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외교부 장관(왼쪽)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지난 18일 각각 KBS와 YTN 방송 인터뷰에 출연해 발언하고 있다. KBS 및 YTN 뉴스 유튜브 영상 갈무리 |
정부가 한·일 정상회담을 둘러싼 ‘굴욕·빈손 외교’라는 비판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강제동원(징용) 문제와 관련한 일본의 추가 사과 필요성과 대일 구상권 청구 가능성에 재차 선을 그으며 한·일 관계를 대승적으로 개선했다는 성과 홍보에 주력했다.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발을 “정치적 이해관계”로 규정하며 소통에 적극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박진 외교부 장관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등은 지난 16일 일본 도쿄에서 진행된 한·일 정상회담 직후 맞이한 주말에 각각 방송에 출연해 회담 관련 논란을 일일이 해명했다. 핵심 쟁점인 강제징용 ‘제3자 변제’ 배상안을 일본에 제안한 정당성을 강조했다.
한국이 제3자 변제안을 제시하며 촉구한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이 없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장관은 지난 18일 KBS 인터뷰에서 “기시다 총리가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포괄적으로 계승했다고 한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며 “새로운 사죄를 받는 게 능사가 아니고 일본이 이제까지 했던 것을 일관되고 충실히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일본의 명시적인 추가 사과가 없었다는 지적을 반박한 것이다. 박 장관은 “어떻게 한번에 다 채워지겠나”라며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국내 정치 상황상 구체적인 사과 표현을 이끌어내기 어려웠다는 취지로도 설명했다. 김 차장은 지난 18일 YTN 인터뷰에서 “일본 자민당 내에서도 조금 더 강한 입장이 있고 기시다처럼 유연한 입장이 있는데 앞으로 4월 일본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며 “일본 국내 정치에서 조금 더 긍정적 환경이 조성된다면 또 지켜볼 일”이라고 여지를 뒀다.
김 차장은 제3자 변제안에 대해 “일본과 비공개로 협의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결정하려고 한다고 했을 때 사실 일본이 깜짝 놀랐다”며 일본 측이 “이렇게 하면 한국 국내 정치에서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우리로서는 이것이 학수고대하던 해법인 것 같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들이 기대하기에 (일본이) 따라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성의 있는 조치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지급할 판결금과 관련해 향후 일본에 구상권을 행사할 계획이 없다는 윤석열 대통령 입장도 재확인했다. 박 장관은 “구상권을 행사한다면 우리가 애당초 피하려 했던 강제집행과 다를게 뭐가 있겠나”라고 선을 그었다.
조현동 외교부 1차관도 19일 YTN 인터뷰에서 “구상권 행사 여부는 우리의 권리다. 따라서 그걸 갖고 일본으로부터 뭘 주고받고 할 대상은 아니다”라며 “강제징용 해법이 순조롭게 이행되고 한·일 관계도 잘 긍정적으로 진전된다면 구상권 문제가 앞으로 불거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현안 해결을 위해 일본에 일방적으로 양보했다는 ‘빈손 외교’ 지적에도 “큰 그림을 봐야 한다”며 동의하지 않았다. 박 장관은 “12년 만에 (한·일 정상의) 양자 회담이 됐다는 것 자체가 큰 사건”이라며 “주고받기식 협상이 아니라 우리 정부의 대승적이고 주도적 결단에 따라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법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장관은 북핵 위기 고조에 따른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를 이번 회담의 “굉장히 중요한 성과”라고 강조했다.
김 차장도 “한·일 (관계)정상화에 첫발을 내디뎠다”며 “이번 정상회담에 임할 때 적어도 윤 대통령과 참모진, 외교부 입장은 ‘사사건건 우리가 하나 뭘 할테니 당신네 일본 정부는 이걸 해다오’하는 접근을 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기시다 총리가 회담에서 2015년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과 독도 문제를 언급했다는 일본 측 발표에는 거리를 뒀다. 박 장관은 “독도라든지 위안부 문제는 의제로서 논의된 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시다 총리가 그 부분에 대해 말을 꺼냈다고 받아들여도 되겠나’라는 진행자 질문에 “정상회담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기시다 총리가 언급은 했지만 회담 안건으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대통령실 복수의 관계자는 “독도는 아예 거론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 차장은 이와 관련해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사자의 한 사람이 기시다 당시 외무상이었다”며 “양국이 추가로 할 조치는 남아있지 않다. 일본이 우리에게 요구해 올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도는) 현재 우리가 점유하고 있는 우리 땅”이라며 “일본 당국자가 우리에게 독도 얘기를 한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조 차관도 “(독도와 위안부 문제는) 사전에 실무진 협의 과정에서도 의제로 상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 차관은 위안부 합의에 따라 만들어졌다가 해산된 화해치유재단과 유사한 재단을 설립할지를 묻자 “아이디어이긴 한데 아직까지 구체적이고 진지한 검토가 이뤄진 바는 없다”고 답했다.
강제징용 배상안 발표와 한·일 정상회담을 두고 여론 악화 조짐이 나타나자 외교·안보 핵심 당국자들이 적극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전주 대비 1%포인트 하락했다는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가 지난 17일 나왔고,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8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한·일 정상회담 규탄’ 범국민대회를 여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배상안에 반대하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설득하되 야당과 시민단체 등의 반발은 개의치 않겠다는 ‘일방통행식’ 소통 방침을 내비쳤다. 김 차장은 “길에서 집회하는 분들의 입장을 잘 검토해보면 일본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을 입장을 주장하고 계시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그러면서 “당사자가 아닌데도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이 문제를 곡해하거나 사실 관계를 뒤틀거나 정치화하는 것에 대해 저는 강력하게 반대하고 싶다”며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말들은 좀 더 조심스럽게 걸러서 들을 필요가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한국갤럽 여론조사는 지난 14~16일 전국 만18세 이상 1003명에게 실시했다.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하면 된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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