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경향신문 언론사 이미지

‘디지털 네이티브’ 알파들의 성교육은 달라야 한다

경향신문
원문보기

‘디지털 네이티브’ 알파들의 성교육은 달라야 한다

서울맑음 / -3.9 °
디지털 음란 콘텐츠·성범죄 범람으로 성교육도 ‘일타 강사 시대’가 도래했다. 전문가 3인이 알려주는 팁을 들어봤다.

디지털 음란 콘텐츠·성범죄 범람으로 성교육도 ‘일타 강사 시대’가 도래했다. 전문가 3인이 알려주는 팁을 들어봤다.


“엄마는 야동을 본 적이 있어요?” 송미연씨가 최근 초등학교 2학년 아들에게 받은 질문이다. 송씨는 “남편과 함께 아들의 사춘기를 대비해 숱한 예상 질문과 답안을 준비했지만 그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예고도 없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스마트 기기 사용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무방비로 유해 콘텐츠에 노출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성년자를 향한 성범죄도 교묘하게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성을 터부시하는 문화와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성교육은 방대한 정보에 익숙해진 아이들의 호기심과 지식을 채워주기에 역부족이다. 디지털 시대의 중심에 서 있는 ‘알파세대’ 성교육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3인의 성교육 전문가에게 그 해답을 들었다.

■ 언제까지 휴지만 넣어줄 겁니까

최근 가정으로 전문강사를 불러 동성 친구들과 함께 강의를 듣는 ‘소규모 그룹 성교육’이 인기다. 강남의 한 남녀공학 중학교에 재학 중인 이서율 학생은 “반 친구 절반 정도가 이미 비슷한 수업을 들은 걸로 안다”며 “콘돔이 없을 때 가능한 피임 방법이라든가 성범죄에 노출됐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것을 배울 수 있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기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다수의 소규모 성교육 강의는 2~6명을 정원으로 한다.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진짜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최소 인원이자 강사들이 아이의 성향과 인식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수업은 60분에서 90분 내외로 진행되며, 학생 수와 강사의 경력에 따라 금액은 천차만별이지만 일부 강사의 수업은 아이돌 콘서트 티켓 예매 못지않게 인기다.

성교육 업체 와이미의 이시훈 대표 강사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관심사를 꿰뚫기 위해 아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커뮤니티를 집중해 읽는다. 일러스트 와이미 제공

성교육 업체 와이미의 이시훈 대표 강사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관심사를 꿰뚫기 위해 아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커뮤니티를 집중해 읽는다. 일러스트 와이미 제공


성교육 업체 와이미의 이시훈 대표 강사는 남학생과 아들 부모들 사이에서 ‘일타 강사’로 불린다. 미디어를 전공하고 보건교사인 어머니의 권유로 성교육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된 그는 마치 친한 동네 형처럼 자기 경험을 풀어내는 것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연다.


또한 그는 ‘온라인 바바리맨을 만났을 때’ ‘엄마 직캠 사건이 범죄인 이유’ 등 실질적인 사례를 기반으로 아이들의 궁금증에 답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과거 1세대 성교육 강사들이 ‘아들이 자위행위를 시작하면 좋은 휴지를 넣어두라’ 권했다면 그의 강의는 한 걸음 더 다가가 아이들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언어로 풀어내는 시간에 가깝다.

“요즘 아이들은 유튜브 댓글에서 ‘섹스’라는 단어를 배우고, 오픈채팅을 하며 혐오와 성희롱 표현들을 알아가요. 일부 유튜버들이 올리는 ‘19금’ 영상에 고스란히 노출된 아이들이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같은 책에 관심이 있겠냐고요(웃음). 제가 선택한 방법은 아이들의 삶에 들어가는 것이었어요.”

그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관심사를 꿰뚫기 위해 아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커뮤니티를 집중해 읽는다. 간혹 성별에 따라 다른 관심사를 보이기도 하는데 접근 방식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바로 교감이다.


“남학생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자신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보는 시선을 무척 속상해하더라고요. 억울함이 쌓이면 상처와 결핍이 자리하게 되고 이는 복수로 이어질 수 있거든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지하게 하고 그런 다음 가해자가 되지 않는 법을 알려줘야 해요.”

또래 걸그룹이나 버추얼 캐릭터를 보며 갖게 되는 아름다움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나 ‘성상품화’에 대한 경계심도 그가 강조하는 대목이다. 그는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아름답다고, 선정적인 표정이 예쁜 표정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며 “헐벗음에 가까운 의상이나 촬영, 편집 과정에서 은연중 들어 있는 어른들의 성적 코드가 여과 없이 반영된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쉽게, 자연스럽게 성교육을 시작할 수 있는 공간은 가정이다. “가족이니까 괜찮다”는 관용은 매정해 보일지라도 줄여나가야 한다. ‘부모와는 괜찮았던 것’이 애인, 친구, 직장 동료에게는 성범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험에서 체득되는 것만큼 좋은 교육은 없어요. 만약 아이가 ‘안아줘’라고 한다면 10번 중 1번 정도는 ‘지금은 엄마가 원하지 않아. 대신 5분 뒤에 안아줄게’라고 말한 뒤 시간이 됐을 때 아이를 안아주세요. 이 과정이 반복되면 아이는 ‘타인과의 포옹이 매 순간 오케이 되는 것은 아니구나’를 깨닫게 될 거예요. 좀 더 크면 성적 동의를 구할 때 ‘30분 전에는 됐어도 지금은 아니구나’라는 의미를 이해하게 되고요.”

처음부터 성이 익숙한 아이는 없다. 번뇌와 놀람 등 다양한 감정을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알아갈 뿐이다. 부모들도 이를 인정하고, 달라진 인식과 태도로 아이들을 봐야 한다.

“학부모 교육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그래서 우리 아이는 어디까지 알던가요’입니다. 뉴스만 켜면 나오는 디지털성범죄, 성에 대한 이슈에서 비롯된 걱정이겠죠. 그런데요, 그 모든 걱정을 내 아이에게 투영하진 말아주세요. 간혹 보면 지나치게 성 이슈를 내 아이에게 벌어질 일이라고 비약하는 분들이 있어요. 성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는 긍정적인 톤을 유지하는 것이 좋아요. 기다리고, 위로하고, 응원해주세요.”

이석원 자주스쿨 대표는 “‘경계 존중 교육’이 바탕이 되어야 다른 사람이 나의 경계에 침범했을 때 ‘싫다’라고 분명한 의사표현을 할 수 있고, 동시에 아이 역시 다른 사람의 경계에 들어가는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석원 자주스쿨 대표는 “‘경계 존중 교육’이 바탕이 되어야 다른 사람이 나의 경계에 침범했을 때 ‘싫다’라고 분명한 의사표현을 할 수 있고, 동시에 아이 역시 다른 사람의 경계에 들어가는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성교육은 일상적이어야 한다

성교육은 일회성으로 끝내기보다는 생애주기에 따라 꾸준히 정보를 추가하고 점검하는 것이 좋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성교육의 적기는 12~18세다. 그러나 영·유아의 부모와 성인도 교육의 대상이다.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5학년 남매를 둔 박인숙씨는 “큰애 때는 주로 딸을 둔 엄마들이 성교육에 관심을 가졌다”면서 “그런데 최근에는 성별과 나이의 경계가 사라진 느낌이다. 학부모들도 많이 받는다”고 전했다.

이석원 자주스쿨 대표가 말하는 현장 분위기도 비슷하다. 그는 “n번방 사건 이후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아이가 가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커진 것 같다”면서 “따지고 보면 성교육은 애초 성별 구분 없이 모두가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팬데믹을 지나며 아이들의 스마트폰 보급률 또한 증가했다. 이는 디지털 환경, 모바일 접속이 수월해지고 나아가 음란물이나 유해 영상 노출의 위험이 동반 상승했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목은 아이들이 성에 대한 선입견을 품지 않게 하는 것이다. 성을 무섭거나 두려운 것으로 인식하게 되면 해서는 안 되는 것, 나아가 몰래 해야 하는 것으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다수의 부모는 본인의 아이가 어린 나이에 구구단을 떼고 미적분을 하면 영재라며 좋아해요. 반면 성적 호기심이나 지식이 많다고 느껴지면 걱정부터 하죠. 부모가 성을 부정적으로 배웠기 때문이에요.”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 즉 ‘트렌드’를 민감하게 읽으려 노력해야 한다. 아이의 관심사가 부모에게 낯선 분야라면 아이에게 직접 배우며 소통하는 시간을 늘려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5G 세상의 아이들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2G의 세상을 탈출해야 한다.

“게임을 즐기는 아이를 둔 한 아버지는 딸과 함께 게임을 하면서 주로 어떤 상황에서 디지털성범죄가 발생하는지를 목격했어요. 이를 바탕으로 각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법을 알려줬죠. 때로는 영웅처럼 등장해 구해주기도 하고요.”

언젠가 알게 될 것이라는 부모의 소극적인 행동은 성 지식의 격차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대표에 따르면 일부 아이들은 음경이 질에 닿기만 해도 임신이 된다고 알고 있을 만큼 성에 무지하다. 수업을 들은 한 아이는 ‘이제야 생명 탄생의 비밀을 알게 됐다’고 후기를 남겼을 정도다.

다만 이 모든 교육에 앞서 선행돼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경계 존중 교육이다. 이는 말 그대로 저마다의 경계를 인정하고 그 선을 넘지 않는 것이다.

“‘경계 존중 교육’이 바탕이 되어야 다른 사람이 나의 경계에 침범했을 때 ‘싫다’라고 분명한 의사표현을 할 수 있고, 동시에 아이 역시 다른 사람의 경계에 들어가는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어요. 이는 부모 자식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아이가 예뻐도 몸을 만질 때는 동의를 구하고 아이 방에 들어갈 때도 노크를 잊지 마세요.”

이충민 푸른 아우성 대표는 “디지털 폭우 속에 있는 아이에게 왜 우산을 쓰지 않았냐고 혼내기보다는 우산을 펴는 방법과 이 밖에도 비를 피하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충민 푸른 아우성 대표는 “디지털 폭우 속에 있는 아이에게 왜 우산을 쓰지 않았냐고 혼내기보다는 우산을 펴는 방법과 이 밖에도 비를 피하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 디지털 이주민은 원주민을 따라갈 수 없다

사설 성교육 강의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구성애 강사가 있다. 그가 설립한 ‘푸른 아우성’은 오랜 시간 누적된 경험이 강점이다. 구 강사를 이어 2대째 이곳을 이끄는 이충민 대표는 기존 성교육 커리큘럼에 달라진 현실, 디지털 세대의 특징을 반영해 학부모의 신뢰를 얻었다.

이 대표는 알파세대를 가리켜 “뽀로로와 도티가 키운 ‘포노 사피엔스’”라고 정의한다. 포노 사피엔스란 ‘스마트폰’과 ‘호모 사피엔스’의 합성어로, 휴대전화를 신체 일부처럼 사용하는 새로운 세대를 뜻한다. 이들은 다양한 플랫폼에서 생성자, 운영자, 제작자, 소비자 등 다채로운 역할을 하고, 온라인 거래나 사이버머니 등 모바일 금융에도 능수능란하다. 또한 이들은 인공지능(AI) 통계나 빅데이터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검색이나 탐색보다는 알고리즘 기반의 추천 정보를 활용한다.

“놀이부터 학습까지 모든 것을 디지털 기기로 하는 세대입니다. 성 지식이나 성 정보를 얻는 창구도 책과 부모님이 아닌 유튜브와 같은 매체인데, 그런 아이들에게 정자와 난자를 그려놓고 올챙이가 달려간다, 하는 교육이 통하겠어요(웃음).”

네이버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의 2021년 이용자 연령대를 보면 7~12세가 50.4%, 13~18세가 20.6%다. 문제는 아이들이 주로 찾는 이런 공간에 확인되지 않은 성 관련 정보가 난무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성희롱, 신체 일부를 찍어 보내라고 하는 식의 범죄가 행해졌을 때에도 이를 ‘잘못’이라 지적해줄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위치와 행동을 보호자가 지켜보듯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 아이가 어떤 콘텐츠로 놀고 있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비유한다.

또한 “디지털 폭우 속에 있는 아이에게 왜 우산을 쓰지 않았냐고 혼내기보다는 우산을 펴는 방법과 이 밖에도 비를 피하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한다”고 역설한다.

“디지털 이주민인 어른들은 디지털 원주민인 아이들을 따라갈 수 없어요. ‘게임 한 시간만 하기로 해놓고 왜 아직도 하고 있어’라고 지적하기 전에 ‘엄마도 어제 그 게임 가입해서 봤는데 이상한 광고가 떠서 깜짝 놀랐어.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해? 고객센터나 신고 게시판을 찾아봤어? 누가 너한테 욕하면 어떻게 해?’라는 식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끌어내는 노하우를 고민해야 합니다.”

아이들의 성적 일탈은 명확하지 않을 때 확장된다. 이 대표는 “확인되지 않은 성 정보가 난무하는 소셜미디어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게이트 키핑’이 필요하다. 부모는 미성년자 스마트폰 유해차단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며 “나아가 아이들 스스로가 디지털(온라인) 그루밍과 성범죄를 분별하고 신고를 습관화할 수 있도록 비판적 사고를 키우고 모의 채팅 등을 통해 실전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도록 알려줄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 [27년 꼴찌 성별임금격차] ‘신입 채용’은 공정했을까
▶ 나는 뉴스를 얼마나 똑똑하게 볼까? NBTI 테스트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