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軍이 선택한 4족 로봇 최강 기업
지난 2월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2023(MWC23)’에서 삼성전자는 의외의 제품을 선보였다. 바로 로봇견이다.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는 MWC23이 열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피라 그란 비아 전시장에서 로봇 등 협력사 기술과 제품을 공개하는 별도 전시 부스를 마련했다. 해당 전시 부스는 외부 노출이 어려운 신기술과 제품들로 채워져 일반 관람객 출입은 통제했다. 이 자리에 등장한 로봇견이 고스트로보틱스(Ghost Robotics) 4족 보행 로봇인 ‘비전60’이었다. 장용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 B2B그룹 상무가 지난 3월 1일 5G 솔루션의 혁신성과 성장성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비전60’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로봇 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엿보기에 충분한 사례였다. 삼성전자는 지난 1월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 10.2%를 인수하고 헬스케어 로봇 출시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번 MWC23에서 고스트로보틱스의 ‘로봇견’을 공개하며 방산·경비 등으로 로봇 사업 보폭을 넓히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른 로봇들이 실내용 위주로 개발된 데 비해 고스트로보틱스는 야외 작전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로봇이다. (고스트로보틱스 제공) |
4족 로봇 중 실용성 최강
미군, 영국군 등 잇따라 러브콜
2015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설립된 고스트로보틱스는 보스턴다이내믹스와 쌍벽을 이루는 로봇견 기업으로 인정받는다. 펜실베니아대(유펜) 출신 인도계 과학자 2명이 만들었다. 로봇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유펜의 다니엘 코이츠첵(Daniel Koditschek) 제자들로 4족 보행 로봇(Quadruped Unmanned Ground Vehicle·Q-UGV)은 전 세계 최고 기술을 자랑한다.
‘비전60’이라는 이름에서 ‘60’은 앞다리와 뒷다리의 간격이 60㎝라는 점에서 붙은 숫자다. 4족 보행 로봇은 바퀴형이나 궤도형과 비교해 강점이 많다. 자갈밭이나 언덕 같은 자연환경이나 계단처럼 평탄하지 않은 지형에서 민첩하고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다. 센서, 조명 등을 추가로 부착하는 데도 훨씬 자유롭다. 처음부터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는 뜻이다.
‘비전60’은 물속 헤엄도 가능하다. 고스트로보틱스는 ‘비전60’ 로봇에 오닉스인더스트리즈의 ‘NAUT(Nautical Autonomous Unmanned Tail)’를 장착하면 4족 보행 로봇을 물속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수륙양용 로봇으로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기존 4족 보행 로봇들은 방수 처리를 통해 얕은 물을 건너는 정도지만 비전60은 물속에 잠수해 수영하는 것이 가능하다. 오닉스의 NAUT 제트 추진 장치는 한 번 충전으로 25분 동안 최대 3노트(시속 약 5.6㎞)까지 헤엄칠 수 있다.
특히 미군과 영국군이 이 로봇을 활용한다는 점이 알려지며 유명세를 탔다. 미국 틴들 공군기지는 기지 주변 순찰용으로 ‘비전60’ 4대를 시범 도입했다. 틴들 공군기지에서 24시간 감시 업무를 수행하며 좋은 평가를 얻었고 이후 포틀랜드 공군 주방위군기지(ANGB)까지 이어졌다. 영국도 10대의 ‘비전60’을 도입한 뒤 50만파운드의 R&D(연구개발) 자금을 대기도 했다. 영국 국방부는 의무 보급, 기밀, 감시, 정찰 등에서 활용한다. 영국군은 200만파운드의 추가 예산을 배정해놨다.
군용뿐 아니다. 화재나 구호 활동 등에도 적극 활용된다. 고열과 짙은 연기 등으로 진입이 어려운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을 대신해 인명 구조에 나설 수 있다. 비전60은 내부 센서를 통해 화재를 감지한다. 화재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로봇견이 현장에 투입되도록 개발됐다.
군사용 목적 외에도 동굴 탐사, 구조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실용성이 다른 로봇 대비 압도적으로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스트로보틱스 제공) |
한국서 본격적으로 판 키운다
다믈멀티미디어 인수…테마주 논란도
현재 고스트로보틱스는 한국에서 생산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스트로보틱스테크놀로지는 미국 로봇 업체 고스트로보틱스와 국내 제품 생산, 수입, 공급, 판매 등에 대해 독점 계약을 맺은 관계사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판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대통령경호처에 로봇을 납품할 때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총판을 담당했던 업체의 실소유주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1000만원 고액 후원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야당을 중심으로 ‘깜깜이 계약’을 진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고스트로보틱스 측은 일말의 특혜도 없었다며 논란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회사 관계자는 “실제 현장에서 실용성을 증명해낸 로봇은 고스트로보틱스 로봇밖에 없었다. 군이나 정부기관은 엄격한 기준으로 테스트를 진행한다. 오로지 기술력으로 따낸 계약”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방산업계에서도 해당 계약이 특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내다본다. 현재 야전에서 고스트로보틱스만큼 활발하게 쓰이는 4족 로봇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 시장에서는 ‘테마주’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국법인인 고스트로보틱스테크놀로지는 지난 1월 다믈멀티미디어 경영권 지분 300만주(29.36%)를 인수했다. 또한 다믈멀티미디어가 추진하는 유상증자에 참여해 신주 400만주를 추가 확보한다. 인수 사실이 알려진 이후 다믈멀티미디어 주가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최근 MWC23에서 삼성전자가 ‘비전60’을 공개하며 또 한 번 주가가 요동쳤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테마주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설명한다. 주가가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상승폭이 ‘테마주’라고 보기에는 낮기 때문이다.
다믈멀티미디어는 멀티미디어반도체를 개발·판매하는 기능형 반도체 설계전문회사(팹리스)다. 1998년 12월 설립됐고 2007년 10월 코스닥에 상장했다. 다믈멀티미디어 최대주주인 베노홀딩스는 2021년 경영권 지분을 사들였다. 고스트로보틱스테크놀로지는 이후 다믈멀티미디어를 통해 우회 상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스턴다이내믹스와 비교해보니
종합 로봇 vs 4족 보행…전공이 달라
“스팟도 정말 훌륭한 제품이다. 관절의 유연성과 움직임은 로봇류 중 가장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다.”종합 로봇 vs 4족 보행…전공이 달라
경쟁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스팟’에 대한 고스트로보틱스 관계자의 말이다. 두 기업은 전 세계에서 ‘상용화’가 된 4족 로봇을 생산하는 ‘유이(唯二)’한 업체다. 때문에 경쟁 관계로 종종 묶이고는 한다. 다만, 깊게 들여다보면 차이점이 명확해진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4족 로봇만 만들지 않는다. 주력 제품은 인간처럼 움직이는 ‘2족 보행’ 로봇이다. 도심형항공(UAM) 등에도 진출해 있다. 2족 보행 로봇을 비롯해 전체 로봇과 관련해 전반적으로 기술력 자체가 매우 뛰어나다.
반면 고스트로보틱스는 4족 로봇에만 주력한다. 4족 로봇 분야에서만큼은 보스턴다이내믹스보다 기술력이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비전60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스팟’보다 발열은 적은 반면 구동 시간은 길다는 강점을 자랑한다. 스팟의 최대 구동 시간이 90분인 데 비해 비전60은 210분이다.
미국에서는 보스턴다이내믹스와의 특허 싸움도 남아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지난해 말 고스트로보틱스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델라웨어 연방법원에 접수된 110쪽 분량 소장에 따르면, 보스턴다이내믹스는 고스트로보틱스의 ‘비전60’과 ‘스피릿40’이 자사 4족 보행 로봇 관련 특허 7개를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4족 보행 로봇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에 적용된 시각 정보 수집, 환경 데이터 처리, 계단 오르는 방법 등 특허 기술을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측은 “혁신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생명선이며, 우리 로봇 기술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약 500건의 특허와 특허 출원을 성공적으로 제출했다. 새로운 모바일 로봇 시장에서 경쟁을 환영하지만, 모든 기업이 지식재산권을 존중할 것으로 기대하고, 그런 권리가 침해됐을 때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소장에 미국 네바다주 넬리스 공군기지 등에서 2020년과 2021년 미 공군이 실험한 고스트로보틱스의 4족 보행 로봇 사진을 포함시켰다. 이에 대해 고스트로보틱스 측은 “특허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대응 방침을 밝혔다. 현지에서는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상장 전 투자자들에게 라이벌과의 기술 경쟁에서 ‘앞서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소송을 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0호 (2023.03.15~2023.03.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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