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20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이 우크라이나에 12개월에 걸쳐 155㎜ 탄약 100만 발을 추가 지원하기로 합의하자 즉각 환영의 뜻을 밝힌 뒤 “탄약의 신속한 전달, 지속적인 지원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EU가 합의한 ‘탄약 100만 발’은 지난해 2월 개전 이후 현재까지 EU 회원국들이 지원한 누적 탄약 규모(약 35만 발)의 3배에 육박하는 규모다.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17일 동부 바흐무트 인근에서 155㎜ 포탄을 정리학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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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가디언 등에 따르면, 이날 한노 페브쿠르 에스토니아 국방장관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외교·안보 사안 회의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EU의 외교·국방장관들은 우크라이나에 155㎜ 포탄 100만 발을 보내기로 합의했다”며 “미해결된 세부 사항이 아직 많지만, 이번 합의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진리를 확인시켜줬다”고 반겼다. 에스토니아는 EU의 탄약 100만 발 공동 구매를 처음 제안한 나라다.
회의에 앞서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참가자들에게 “이번 회의에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어려움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며 “반드시 합의하길 바란다”고 압박했다.
이날 EU의 합의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대한 탄약 지원에 필요한 대금 20억 유로(약 2조8000억 원)는 EU의 별도 기금인 유럽평화기금(EPF)으로 충당된다. 이중 10억 유로(약 1조4000억 원)는 기존의 탄약 재고를 우크라이나에 전달하는 회원국에 지급하고, 나머지 10억 유로는 공동 구매에 참여하는 회원국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구체적인 보상 비율 등은 추가 회의를 통해 확정할 방침이다.
20일(현지시간)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가 회의 시작을 알리는 종을 울리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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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회원국들은 우선 기존 탄약 재고 및 계약 체결 물량을 5월 말까지 우크라이나에 지원한다. 공동 구매는 9월 말까지 방산업체와 첫 물량 계약 체결을 목표로 추진된다.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 요청이 있으면 탄약 대신 미사일도 포함하기로 합의했다.
EU가 이처럼 우크라이나에 탄약 지원을 서두르는 건, 현재 소모전 양상의 교착 상태에 빠진 전쟁에서 재래식 무기와 탄약 재고를 어느 쪽이 먼저 재충전하느냐에 전쟁 승패가 달렸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달 초 보렐 EU 고위대표는 “우크라이나에 지금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건 탄약 공급이며, 우리가 탄약 지원에 실패한다면 전쟁 결과는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현재 1000㎞에 달하는 전선에서 막대한 포탄을 소비하는 포격전을 치르고 있다. EU 추정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한달 평균 155㎜ 포탄 9만 발을 소진 중이다. 155㎜를 포함한 전체 포탄은 매일 4000~7000발 가량 발사한다. 이는 평화 시기 유럽 소국의 1년 소모량과 맞먹는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하루에 발사한 전체 포탄은 2만~5만 발로 우크라이나군을 압도한다. 보렐 고위대표가 “(포탄 지원을 서둘러) 이 격차를 좁혀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특히 7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 전투로 양측의 탄약 소진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뉴욕타임스(NYT)는 바흐무트 전투를 “6·25 전쟁 이래 최대 포격전”이라 표현하며 “우크라이나군의 T-80 탱크의 포탄은 모두 바닥났다”고 전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군의 한 지휘관은 NYT에 “우리 부대가 러시아 T-90 탱크를 무력화시켰는데, 상부에서 포탄을 아끼라고 지시해 마무리 포격을 멈춰야했다”고 말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박격포를 발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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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하 스테파니시나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전쟁을 지속적이고 영속적이며 소모적으로 만들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하고 있으며, 작전을 계속할 자원·탄약·예비 병력도 갖고 있다”면서 “우리는 탄약과 포탄을 필요한 만큼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소모전 전략 앞에서 우크라이나군의 탄약과 포탄 부족이 심각하단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특히 양측은 올봄 대공세를 앞두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봄 공세를 러시아군에 점령당한 영토를 되찾을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 NYT는 “봄 공세 승패의 결정적 역할을 할 무기가 곡사포·박격포 등의 포탄”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날 EU의 합의에도, 탄약 부족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군의 상황이 당장 반전되긴 어려울 거란 전망도 나온다. 이날 EU 합의안에는 EPF 기금 지원 대상을 ‘EU 27개국 및 노르웨이에 기반을 둔 업체’로 국한했다. 탄약 공동구매에 EU 기금이 대규모로 투입된 만큼, 한국 등 역외 업체는 배제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이미 유럽 역내 방산업계 생산 역량이 한계에 달했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어 ‘12개월간 100만발 지원’이라는 EU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탄약공장에 비치된 155㎜ 탄약.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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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략 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이안 윌리엄스 부국장은 “현재 가장 큰 문제는 탄약 생산의 병목 현상”이라면서 “통상 어떤 방산업체도 그렇게 빨리 증산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역시 “오늘 발주한 일부 주문이 도착하기까지 2년 반이 걸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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