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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우리 아이 영혼을 꺾어버렸다"…고통으로 얼룩진 '평균 429일' (풀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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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얼마 전 정순신 변호사가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물러났지만, 비판의 목소리는 여전히 가라앉고 있지 않습니다. 폭력 그 자체로도 물론 비난받을 일이었지만 그뿐 아니라 힘 있는 부모를 통해서 법적인 도움을 받고 피해자를 더 힘들게 했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분노를 키웠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오늘(2일) 학교폭력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이야기와 그 실태를 집중적으로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학교폭력으로 피해자는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졌는데 가해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잘 살고 있는 현실부터 전해드립니다.

이태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중학교 3년 내내 영재원을 다녔던 A 씨.

하지만 3학년이던 지난 2017년 3월부터 악몽이 찾아왔습니다.

특목고 입시학원을 함께 다니던 동급생으로부터 폭행이 시작됐습니다.

[피해학생 어머니 : 또 다시 잠들면 또 때려서 또 애가 깨면 모른 척하고 다른 척하고 이런 식으로….]

가해학생은 통학버스 안에서 동급생들이 보는 가운데 지속적으로 피해 학생의 뺨을 폭행했습니다.

심지어는 잠든 피해 학생의 휴대전화를 몰래 꺼내 사적인 대화 내용을 훔쳐보기도 했습니다.

학교폭력심의위원회는 가해 학생에게 가장 가벼운 '서면 사과' 조치를 내렸고, A 씨 측이 재심을 청구한 뒤에야 접촉금지 등의 추가 조치가 취해졌습니다.

그러자 가해 학생 측은 행정소송으로 맞대응하고 나왔습니다.

부산의 한 대학병원 의사인 가해 학생의 아버지는 아들을 건들지 말라며, 고소를 운운하면서 피해자 측을 몰아붙이기 시작했습니다.

[피해학생 어머니 : 단 한마디의 걱정 위로 위안 이런 말 한마디 없었고요. 이렇게 행정소송까지 한 거 보니까, 반성의 기미가 없구나.]

가해자 측의 행정 소송은 기각됐지만, 우울증 등에 시달리던 A 씨는 지난해 군에 입대한 뒤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결국 정신과 입원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6년간 A 씨가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사이, 가해자는 과학고를 거쳐 국내 명문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피해학생 어머니 : 우리 아이의 영혼을 뭐랄까 살인에 가까운 그런 정말 끔찍한 행동을 해서, 꽃을 꺾어버린 거죠.]

(영상취재 : 최준식·김승태, 영상편집 :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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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저희 취재팀은 지난해 1년 동안 학교폭력위원회 처분에 반발한 사람들이 제기한 행정소송 판결 133건을 모두 입수해서 분석해 봤습니다. 학교폭력위원회가 처분을 내린 뒤에 1심 판결까지는 평균 429일, 그러니까 1년 2개월 정도가 걸렸는데, 그 사이 피해자들은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이어서 김형래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해 내려진 1심 117건, 2심 16건의 학교 폭력 관련 행정소송 판결 가운데, 86%인 117건이 가해자 측이 제기한 소송이었습니다.

학교폭력을 인정할 수 없다거나 처분이 너무 과하다는 건데, 실제로 법원이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결과가 뒤집힌 경우는 24%, 4건 중 1건에 불과했습니다.

그럼 가해자들은 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소송전에 나서는 걸까요?

전수분석 결과 최초 학폭위 처분이 내려질 때부터 1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428.5일, 약 1년 2개월 정도였습니다.

학폭위 처분은 가장 경미한 처분인 1호 '서면사과'부터 가장 무거운 9호 '퇴학처분'까지 아홉 단계인데, 이 가운데 '사회봉사'부터 '전학'까지는 졸업 후 2년이 지나야 삭제되고, 비교적 가벼운 '교내 봉사' 이하 처분은 졸업과 함께 생활기록부에서 삭제됩니다.

만약, 집행정지를 신청해놓고 소송을 이어가며 졸업 때까지 시간을 끌면, 가벼운 징계 기록은 생활기록부에 남지 않고 자동 소멸되는 겁니다.

앞서 국가수사본부장 직에서 물러난 정순신 변호사는 아들의 학교 폭력 사건을 3심, 대법원까지 끌고 갔습니다.

법조계에선 '학폭' 관련 소송은 보통 길어도 항소심에서 끝난다며, 굉장히 이례적인 경우라고 설명합니다.

[김용수 변호사/청소년폭력예방재단 강사 : 최대한 확정 시기를 늦추려고 하는 의도가 명확해 보입니다. 최소 4개월은 더 끌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대법원이 공개한 지난해 학교폭력 관련 행정소송 판결 가운데 3심 선고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경찰은 아들의 학교폭력과 관련 소송 사실을 인사검증서류에 기재하지 않은 혐의로 고발된 정순신 변호사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영상취재 : 신동환·이용한, 영상편집 : 윤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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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보신 것처럼 학교폭력위원회 처분이 결정될 때까지 피해자는 제대로 보호받질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일부 가해자의 경우 피해자를 거꾸로 신고하면서, 2차 가해까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실태를 박세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재작년 10월, 15살 A 양은 학원 화장실에서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14살 B 군에게 불법 촬영을 당했습니다.

[피해 학생 아버지 : 화장실 안에서 도촬을 당했다고 막 울면서 전화를 하더라고요. 볼일 보는데 무슨 소리가 나서 위로 딱 보니까 폰이 이렇게 자기를 쳐다보고 있더라고.]

학교폭력심의위원회가 내린 조치는 출석정지 7일과 보복 금지.

학교에서 가해자와 마주칠까 두려웠던 A 양은 심리상담까지 받았습니다.

4개월 뒤 B 군 측은 A 양이 SNS에 피해 사실을 올렸다며 오히려 명예 훼손으로 신고했고, 졸지에 가해자가 된 A 양은 사과문까지 써야 했습니다.

[피해 학생 아버지 : 아빠가 여기저기 다 알아봐도 걔가 오는 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내 딸래미 눈에서 그냥 닭똥 같은 눈물이 그냥 뚝뚝 떨어지는 거예요.]

지난해 학교폭력 행정 소송 판결문에서 이 같은 성폭력 사건도 19건이나 됩니다.

[최선희/푸른나무재단 상담본부장 : 신체 접촉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사이버와 관련한 성폭력 사안들도 많이 있어요. 오프라인 폭력이 온라인과 결합해서 혼재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고3 남학생에게 추행을 당한 12살 여학생은 2년 뒤 안타까운 선택을 했는데, 징역 3년을 선고받은 가해자는 오히려 퇴학 처분이 부당하다며 행정 소송을 냈습니다.

판결문에 나타난 학교폭력 가해자의 평균 나이는 14.3세.

가장 어린 경우는 8살로 가해자 나이도 점점 어려지고 있습니다.

[김용수 변호사/청소년폭력예방재단 강사 : 가해 학생이 자기 권리를 구제받기 위해서 불복하는 동안은 학급 교체라든지 접촉 및 협박 금지를 그 재판이 끝날 때까지 계속할 수 있는 이런 보장 조치가 된다면 피해 학생에 대한 보호조치가 미흡한 현실에서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한해의 판결문은 반성은커녕 부모의 힘에 기댄 소송이 난무하는 우리 시대 일그러진 모습의 자화상이었습니다.

(영상취재 : 최준식·김승태, 영상편집 : 박기덕, CG : 전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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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 내용 교육부 출입하는 임태우 기자와 정리해 보겠습니다.

Q. '학폭 엄벌' 교육부 입장은?

[임태우 기자 : 11년 전 학교폭력 징계받은 것을 학생부에 기록하도록, 지금의 제도를 처음 만든 교육부 장관이 바로 지금 이주호 부총리입니다. 처음엔 학폭 기록이 초중학생은 5년, 고등학생은 10년씩 보존하기로 했는데, 이후 기간도 줄이고, 반성하면 지워주고, 그 강도가 많이 약해졌습니다. 이 부총리는 학폭 제도를 대폭 손질하겠다고 했고, 정시 전형에 반영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엄벌주의 기조는 맞는다면서도, 폭넓게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했습니다.]

Q. 엄벌주의에 대한 우려는?

[임태우 기자 : 현재 제도에서 학폭 가해자가 '전학 조치'를 받으면 사실상 끝이 납니다. 그리고 기록이 남는 건데요. 이 전학 처분을 많이 내리고 기록을 더 오래 남긴다고 해서 학폭 제도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는 잘 따져봐야 합니다. 입시에 관심이 없는 가해자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입시 불이익을 줘서 학폭을 막겠다는 건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Q. 학폭 '2차 피해' 대책은?

[임태우 기자 : 말씀하신 대로 2차 피해를 막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합니다. 아동학대 사건처럼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 조치를 좀 더 정교하게 보완하고, 학폭 소송을 신속히 마무리 짓도록 해서 상처를 줄이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Q. 대학들 '학폭 대책' 논의는?

[임태우 기자 : 물론 대학들도 고심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3월 말까지 교육부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한 상태여서 대학들은 일단은 지켜보자는 분위기입니다.]
이태권, 김형래, 박세원, 임태우 기자(rights@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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