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달라진 것 없어”… 한 달 만에 다시 붙은 서울대 대자보 [가봤더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정순신子 민사고 동창 “지금이라도 죄 무게 짊어져라”

쿠키뉴스

24일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게시판에 학교 폭력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대학교에 또 대자보가 붙었다. 24일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게시판에는 다닥다닥 붙은 홍보물 위로 ‘죄인이 한때의 형제에게 고함’이란 대자보가 붙어있었다. A4 9장으로 된 인쇄물을 하나로 이어 붙인 대자보에는 정 변호사 아들이 다닌 민족사관고등학교 22기 동창 A씨가 그에게 보내는 편지가 적혀 있었다. 정순신 변호사가 아들의 과거 학폭 사건으로 지난달 25일 국가수사본부장에서 자진 사퇴한 지 약 한 달 만이다.

경영대생이라고 밝힌 A씨는 “작은 기숙학교에서 함께 지낸 우리들은 소중한 친구였고, 맞서야 할 경쟁자가 아니라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가족이었다”며 “너와 그 친구 사이의 문제가 밝혀졌을 때 믿을 수 없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잔혹한 행동에 시달리던 친구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몰렸고, 사건이 일차적으로 해결된 뒤에도 학교에서 끔찍한 일들이 자꾸만 생각난다며 울부짖다가 학교를 떠나 연락이 닿지 않게 됐다”고 했다.

A씨는 “너는 결국 스스로의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학교와 실랑이하며 시간을 끌고,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잘못을 인정조차 안 했다”며 “내가 잃은 형제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친형제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친구는 자기 미래를 위해 다른 형제의 등에 비수를 꽂는 괴물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네 죄의 무게를 지금이라도 깨닫고 다시 짊어지라”며 “부디 평생을 후회 속에서 살아가라”고 했다.

쿠키뉴스

24일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게시판에 학교 폭력을 비판하는 대자보 2개가 나란히 붙어 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A씨가 내건 대자보는 지난달 27일 정 변호사 아들을 비판한 첫 대자보 옆에 나란히 게시됐다. 당시 생활과학대학 22학번이라고 밝힌 작성자 B씨는 “정순신의 아들은 윤석열, 정순신과 함께 부끄러운 대학 동문 목록에 함께 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대자보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반응에서 한 달 전과 미묘한 온도차가 느껴졌다. 이날 정 변호사 아들 관련 두 번째 대자보 앞에 걸음을 멈추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에서 만난 한 학생은 “대자보가 많아서 그런 내용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관련 내용 자체를 잘 모른다”며 자리를 피했다. 말없이 대자보를 읽던 한 학생도 “처음 읽었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정 변호사 낙마 당시엔 학내 대자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서울대 학생들의 비판 글이 쇄도했다.

쿠키뉴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9일 오전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정순신 아들 학폭' 관련해 현안을 보고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학폭과 ‘아빠 찬스’를 바라보는 청년들의 분노는 여전했지만, 정부가 내놓을 대책엔 다소 회의적이었다. 수도권 소재 대학생 박모(25·여)씨는 “(정순신 사태로) 학폭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바뀌었지만, 정책은 쉽게 바뀌지 못할 것 같다”며 “그동안 고위직 공무원이나 공인 자녀의 학폭 논란이 있었지만 뭐가 달라졌나.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사회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안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생 김모(20)씨는 “학폭을 해도 정시로 서울대에 가는 데 사실상 전혀 문제가 없었던 것 아니냐”며 “정 변호사 아들의 학폭 사안은 너무 화나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게 있나 싶다”고 답했다.

교육부는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다음달 초 학교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대책에는 학폭 징계 기록의 정시 반영, 피해자 보호 대책 등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앞서 신임 국수본부장에 임명된 정 변호사는 대통령 임명 하루 만인 지난달 25일 낙마했다. 정 변호사 아들이 민사고 재학 당시 동급생에게 8개월간 언어폭력을 가해 2018년 강제 전학 처분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정군은 이듬해 서울 반포고로 전학해 이후 2020년 서울대에 정시로 입학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