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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뒤통수 퍽’ 중고차 사기, 이젠 못참겠다…현대차·쌍용 ‘진출’, 소비자 반응 [세상만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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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하반기에 중고차사업 본격화
5년10만km 이내 ‘인증차’ 판매
‘분노폭발’ 소비자, 진출 대환영
허위매물·사기판매 근절엔 한계


매일경제

중고차 사기에 악용되는 침수차(왼쪽)와 중고차 시장 완전개방 촉구 시민단체 성명서 [출처=매경DB, 자동차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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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서울 오장동과 장안평에서 본격화된 뒤 50년 동안 큰 변화는 없었던 중고차 유통업에 천지개벽이 일어난다.

완성차 브랜드가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때문이다. 국내 자동차시장의 절대강자인 현대차·기아에 이어 다크호스로 급부상한 KG 모빌리티(구 쌍용차)까지 뛰어든다.

현대차는 23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중고차 판매업 진출을 위해 정관 사업목적에 ‘금융상품 판매대리·중개업’을 추가했다. 기아도 지난 17일 주총에서 정관 사업목적에 금융상품 판매대리·중개업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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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통합정보 포털 콘셉트 [사진출처=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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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은 1년 전인 지난해 3월 신차 수준의 상품화를 목표로 한 중고차 사업 방향을 발표하며 중고차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의 1년 유예 권고에 따라 올 하반기부터 중고차 사업을 본격화한다.

KG 모빌리티도 지난 22일 평택 본사에서 열린 주총에서 올 상반기까지 인증 중고차 판매·정비 조직 및 체제 등을 구축한 뒤 하반기부터 본격 판매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르노코리아와 한국지엠도 중고차시장 진출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수입차 브랜드, 중견 기업, 할부금융업계 등도 중고차 유통업에 진출한 상태지만 완성차 브랜드 파급력에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자동차를 직접 생산하고 판매하고 정비하면서 쌓은 노하우와 인프라스트럭처가 막강해서다.

‘분노폭발’ 소비자, 완성차 진출 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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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매물 사기꾼들은 헐값이나 싼값으로 소비자를 유혹한 뒤 다른 차를 비싼 값에 판매한다. [출처=현대캐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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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은 완성차 브랜드의 중고차 진출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허위·미끼매물, 침수·사고차 불법유통, 바가지, 협박·강매 등 중고차 사기로 피해를 입는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중고차거래앱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대해 응답자 대부분이 찬성했다.

이 조사는 보배드림, 엔카닷컴, 첫차, KB차차차, 케이카 등 중고차 거래앱 상위 5개 업체 이용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 134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 점수는 5점 만점 중 4점으로 나왔다. 소비자원은 매우 부정은 1점, 매우 긍정은 5점으로 책정했다.

소비자들은 “안전한 매물이 많아진다”, “선택폭이 넓어진다”, “피해가 줄어든다” 등의 이유로 완성차 업체 진출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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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인증 중고차 점검 장면 [사진출처=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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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단체들도 완성차 브랜드가 중고차시장에 진출하면 피해 감소, 거래 투명화 등 긍정적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한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완성차 브랜드의 중고차시장 진출을 놓고 기존 중고차업계의 반발이 극심했던 지난해 3월 ‘소비자가 본 자동차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입과 소비자 후생’ 토론회를 개최했다.

당시 주제발표를 맡은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책위원장)는 “허위·미끼 매물, 성능상태 점검 불일치, 과도한 알선수수료, 수리 및 교환·환불 시스템 미정착 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완성차업체에 중고차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은영 소비자권리찾기시민연대 대표도 “소비자의 80.5%가 국내 중고차 시장이 불투명·낙후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대기업 진출을 통해 소비자가 보호받고 선택권을 보장받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입차처럼 ‘인증 중고차’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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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인증 중고차 점검 장면 [사진출처=포르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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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기아와 KG 모빌리티는 인증 중고차를 판매한다. 인증 중고차는 ‘명품 중고차’로 여겨진다.

주로 출고된 지 5년 이내, 주행거리 10만km 이내인 중고차를 대상으로 정밀한 성능검사와 수리를 통해 가치를 높인 뒤 품질까지 인증해 판매하기 때문이다.

BMW, 벤츠, 아우디, 포르쉐, 재규어, 랜드로버, 폭스바겐, 볼보, 렉서스 등 수입차 브랜드가 먼저 선보였다.

인증 중고차는 중고차 유통 고질병 ‘정보 비대칭’으로 발생하는 사기행위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중고차는 신차와 달리 품질이 제각각인 데다 자동차 전문가가 아닌 이상 성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정보 비대칭 때문이다.

정보 비대칭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애컬로프 미국 UC버클리대 교수가 선보인 경제학 이론이다.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거나 적게 가지고 있는 측은 자신에게 불리한 의사결정을 내린다. 이는 시장 불신으로 이어져 결국엔 시장 황폐화와 붕괴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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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인증 중고차 도슨트 투어 콘셉트 [사진출처=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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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유통도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사기·범죄 행위가 빈번하기 발생하기 쉬운 곳이다. 판매자인 딜러는 중고차의 상태를 비교적 자세히 아는 반면 소비자는 그 상태를 자세히 알 수 없다.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중고차 사기꾼에게 허위매물 피해를 당하고 무사고차를 사려다 오히려 사고차를 비싼 값에 속아 산다.

주행거리를 조작한 차, 침수·사고 흔적을 감춘 차를 피하려다 사기꾼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피해를 본 소비자들은 시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구매한다.

현대차는 정보 비대칭을 해결하기 위해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가칭 중고차 연구소)’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소비자는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을 통해 ▲중고차 성능·상태 통합정보 ▲적정가격 산정 ▲허위·미끼 매물 스크리닝 ▲중고차 가치지수 ▲실거래 대수 통계 ▲모델별 시세 추이 ▲모델별 판매순위 등의 중고차시장 지표와 ▲트렌드 리포트 등을 제공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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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사고이력 정보를 알려주는 카히스토리 [사진출처=보험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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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는 국토교통부와 보험개발원 등과 협의, 정부·기관이 각각 제공하는 차량이력 정보에 현대차가 보유한 정보까지 결합해 ‘중고차 성능·상태 통합정보’ 제공도 추진한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구매하려는 중고차의 사고유무와 보험수리 이력, 침수차 여부, 결함 및 리콜내역, 제원 및 옵션 정보 등 차량의 현재 성능·상태와 이력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중고차 거래 때 주요 피해유형 중 하나인 허위·미끼 매물을 걸러내는 기능도 제공한다.

기존 중고차 유통 체질개선과 상생도 추진한다. 현대차는 이를 위해 ▲인증 중고차 대상 이외 매입 물량은 경매 등을 통해 기존 매매업계에 공급 ▲연도별 시장점유율 제한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 공개 ▲중고차산업 종사자 교육 지원 등을 제시했다.

헐값·싼값 현혹 사기, 근절은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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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차 브랜드들은 품질이 좋은 중고차의 상품 가치를 더 높여 판매한다. [출처=현대캐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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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차 브랜드가 중고차 시장에 본격 진출하면 기존보다 중고차 유통이 투명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임기상 미래차타기자동차시민연합 대표는 “중고차 시장 개방으로 유통구조가 보다 투명해지고 소비자 선택권도 넓어질 것”이라며 “대기업 진출은 시장은 물론 기존 업계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메기효과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고차시장의 고질병이 된 허위·미끼매물 협박·강매, 헐값·싼값으로 현혹하는 사기 판매, 침수차·사고차 불법 유통 등을 모두 근절시킬 수는 없다.

완성차 브랜드가 품질 문제로 취급하지 않는 낡고 문제 많은 차가 사기 도구로 활용될 때가 많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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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허위매물 감별법 [사진출처=엔카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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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자동차산업연합회(KAIA) 자료에 따르면 5년10만km 이내 차량만 판매하는 완성차 브랜드 5개사의 중고차시장 점유율은 2026년에 7.5%~12.9% 정도로 예상된다. 4년 뒤에도 중고차 10대 중 1대만 완성차업체 5개사를 통해 판매된다는 뜻이다.

신차 시장에 이어 중고차 시장에서도 현대차그룹 독점구도만 더 견고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중고차 유통이 신차 판매를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기상 대표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인증 중고차를 사기 힘든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싼값·헐값으로 유혹하는 사기행위가 더 교묘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호근 교수도 “5년10만km 이내 차량에 대한 진단과 보증, 잇단 금리 인상으로 소비자 구매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완성차 진출로 가격만 올랐고 신차 판매 마케팅으로 전락한다는 반발이 나오지 않도록 인증 중고차 정책을 꼼꼼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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