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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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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병 일으킨 '고성 건봉사지' 사적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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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500년 역사 속 '만일염불' 발상지…왕실 소원 빌던 '원당' 역할도

연합뉴스

고성 건봉사지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6세기경에 지어진 것으로 전하나 한국전쟁 당시 불타 옛터만 남은 강원 고성 건봉사(乾鳳寺) 절터가 국가지정문화재가 됐다.

문화재청은 강원 고성군에 있는 시도기념물 '고성 건봉사지'를 28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했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과 옛 문헌 기록 등에 따르면 건봉사는 신라 법흥왕 7년인 520년에 승려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원각사'(圓覺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한다.

이 절은 '만일염불'(萬日念佛)의 발상지이자 중심 도량(불도를 닦는 곳)이었으리라 추정된다.

만일염불회는 극락에 오르기 위해 1만일, 햇수로는 약 27년 동안 나무아미타불을 입으로 외우며 기도하는 모임을 뜻한다. 살아서는 편안한 생활을 하고 죽어서는 극락왕생할 것을 기원한 법회다.

절의 서쪽에 봉황새 모양의 돌이 있어 '서봉사'(西鳳寺), '건봉사'(乾鳳寺)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던 이 절은 조선시대에도 역사를 이어왔다.

세조(재위 1455∼1468년) 대에는 왕실이 소원을 빌기 위해 세우거나 육성한 불교 사찰을 뜻하는 원당(願堂)의 기능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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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건봉사지 옛 모습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건봉사는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 유정(惟政·1544∼1610)과의 인연이 잘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명대사는 이곳에서 승병을 모집해 훈련했으며, 1605년에는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부처님의 치아와 사리 등을 되찾아 와 이곳에 봉안했다고 한다.

오랜 연사 속에 한때 규모가 3천 칸이 넘기도 했지만, 한국전쟁 때 대부분 불에 타 소실됐다.

문화재청은 건봉사 터의 역사·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1990년 지표 조사를 시작으로 2002년부터 2020년까지 총 9차례에 걸쳐 진행한 발굴조사에서는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한 고려 후기 건물터가 확인된 바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조선시대 일반적인 사찰 배치에서 보이는 예불 공간 중심의 구성이 아니라 예불 공간과 승방이 균일하게 구성된 양식을 보여주는 고려시대 다원식(多院式) 구조의 특징을 갖는다"고 말했다.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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