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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문재인과 이인규의 각기 다른 기억,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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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이 권 여사와 공모, 아들 건호씨의 미국 주택 구입 자금 명목으로 140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보는 것이 상당하다.”(이인규 전 대검 중앙수사부장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中)

“대통령에게 큰 실수를 하게 된 권 여사님은 우리들에게 너무 면목 없어 했다.”(문재인 전 대통령의 회고록 ‘문재인의 운명’ 中)

세계일보

문재인 전 대통령(왼쪽)과 이인규 전 대검 중앙수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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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이었던 검사와 ‘방패’였던 변호사는 각자 다른 기억으로 한가지 사건을 마주하고 있다. 바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몬 박연차 게이트다.

노 전 대통령의 뇌물 의혹 수사 책임자였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검사장)은 최근 공개된 자신의 회고록에서 “노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가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당시 2억원이 넘는 피아제 시계와 노 전 대통령 일가 사업자금 명목, 미국 주택구입자금 명목 등으로 640만 달러를 받은 의혹 모두 다툼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변호사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 기억과는 상충한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인 ‘문재인의 운명’에서 시종 노 전 대통령은 당시 비리 의혹을 알지 못했고, 대부분 권양숙 여사가 연루된 의혹에 대해 뒤늦게 알았다고 주장했다.

때아닌 박연차 게이트의 재등장과 노 전 대통령이 당시 비리에 직접 개입했었는지를 두고 벌어진 진실 공방에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친노계를 중심으로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당시 수사검사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며 반발했다.

21일 정치권에 또다시 노 전 대통령이 거론되고 있는 이 논란은 이 전 검사장 회고록인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가 전날 출간되면서 촉발했다. 이 책은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로 불리는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뇌물수수 사건 수사기록이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억원이 넘는 명품시계를 받고, 아들의 사업자금과 미국 주택 구입 자금으로 640만 달러를 받는 등 개인 비리 혐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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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가 모두 사실이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의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가 진열돼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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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검사장은 노 전 대통령 소환조사 당시 상황도 나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노 전 대통령이 대검 중수부장실에서 “이 부장.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라고 언급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보기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이 시계 수수 혐의를 인정하는 부분으로도 읽힐 수도 있다. 이 전 검사장은 “당황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무어라 답변해야 좋을지 난감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노 전 대통령 뇌물 혐의 사건을 권 여사, 노 전 대통령 아들과 딸, 조카사위 등이 관련된 가족 비리라고 규정한 그는 “박 회장으로부터 권양숙 여사가 피아제 시계 2개를 받은 것과 노 전 대통령 일가가 사업자금 명목, 미국 주택구입자금 명목 등으로 640만 달러를 받은 의혹 모두 다툼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노 전 대통령 변호사였던 문 전 대통령은 다른 기억을 갖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2011년에 펴낸 저서 ‘문재인의 운명’을 통해 당시 비리의혹은 노 전 대통령의 잘못이 아닌 가족과 측근의 잘못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문재인의 운명에서 “대통령에게 큰 실수를 하게 된 권 여사님은 우리에게 너무 면목 없어 했다. 우리와 함께 계시다가도 대통령이 오시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대통령은 여사님뿐 아니라 정상문 비서관에 대해서도, 비록 당신 모르게 벌어진 일이지만 모두 끌어안으려 했다”고 밝혔다. 즉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이 지적한 각종 의혹에 대해 뒤늦게 알았으며 대부분 권 여사와 주변 비서진 잘못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문 전 대통령의 인식과 당시 대응은 이 전 검사장의 회고록에도 등장한다. 이 전 검사장은 “변호인 문재인은 ‘모든 잘못이 노 전 대통령과 상관없다’거나 ‘전혀 몰랐으며, 자신(노 전 대통령)도 모르게 벌어진 일’이라 대응했다. 잘못이 있다면 노 전 대통령이 아닌 그 가족과 측근에 있다는 식이었다. 특히 이런 전략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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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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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노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 뒤에 숨는 선택을 하는 등 첫 단추를 잘못 끼움으로써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고 봤다. 이 전 부장은 “박연차 회장이 중앙수사부 특별조사실에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대통령님! 우짤라고 이러십니까!’라고 하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고 했다.

결국 2009년 5월 23일 아침,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고, 이 사건은 곧 공소권 없음을 이유로 종결됐다. 그 결과 검찰이 주장했던 ‘노 전 대통령이 권 여사와 함께 직접 박 회장 측에 금품을 요구했는지’, 노 전 대통령 측이 주장했던 ‘당시 금품 수수 의혹에 대해 몰랐는지’에 대한 진실을 마주할 기회는 사라졌다.

지금까지 노 전 대통령과 박연차 게이트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부인해온 민주당 측과 친노계 인사들은 이 전 검사장의 회고록에 즉각 반발했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유튜브를 통해 “(이인규 회고록은) 자기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는 얘기를 일관되게 한다”고 이 검사장 회고록을 평가했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명 대표로도 모자라 죽은 노 대통령까지 없는 죄를 만들고 부관참시를 하려 든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작수사를 벌이고 정치보복 여론재판과 망신주기에 몰두한 책임자가 바로 이인규”라며 “제아무리 유검무죄 무검유죄, 만사검통의 시대가 되었다지만 궤변이 진실로 둔갑할 순 없다”고 지적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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