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평성 이유로 종량세 도입 때 물가연동제 적용
매년 세금 오르는데 맥주 값은 더 크게 올랐다?
추경호 부총리 "물가연동제는 재검토 필요하다"
편집자주금융은 어렵습니다. 알쏭달쏭한 용어와 복잡한 뒷이야기들이 마구 얽혀있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알기 위해 수십개의 개념을 익혀야 할 때도 있죠. 그런데도 금융은 중요합니다. 자금 운용의 철학을 이해하고, 돈의 흐름을 꾸준히 따라가려면 금융 상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합니다. 이에 아시아경제가 매주 하나씩 금융이슈를 선정해 아주 쉬운 말로 풀어 전달합니다. 금융을 전혀 몰라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로 금융에 환한 ‘불’을 켜드립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의 맥주 진열대. /문호남 기자 munon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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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탁주의) 종량세 도입은 좋은데 물가연동제는 재검토가 필요하다. 물가와 연동이 되어 있는 게 적절치 않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9일 술과 관련된 세금에 대해 밝힌 생각입니다. 재정당국의 수장은 왜 주(酒)세 제도의 개편을 언급했을까요?
주세는 크게 종가세와 종량세로 구분합니다. 말 그대로 종가세는 가격에, 종량세는 용량에 세금을 매기는 방식입니다. 만약 술이 종가세를 적용받는다면 주류가격에 세율을 곱하기 때문에 같은 주종이더라도 가격을 낮게 하면 세금이 적습니다. 반대로 종량세라면 주류의 양에 세율을 곱하므로 제품가격이 달라도 주종과 양이 같으면 내는 세금도 같습니다.
한국에 주세 제도가 처음 만들어진 건 1949년입니다. 이때는 모든 술에 종량세를 적용했습니다. 그러다 1965년 종가세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국민들의 주류소비를 줄이고 세금 수입을 확대하기 위해서였죠. 이때 만들어진 ‘술=종가세’ 원칙은 약 50년간 유지돼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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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종가세 때문에 국내 맥주 업체들이 타격을 받기 시작한 겁니다. 국내 제조 맥주는 출고되는 시점의 가격에 세금을 매깁니다. 그러다 보니 제조하는 과정에 들었던 비용과 유통 등을 위한 판매관리비, 매출, 이익 등이 모두 포함된 가격에 세금이 붙었죠. 당연히 맥주 업체들이 부담해야 할 세금도 많았을 거고요.
그런데 수입 맥주는 수입을 신고하는 시점의 가격에 세금을 매깁니다. 수입 후 유통에 드는 비용이 빠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저렴한 세금을 냈죠. 세금부담이 적으니 수입 맥주 업체들은 가격을 훨씬 저렴하게 책정할 수 있었고요. 덕분에 수입 맥주 업체들은 ‘4캔 1만원’처럼 공격적인 마케팅이 가능했지만 국내 업체들은 불가능했습니다.
이에 정부는 2020년 1월1일부터 맥주와 탁주세에 부과하던 종가세를 종량세로 전환했습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당시 캔맥주의 경우 종가세였을 때 붙었던 세금이 1리터당 1121원이었지만, 종량세 전환으로 세금은 830원으로 291원 줄어들었죠. 국산 수제 맥주가 다양해진 것도, 국내 맥주 업체들이 ‘4캔 1만원’ 프로모션을 펼치게 된 것도 종량세 전환 덕분이었고요.
자료: 국세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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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소주는 위스키나 와인처럼 그대로 종가세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소주도 ‘증류주’이기 때문에 같은 증류주인 위스키나 와인과 세금체계가 같아야 하거든요. 1997년 유럽연합(EU)과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한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난 결론입니다.
그래서 맥주·탁주의 종량세 전환으로 문제점도 생겼습니다. 바로 과세 형평성인데요. 사실 종량세는 일반적인 세금체계가 아닙니다. 종량세를 적용하면 물가가 오를 때마다 세금을 깎아주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매년 상품의 가격은 오르고 수입도 늘어나는데 세금은 가격이 아닌 양에 따라 매기니 그대로인 거죠. 지금도 종가세가 적용되는 소주·와인·위스키는 물가가 오를수록 세금 인상 부담을 고스란히 지고 있고요.
따라서 정부가 도입한 게 ‘물가연동제’입니다. 정부가 매번 물가에 맞춰 세금을 올릴 수도 있지만 과정이 복잡하겠죠. 대신 조세제도에 물가연동제를 만들어 놓으면 물가가 오를 때 자동으로 세금이 인상됩니다. 과세 형평성 문제도 다소 완화되고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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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추경호 부총리는 왜 물가연동제의 폐지를 말했을까요? 주류업계의 최근 가격인상 정책이 원인입니다. 추 부총리는 “예를 들어 (물가연동제로) 세금이 15원 올랐는데 맥주가격을 1000원에서 1015원으로만 올렸느냐”며 “소비자의 물가를 편승인상하는 효과가 있어서 근본적으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가연동제로 세금이 매년 오르는데 실제 주류업체들이 이를 빌미로 제품가격을 더 많이 올리는 경우가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추 부총리는 물가연동제의 대안으로 “전문가들과 협의해볼 생각”이라면서 “일정 시점에 한 번씩 국회에서 세액을 정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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