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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20년 만에 순직 인정, 사망보상금 지급 결정됐는데…유족 못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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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사망 보상금 달라" …손해배상 청구했으나 패소

"정당한 보상까지 발목"…'국가배상법 2조1항'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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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극단적 선택'을 한 군인이 20년 만에 순직을 인정받았지만 정작 유족은 사망보상금을 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유족이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이같은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관련 법 조항을 손질하거나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해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49단독 임범석 부장판사는 순직 군인 A씨의 형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2002년 세상을 떠난 군인 A씨는 20년 만에 순직을 인정받았다. 순직에 따른 사망보상금 1억2800만원이 산정됐으나 이를 받을 수 있는 부모는 이미 사망한 상황. 배우자와 자녀도 없어 유일한 가족인 친형이 보상금을 달라고 소송을 냈는데 이마저도 패소했다.

사망 후 20년이 지나 순직을 인정받았는데 유족 중 그 누구도 보상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동생 사망 보상금 달라"…국가 상대 손배소


사연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학군사관 40기 육군 소위로 임관해 모 지원사령부 소대장으로 근무하다가 같은해 11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 당시 군당국은 A씨를 순직이 아닌 '극단적 선택'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A씨의 형은 2019년 국민신문고를 통해 재조사를 요청했고 국방부는 2022년 1월 A씨의 사망을 '순직'으로 결정했다.

재조사 결과 A씨가 업무과중으로 인한 우울증을 호소했는데 당시 중대장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순직 결정에 따라 A씨의 유족은 사망보상금 1억2840만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문제는 보상금 청구 자격이 '직계존비속'으로 제한된다는 점이다.

A씨는 당시 미혼이어서 배우자나 자녀가 없고 부모는 모두 사망했다. 결국 A씨의 친형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그는 "유족 중 그 누구도 사망보상금을 청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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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의 모습. 2022.12.26/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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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족은 손해배상 못해…보상금 수령 여부와 무관"


그러나 법원은 그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가배상법 제2조 1항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유족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경우 민법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이중배상을 막기 위한 장치지만 A씨 사례처럼 아무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유족이 실제 보상금을 받았느냐와 무관하게 이 조항이 적용되고 있다.

임 부장판사는 "A씨 유족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발생한 이상 실제로 그 권리를 행사했거나,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와 관계 없이 국가배상법 2조 1항의 단서가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망인의 유족은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며 "이 소송은 더 살펴볼 필요 없이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임 부장판사는 1991년 대법원의 판결을 인용한다고 이 사건 판결문에 명시했다. 당시 대법원은 "연금법상 유족에 해당하는 사람이 없어 재해보상금이 실제로 지급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국가배상법 제2조 1항 단서의 적용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 친형 "너무 억울해…대법원까지 가겠다"

법조계에서는 이중배상을 막기 위한 국가배상법 일부 조항이 오히려 정당한 보상까지 받지 못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이 조항을 두고 "위헌 논란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헌법 29조 2항엔 군인이 직무집행과 관련 받은 손해는 법이 정한 보상 외의 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장 교수는 "논란이 여러 번 있었는데 해결되지 못하고 지금까지 흘러왔다"며 '1972년 소위 유신헌법에서 명문화돼 현행 헌법까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항 자체에 문제가 있지만 헌법을 개정하기 전에 법률을 갖고 다툴 수 없다"며 "헌법 개정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법 손질에 한계가 있다보니 법조계에서는 재판부가 조항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유족이 사망보상금을 실제 받았을 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해석하는 게 상식적이다"며 "보상금을 받지도 못하는 상황인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건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고 강조했다.

A씨 친형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는 "너무 억울하다"면서 "대법원까지 가볼 것"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순직이 인정됐는데도 그 누구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다.

ukge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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