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환갑 맞은 K라면② - 버스비 5원→1200원, 라면값 10원→768원
먹거리 중에 '서민' 수식어를 단 상품들이 있다. 소주와 라면이 대표적이다. 서민 식품은 친근함을 주지만 그만큼 가격에 민감하다. 얼마전 소주가 '서민 술'이란 이유로 가격인상에 실패했다. 라면도 마찬가지다. 원자잿값이 올라도 가격에 반영하기 어렵다. 업계에서 "공공요금보다 올리기 힘든 게 라면값"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가격 지표로도 확인된다. 라면은 버스비 등 공공요금은 물론 자장면 등 다른 외식비와 비교해 지난 60년간 가격 상승률이 현저히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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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버스비 2배였던 라면값, 아직도 1000원 미만…가격 못 올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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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국내에서 처음 판매된 삼양라면 1봉지 가격은 10원이었다. 당시 시내버스 기본구간 이용료 5원보다 2배 높았다.
60년이 지난 현재 삼양라면 가격은 768원으로 버스 기본요금 1200원(카드 이용 시)보다 432원 저렴하다. 이마저도 지난해 말 가격을 9.3% 올려 좁혀진 것이다. 올해 하반기 버스 기본요금이 200~300원 오르게 되면 라면값의 2배가 될 수 있다.
라면은 이 기간 다른 품목과 비교해도 가격 인상 폭이 작다. 1963년 25원이었던 짜장면은 올해 2월 평균 가격이 6723원(서울 기준)으로 269배 올랐다. 1갑에 13원이었던 담배는 4500원으로 346배 뛰었다.
껌, 과자 등 제과류도 이제 1000원 이하 제품을 찾기 어렵다. 식당에서 파는 냉면값은 1만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2261달러(원화 기준 4220만3000원)이고, 누적된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라면은 다른 품목과 달리 거의 가격을 올리지 못했다. 사실상 '가격 통제' 품목이었던 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에는 이례적으로 가격을 내리기도 했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매대에 라면이 진열돼 있다. /사진제공=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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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통제에 신제품과 수출로 활로…라면은 한국이 가장 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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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업체들은 제품 가격을 올리는 게 어렵다고 보고, 기존 상품과 차별화된 신제품을 만들어 수요층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농심이 1982년 출시한 국내 최초 해물우동 라면 '너구리'는 당시 경쟁사 제품보다 2배 높은 200원대 가격을 책정했다. 그런데도 출시 두 달 만에 2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고, 1983년에는 매출 150억원을 돌파했다. 이제는 매년 1000억원 넘게 팔리는 파워 브랜드가 됐다. 1984년 출시한 '짜파게티'도 기존 제품보다 비싼 200원대 가격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지난해까지 약 87억5000만개가 팔렸으며 매년 200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해외로 판매처를 넓혀간 것도 라면 업계의 생존 방식이었다. 라면 수출은 1969년 시작돼 일반 공산품이나 제과류에 비해 수출 시기가 빠른 편이다.
라면은 더 이상 내수용 상품이 아니다. 해외 매출이 국내를 넘어선 지 오래다. 단일 브랜드 중 가장 많이 팔리는 신라면은 2021년 총매출 9300억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5000억원이 해외 시장에서 비롯됐다.
이런 결과는 수출량 증가와 맞물려 해외 라면 판매가격이 국내보다 높다는 점도 영향을 줬다. 일례로 현재 국내 대형마트에서 1개당 820원에 파는 신라면은 미국에서 1~1.5달러(약 1300~1950원), 중국에서 5.5위안(약 1030원) 수준으로 가격이 책정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판매 제품의 출고가격이 국내보다 높다"고 설명했다.
최근 K푸드 인기에 힘입어, 라면 수출국은 확대되는 추세다. 이미 수출국이 100여 곳에 달하는 제품도 나오기 시작했다.
유엄식 기자 usy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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