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여성권 신장·해외교류 증가…탈레반 간부들도 딸 비밀학교 보내
지역당국·정보요원도 비밀학교 묵인…라디오·온라인 교육도
아프가니스탄 카불 지역의 여학생 |
(서울=연합뉴스) 최재서 기자 = 여성의 교육이 금지된 아프가니스탄에서 비밀학교가 확산하는 등 탈레반 정부의 '일방통행'에 대한 내부 역풍이 거세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은 이번 주 새 학기가 시작됨에 따라 탈레반 최고지도자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가 최근 내부 세력의 강한 반대에 직면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고 전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조용히 뿌리내리기 시작한 여학생들을 위한 비밀학교는 이러한 분위기를 짐작게 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주로 주택을 공간 삼아 운영되는 이들 비밀학교는 일부 강제 폐쇄됐고 교사 1명이 임시 구금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비밀학교를 조직해온 한 여성은 WSJ에 탈레반 정보 당국이 비밀학교 폐쇄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여성에 따르면 정보요원들이 그가 조직한 비밀학교를 찾아냈지만 이에 대해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탈레반 내부에서조차 딸을 비밀학교에 등교시키는 경우가 생겨났고, 파키스탄 등 해외에 여성 친인척을 유학 보내는 탈레반도 부지기수다.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한 마을에서는 주민들과 탈레반 지역 관리들이 사실상의 공조 하에 교육 금지를 거부, 여고에서 수업이 중단 없이 이어지고 있을 정도다.
코란 공부하는 아프가니스탄 여학생들 |
여성을 위한 라디오 방송 '라디오 베굼'(Radio Begum)은 교육에 할애되는 시간을 하루 6시간씩 늘렸고, 학생들은 라디오국에 전화해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이 밖에 여학생들은 온라인을 통해 교육을 접할 수도 있으며, 전체주의를 소재로 한 조지 오웰의 '1984' 등 서적도 pdf 파일로 널리 유통되는 상황이다.
WSJ은 탈레반이 권력을 잃은 지난 20여년간 교육을 비롯한 전 분야에서 여성들의 인권이 증진되고 탈레반 관리들의 해외 교류가 늘어나면서 분위기가 크게 변했다고 분석했다.
탈레반 주요 장관들은 이달을 포함해 여러 차례 하이바툴라가 은둔 중인 남부 칸다하르를 찾아 여성 교육금지 완화를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 대학 교육 금지의 경우 작년 12월 방침이 발표되기 전 장관들의 반대로 수개월간 지연되기도 했다고 탈레반 관리들은 설명했다.
지난달부터는 공개적인 비판도 늘어나는 양상이다. 수십 년간 하나로 단결돼 움직여 오던 탈레반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WSJ은 짚었다.
시라주딘 하카니 내무부 장관은 한 연설에서 "(탈레반이) 과거 적에게 무자비했다면 오늘날은 국민에게 부드럽다"며 "독재자가 돼 국민이 우리 치하에서 고통받게 하는 건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이바툴라 측근으로 알려진 압둘 하킴 샤라이 법무부 장관도 한 인터뷰에서 내각은 여성 교육 금지를 반대하며 교육정책의 점진적 변화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교육과정에서 이슬람 가치를 반영하지 않는 요소들을 '정화'할 필요가 있을 뿐, 교육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시라주딘 하카니 탈레반 내무부 장관 |
작년 여성 교육이 금지될 때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도시에 거주 중인 13~18세 여학생의 절반에 해당하는 110만명이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국제사회는 아프가니스탄 내 여권 탄압이 계속될 경우 인도주의적 원조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라미즈 알라크바로브 유엔 인도주의 아프가니스탄 상주조정관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한 기부자들을 찾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아미나 모하마드 유엔 사무부총장은 지난 1월 교육 금지 철회를 촉구하고자 칸다하르를 찾았지만, 하이바툴라를 만나지 못했다.
acui7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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