이 우리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 핵무기를 들여온다면, 나는 푸틴 대통령에게 가서 조건 없이 줬던 핵무기를 돌려달라고 할 것”이라며 전술핵 배치에 열의를 보여왔다. 미국은 독일·벨기에·네덜란드·이탈리아·튀르키예 등 5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에 전술핵을 배치해두고 있다.

한스 크리스텐센 미국과학자연맹 핵정보프로젝트 국장은 이번 발표에 대해 “나토를 위협하기 위해 푸틴이 벌이는 게임의 일부”라며 “러시아에 이미 수많은 핵무기가 있어서 이번 배치를 통해 (추가적으로 얻을 수 있는) 군사적인 이점이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번 결정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까지도 서구와 장기적인 대치를 하겠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그로 인해 벨라루스와 국경을 맞댄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리투아니아·라트비아와 한창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벨라루스라는 ‘측면의 핵 위협’에도 대비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유럽의 핵 균형이 일거에 무너질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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