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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선진국들은 사다리 걷어차는데, 탄소중립 없이 경쟁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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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호의 파란하늘

한겨레

기휘위기비상행동, 기후정의동맹 등 시민단체들이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 앞에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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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은 전 정부의 ‘국가 탄소중립 계획’에 대해 비과학적으로 정해져 과학적으로 재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따른 새 정부안인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이 만들어져 지난 21일 발표됐다. 이 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기업 부담을 줄이고 핵발전을 늘리는 데 중점을 둬 시민사회에서 비판이 일고 있다. 주어진 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면 새 세상으로 나아갈 수 없다. 분명 이런 것을 과학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1998년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첫 번째 국제협약인 교토의정서가 맺어졌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 분류되지 않아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는 국가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 산업을 보호하는 약이 되었지만, 에너지 전환을 늦추는 독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2009년 처음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수립한 이후 지금까지 이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감축 목표를 바꾸기만 했을 뿐이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면서 경제를 성장시키는 ‘저탄소 녹색성장’의 길로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저감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온실가스 배출량(BAU)을 2020년까지 30% 줄이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온실가스 배출량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증가하였다. 결국 2016년 박근혜 정부는 목표 달성이 어려워 보이자 달성 연도를 2020년에서 2030년으로 바꾸었다. 또다시 2021년 문재인 정부는 2018년 배출량을 기준으로 2030년까지 40%를 줄이는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방안을 확정했다. 정부는 달성 의지가 없는 계획만 바꿀 뿐 해야 할 숙제는 미뤘다.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은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탄소중립이란 것이 우리 산업의 부담으로 작용해선 안 된다”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에 충실히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2030년까지 가장 배출량이 많은 산업 부문에서 감축해야 할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11.4%로 정했다. 지난 정부가 정한 14.5%보다 3.1%가량 부담을 줄였다. 이미 주류 시장에서 성장이 멈추었고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적은 핵발전은 늘리고 아직 실용화되지 않아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수소와 탄소포집저장활용(CCSU)에서 온실가스 감축 비중을 높였다. 그리고 아직 제대로 된 국제기준도 없고 세계 다른 나라와 협의를 해야 하는 해외 감축을 늘렸다.

한국, 기후위기보다 경제위기 먼저 맞을 수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6차 저감 평가보고서(WG III)는 제15장 ‘투자와 금융’에서 ‘전환위험’과 ‘물리적 위험’을 다루었다. 전환위험은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탄소 산업의 자산가치 하락과 금융 위험이고, 물리적 위험은 자연재해로 인한 생산 차질과 재산 손실이다. 지구가열이 3도 이상이면 기후위기 대응을 하지 않는 경우이므로 전환위험이 일어나지 않지만, 2050년 이후엔 물리적인 위험에 빠질 것으로 보았다. 기온상승을 1.5도나 2도로 막는 정책을 수립했다 해도 정책 신뢰도가 낮으면, 2020년 이후부터 전환위험에 빠지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후위기 대응 정책이 오락가락한다. 이대로라면 우리나라는 기후위기보다 경제위기가 먼저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이번 정부안에서 윤석열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임기가 끝나는 2027년까지 매년 1.99% 줄이고, 2028~2030년 동안 연평균 9.29%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정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다음 정권에 넘기겠다는 것이다. 실패로 끝난 이명박 정부 ‘저탄소 녹색성장’을 주도했던 김상협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 민간공동위원장은 “국제기구에서도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기술이 현실적으로 발휘되는 시점을 2030년 전후로 본다”라면서 “2030년 전후로 감축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는 것으로 다음 정부에 떠넘기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거짓이다.

아이피시시가 제시한 온실가스 배출량 경로는 초반에는 많이 줄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줄이는 것이다. 초반에는 현재 기술로도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부분이 크고 과잉 소비하는 화석연료가 많아 줄이는 것이 수월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필수불가결하게 쓸 수밖에 없는 양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IPCC 6차 저감 평가보고서는 현재 기술 수준으로도 다양한 부분에서 탄소를 저감할 수 있다고 보았다. 온실가스 1톤당 비용이 100달러 이하인 탄소 저감 방법으로 2030년까지 전 지구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수준의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이 중 온실가스 1톤당 비용이 20달러 미만인 탄소 저감 방법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여기에는 태양과 풍력 에너지, 에너지 효율 개선, 자연 생태계 파괴 감소, 그리고 메탄 배출 감축 등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기후위기를 대응하기 위한 자본은 충분하지만 이를 전환하는 데 장벽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기술이 부족하고 돈이 없어 탄소중립에 도달 못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보고서에서 핵발전과 탄소포집저장도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보았다. 그렇지만 현 수준 기술로 2030년까지 핵발전과 탄소포집저장은 태양광·풍력 발전에 비해 온실가스 감축 크기가 각각 10분의 1 정도이며 비용이 훨씬 비싸다고 분석했다. 지난 10년간 가장 빠른 기술혁신과 대량 생산이 있었던 분야는 핵발전과 탄소포집저장이 아니라 태양광, 풍력과 전력 저장에 필요한 배터리 등 재생에너지 분야이기 때문이다.

탄소배출권 무상할당은 온실에서 기업 키우기


탄소중립은 우리나라 스스로 정한 과제가 아니다. 세계 주류 시장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우리 외부로부터 강제되는 프레임이다. 우리 스스로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고통스럽고 비자발적인 감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월마트, 이케아, 베엠베(BMW) 등 글로벌 기업들은 자기들에게 납품하는 기업에 100% 재생에너지로 만든 상품과 부품을 요구하려 한다. 이 재생에너지에는 핵발전이 포함되지 않는다. 핵발전은 핵연료봉을 계속 공급해 주어야 하고 핵폐기물을 쏟아내 재생에너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제품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 배출량에 대해 유럽연합 탄소배출권거래제(ETS)와 연동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곧 시행하려 한다. 탄소배출권 가격은 우리나라에서 1톤당 1만5천원 정도이지만 유럽연합에서 10만원대이다. 우리나라는 기업을 보호한다며 탄소배출권의 무상 할당 비율을 너무 높였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우리나라와 탄소배출권 가격 차이만큼 관세를 부과하려 한다. 관세를 내게 되면 우리 상품은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된다. 관세를 내고도 우리 상품을 수출한다면 우리나라에 낼 세금을 유럽연합에 내는 꼴이 된다. 미국도 준비 중인 탄소국경조정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정부가 우리 기업을 온실 안에 가두어 키워온 결과 에너지 전환시대라는 비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

세계자연기금(WWF) 한국본부 등이 발족한 ‘기업 재생에너지 이니셔티브’와 기후단체 ‘플랜 1.5’는 공동으로 작성한 ‘2030년 국내 재생에너지 수요 전망 보고서’에서 국내 기업의 2030년 재생에너지 수요가 기업에서 필요한 수준의 약 56% 정도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국내에서 재생에너지를 100% 조달하거나 그게 안 되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해야 할 판이다.

선진국들은 앞선 기술력으로 이른바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려고 한다. 대한민국이 세계 재생에너지 시장에서 걷어차이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재생에너지 전환에 최우선을 두지 않는다. 경제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대통령의 말이 진심인지 의문이다.

인류는 에너지 전환이 이루어질 때마다 새로운 도약을 해왔다. 선진국은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전 세계를 지배했고, 앞으로 재생 에너지를 토대로 여전히 지배력을 유지하려 한다. 미래 산업 경쟁력은 재생에너지 경쟁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정책결정자가 에너지전환 흐름 제대로 인식해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재생에너지 2022’ 보고서에서 대규모 태양광과 육상 풍력이 전 세계 대다수 국가에서 이미 가장 싼 신규 발전원이 되었다고 밝혔다. 전 세계 태양광 발전 용량은 2022~2027년 동안 거의 3배로 증가하여 석탄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큰 전력 공급원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의 기후·에너지 투자 계획에서 풍력·태양광·에너지저장장치(ESS)의 비중이 1280억달러로 300억달러인 핵발전보다 4배 더 크다. 2022년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BNEF) 보고서는 2050년 탄소중립에 도달하는 경우 풍력과 태양광이 총발전량의 4분의 3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앞으로 늘어나는 새로운 일자리 대부분은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저장 부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에너지 수입총액이 1년에 약 180조원 정도 된다. 현재 에너지의 주종을 이루는 화석연료는 지정학적 요인이 가격 변동에 큰 영향을 준다. 재생에너지는 지정학적 요인보다는 기술 수준에 의해서 경쟁력이 결정된다. 기술강국 대한민국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인 것이다. 재생 에너지는 외국에 지급해야 하는 화석연료 비용의 많은 부분을 줄이는 만큼 우리나라 안에서 새로운 부를 창출한다. 이와 함께 에너지 빈국 우리나라가 에너지 안보를 확보할 수 있다.

에너지 전환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사회∙윤리적 책무의 영역만이 아니다.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인지 도태할 것인지 결정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병든 지구에서 이윤 추구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대한민국 영업사원 1호’라고 하는 윤 대통령 의욕은 나무랄 수 없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위기는 정책결정자가 에너지 전환 시대에 그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재생에너지의 미래 전망에 대해서는 눈감고, 난제와 한계에만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틀에서는 아무리 좋은 전략도 필패다.

윤석열 대통령은 제104주년 3.1절 기념사에서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을 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합니다”라고 했다. 침략을 정당화하는 이따위 말은 우리의 과거사에 적용할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로 인한 전환시대에 대통령 스스로 성찰할 때 필요하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cch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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