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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두만강 옆 우크라이나 '젤레나 우크라이나'‥그 오랜 친구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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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만강 옆 우크라이나 ‘젤레나 우크라이나’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00년 전 우리나라 두만강 옆에 ‘젤레나 우크라이나’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우크라이나 민족이 세운 나라였습니다.

1860년대 러시아 제국의 알렉산드르 3세는 새 식민지 연해주로 이주하면 ‘땅’을 나눠줬습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에서 많은 사람들이 극동으로 몰려갔고 척박한 연해주 땅을 개척했습니다. 특히 농업에 천부적 소질이 있었던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대거 몰려가 1897년엔 약 33,500명에서 1926년엔 315,000명까지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땅을 나눠줬던 러시아 제국이 1917년 공산혁명으로 무너졌습니다.

힘들게 일군 땅을 공산당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우크라이나 이주자들은 연해주 우수리스크와 하바롭스크에서 ‘건국의회’를 열고 1918년 나라를 세웠습니다.

젤레나 우크라이나.

젤레나Zelena는 '녹색'을 뜻하는 슬라브 말입니다.(참고로 현재 우크라이나 대통령인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름도 ‘녹색’을 뜻하는 말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녹색은 '동쪽'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녹綠우크라이나’ 또는 ‘극동極東우크라이나’라고도 부릅니다.

젤레나 우크라이나의 건국의회는 언젠가 10,000km 떨어진 유럽의 ‘본국’ 우크라이나와 통합을 이루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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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 7만 대군 ‘시베리아 출병’

1918년 3월, 러시아 공산당의 ‘붉은군대’는 시베리아로 동진해 나갔습니다. 공산혁명을 반대하는 백군白軍을 소탕하고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을 세우기 위해섭니다.

이를 막기 위해 미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일본은 1918년 7월 시베리아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러시아 적백赤白내전에 연합군이 개입하게 된 겁니다.

대부분 독일과 싸우느라 1~2천명 정도만 보냈습니다. 그러나 독일과 멀리 떨어진 일본은 7만 3천명의 대군을 파병했습니다. 천황폐하를 모시는 일본 입장에선 볼셰비키의 공산주의가 무엄하기 이를 데 없는 사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드넓은 시베리아 땅도 욕심이 났습니다.

5년간의 이 전쟁을 일본에선 ‘시베리아 출병’이라고 부릅니다.

■ 일본-우크라이나-러시아 ‘시즌1’

‘두만강 옆’ 우크라이나도 땅을 지키기 위해 러시아 공산당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무기와 자금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일본군에게 젤레나 우크라이나는 ‘적의 적’이었습니다. 일본군은 젤레나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각종 무기를 지원받은 젤레나 우크라이나는 그 답례로 일본군에게 곡물과 가축을 제공했고, 드넓은 시베리아의 광물 자원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일본군이 또 ‘폭주’를 했습니다. 7만 대군의 일본군은 블라디보스토크를 넘어 사할린과 시베리아 내륙 이르쿠츠크까지 진격했습니다. 러시아 공산당의 남하를 막는 게 연합군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를 넘어선 점령 행위는 미국, 영국, 프랑스와의 협정 위반이었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뒤늦게 일본의 영토 야욕을 눈치챘고 크게 분노했습니다. 미국은 일본군의 철수를 강력히 요청했고, 미일 관계는 무력충돌 직전까지 악화됐습니다. 아직은 이들과 맞설 수 없었던 일본군은 결국 1922년 10월 본국으로 철수했습니다.

일본군을 철석같이 믿고 있던 젤레나 우크라이나에겐 날벼락이었습니다. 동맹을 헌신짝처럼 버린 일본이 떠나자 ‘붉은군대’가 쳐들어왔고, ‘두만강 옆’ 우크라이나는 3년의 짧은 역사를 남기고 사라지게 됐습니다.

‘붉은군대’는 일본군과 협력해 러시아에 저항했던 우크라이나인들을 색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탄압을 피해, 일본으로 망명한 젤레나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망명한 우크라이나인들을 당시 식민지였던 조선 함경도 일대에 정착하도록 도와줬습니다. (일본 패망 후 북한 지역을 점령한 소련군이 우크라이나인들의 집단 거주지를 발견하고 모조리 끌고갔다는 주장도 있지만 확실한 기록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한편 일본군은 극동의 우크라이나인들과 꾸준히 인연을 이어갔는데, 당시 일본군이 연해주 지역에 널리 퍼져 있던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이용해 소련에 대한 첩보 수집 활동을 1940년대까지 지속했다는 기록도 나옵니다.

'젤레'나 우크라이나와 일본의 끈끈한 인연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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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우크라이나-러시아 ‘시즌2’

오늘 새벽, 기시다 총리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일본은 국제 질서의 진정하고 강력한 수호자이자 우크라이나의 오랜 친구"라고 환영했는데, 여기서 ‘오랜 친구’란 젤레나 우크라이나부터 이어져 온, 100년이 넘는 두 나라의 인연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

유구한 인연 때문일까, 전쟁광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일본은 우크라이나에 줄 수 있는 건 다 줬습니다.

작년 전쟁 초기 3억 달러의 현금에 방탄복과 헬멧, 고성능 드론을 보낸 일본은 올해도 7,370억엔을 지원하기로 했고, 오늘 기시다 총리가 추가로 5억 달러를 보태겠다고 밝혔습니다.
(대략 합치면 우리 돈으로 8조원 정도인데, 참고로 독일 KIEL연구소의 작년말 기준 자료로 대한민국은 우크라이나에 약 1,368억원을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열정적인 이유는 러-일 간의 질긴 악연 탓입니다.

1904년 러일전쟁, 1918년 일본의 시베리아 출병, 1945년 소련의 대일참전. 근세에 한반도와 시베리아, 그리고 사할린-쿠릴에서 서로 총구를 겨눴던 일본과 러시아는 일본 패망 후 한동안 경제협력에 나서는 등 관계가 개선되기도 했지만, 작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일본에선 반러시아 감정이 다시 뜨겁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기시다 총리가 우크라이나를 향해 출발한 어제, 러시아 장거리 전략 폭격기 2대가 일본 주변에서 무력 시위를 벌였습니다. 러시아 국방부는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투폴레프라는 폭격기 2대가 전투기들의 호위를 받으며 7시간 동안 동해에서 비행했다면서, 그 동영상까지 공개했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기시다 총리의 우크라이나 방문에 대한 강한 반발 시위라고 분석했습니다.

극동의 일본과 유럽의 우크라이나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가 되기 어려운 거리입니다만, ‘공동의 적’ 러시아의 위협 탓에 ‘100년’의 인연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현영준 기자(yjun@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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