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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러, 벨라루스에 전술핵 배치한다…푸틴 "미국식으로 핵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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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친러시아 국가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한다고 25일(현지시간) 밝혔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회원국인 폴란드·리투아니아·라트비아 등과 국경을 맞댄 벨라루스에 핵무기를 전진 배치한다는 의미다. 지난달 28일 미국과의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ㆍ뉴스타트)’을 공식적으로 중단한 데 이어 미국과 핵 경쟁을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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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전술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이스칸데르 미사일 체계를 이미 벨라루스에 보낸 상태다. 사진은 2015년 6월 17일 모스크바 외곽에서 이스칸데르-M 미사일을 발사대에 장착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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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은 이날 국영 로씨야-24 TV와 인터뷰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오랫동안 러시아에 전술핵무기 배치를 요청했다”며 러시아ㆍ벨라루스 간 전술핵무기 배치 합의 사실을 공표했다. 이어 “이미 벨라루스에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이스칸데르 미사일 체계를 제공했다”며 “4월 3일부터 관련 훈련을 시작하고, 7월 1일에는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용 특수 저장고를 완공할 것”이라고 구체적인 일정을 공개했다. 푸틴은 또 “10대의 벨라루스 공군 소속 항공기가 전술핵폭탄을 탑재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그러면서도 “핵통제권은 러시아가 가진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핵확산 금지 협정을 어기지 않으면서 미국과 똑같이 하기로 벨라루스와 합의했다”며 “핵무기를 벨라루스로 이전하는 게 아니라 미국처럼 배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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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는 미국이 유럽 내 나토 회원국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한 것을 겨냥한 발언이다. 미국은 독일ㆍ이탈리아ㆍ벨기에ㆍ네덜란드ㆍ터키의 6개 공군기지에 150~200기의 B61 계열 전술핵폭탄을 배치하고 있다.

유사시에는 미국이 나토와 협의해 F-16ㆍ토네이도 전투기 등에 장착해 발사할 수 있다. 미국이 지난해 말부터 배치하기 시작한 개량형(B61-12)의 경우 정밀도가 향상된 저위력 전술핵폭탄으로 적의 방공망을 따돌리는 F-35 스텔스 전투기에도 장착할 수 있다.



"미국 반대할 명분 차단"



반면 러시아는 1996년까지 옛 소련 3개국(우크라이나·벨라루스·카자흐스탄)에 배치됐던 핵무기를 완전히 철수한 이후 러시아 영토 내에만 핵무기를 보관·배치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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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국영 방송과 인터뷰에서 알렉산더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요청으로 양국이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하기로 합의햇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달 17일 모스크바를 찾은 루카셴코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악수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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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미국보다 더 많은 전술핵무기를 가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 핵과학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러시아가 보유한 핵탄두 총 5977발 가운데 약 32%(1912발)가 전술핵무기다.

또 러시아는 벨라루스에 배치한 이스칸데르처럼 미국이 폐기한 중·단거리 지대지 핵전력도 갖고 있다. 설상가상 상호 핵사찰과 정보 공유를 약속한 뉴스타트의 중단으로 미국은 앞으로 러시아의 핵전력 증강에 대해선 깜깜이 상태에 빠져들 공산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이 ‘나토식 핵공유’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이에 대해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이 명확히 불법이라며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며 “러시아 입장에선 핵을 사용하지 않고도 위협 수위를 높이는 효율적인 카드”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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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유럽 내 나토 회원국의 공군기지 6곳에 전략핵폭탄을 배치하고 나토와 함께 핵무기를 운용하고 있다. 사진은 벨기에 공군의 F-16 전투기가 비행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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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드리언 왓슨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이날 푸틴 대통령 발언과 관련한 언론들의 질의에 “러시아의 발표를 인지하고 있으며 그 의미를 주시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우리는 우리의 전략적 핵 태세를 조정할 이유도,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징후도 보지 못했다”며 “우리는 나토 동맹의 집단 방어에 계속 전념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미 국방부도 이날 성명을 통해 같은 입장만 짧게 내놨다.



서방 무기지원에 맞불



러시아 측은 이번 조치의 배경 중 하나로 영국의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열화우라늄탄 지원 문제도 들었다. 앞서 영국은 지난 20일 "우크라이나군에 제공할 챌린저2 전차(14대)에서 사용할 포탄 중에는 열화우라늄탄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열화우라늄탄은 고열로 두꺼운 장갑을 뚫는 등 대전차 공격에 효과적인 무기다. 하지만 핵폐기물을 이용해 제조하는 만큼 사용 시 방사능 유출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 등이 제기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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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챌린저2 전차 14대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면서 열화우라늄탄을 포함한 포탄도 지원할 계획이라고 지난 20일(현지시간) 밝혔다. 사진은 이라크전 당시인 2003년 3월 31일 이라크 남부 바스라에 투입된 챌린저2 전차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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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 아니라 최근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에 앞으로 1년간 155㎜ 포탄 100만 발을 추가 지원키로 했고, 미국도 정밀유도로켓·포탄 등 3억5000만 달러(약 4550억원) 규모의 추가 군사지원 계획을 내놨다.

전차 생산량 부족 등 러시아군의 군수 보급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에서 "서방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강도가 점차 올라가는 것에 대해 러시아가 전술핵무기 전진 배치로 맞불을 놨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 박용한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나토의 전술핵무기 개념은 수천 대의 러시아군 전차가 평야 지대로 공격에 나설 경우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수단을 찾은 결과”였다며 “핵 대 핵 개념이 아니라 재래식 전력을 차단하고 전력 격차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짚었다. 이어 “중국 등 다른 국가로부터 전면적인 지원을 받기 어려운 러시아 입장에선 재래식 전력의 한계를 이같은 상징적인 조치로 만회하려는 속셈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나토식 핵공유’와 ‘호주 핵잠수함’은 NPT 위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할 것이라고 천명하면서 언급한 ‘나토식 핵공유’는 미국이 유럽을 보호하기 위한 직접적인 ‘핵우산’이다.

나토식 핵공유는 미국의 전술핵을 나토 회원국에 배치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평시에는 미국을 포함한 나토 회원국의 국방장관으로 구성된 ‘핵계획그룹(NPG)’에서 핵 정책을 결정하고, 유사시에는 미국이 핵무기 사용 권한을 보유하는 구조다.

문제는 1970년 발효한 핵확산금지조약(NPT)과 충돌 여부다. NPT는 핵무기 개발ㆍ생산은 물론 핵보유국이 비핵보유국으로 핵을 이전ㆍ양도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다만 나토식 핵공유처럼 소유부터 운영까지 모든 권한을 미국이 행사하고 배치 역시 나토군 기지 내에 두는 것은 NPT 틀 내에서 가능하다. 푸틴 대통령이 벨라루스 전술핵 배치를 발표하면서 “핵비확산 합의를 어기지 않으면서 미국과 똑같이 하기로 했다”는 언급도 이를 의미한다.

미국이 영국ㆍ호주와 안보협의체인 오커스(AUKUS)를 통해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특히 중국은 “많은 양의 핵물질이 이전되는 것으로 NPT의 목적과 취지에 위배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NPT에선 핵확산의 범위에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운용을 규정하고 있진 않다. ‘금지되지 않은 군사활동용’으로서 예외로 허용하고 있다.

다만 현재까진 호주 이외에 핵잠수함 기술이 이전된 사례는 없다. 중국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ㆍ일본에 비슷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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