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현실과 안 맞아”…피폭단체들 반발
일본 히로시마시가 원자폭탄 투하 참상을 그린 명작만화 <맨발의 겐>(사진)을 평화교육 교재에서 돌연 삭제키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21일 NHK 등에 따르면 일본 내 원폭 피해자들의 모임인 ‘피폭자단체협의회’(피단협) 등 6개 단체는 이날 히로시마 나카구청을 방문해 <맨발의 겐> 삭제 방침을 철회해줄 것을 요구하는 연명서를 전달했다. 피단협 관계자는 “나 자신도 피폭자이지만 작품에서 배운 것이 많았다”며 시의 결정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밝혔다.
<맨발의 겐> 삭제 방침은 최근 히로시마 교육위원회가 초·중·고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현재 초등학교 3학년용 평화교육 교재에 <맨발의 겐>의 일부 내용이 인용돼 있는데, 시 측은 오는 4월 나오는 새 교재에서 이 부분을 다른 피폭자의 체험기로 변경하겠다는 방침이다.
현행 교재에는 주인공 겐이 거리에서 료코쿠(일본의 옛 창가)를 부르며 생활비를 버는 장면, 영양실조에 걸린 어머니를 위해 잉어를 훔치는 장면, 무너진 집에 깔린 아버지가 겐에게 도망가라고 소리치는 장면 등이 실려 있다. 교육위 측은 내용 변경에 대해 “(인용된 일부 장면들이) 오늘날의 아동 현실과 맞지 않다” “단편적인 장면들이 실려 있어 시간 내에 배경 설명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원폭 문제에 있어 <맨발의 겐>이 지닌 상징성이 컸던 만큼, 시의 방침을 납득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많다. 2012년 사망한 나카자와 게이지가 피폭 체험을 토대로 그린 <맨발의 겐>은 1973년부터 14년간 ‘주간 소년점프’에 연재돼 1000만부 이상 발행됐다. 50년 동안 24개 언어로 번역돼 세계 곳곳에서 읽혔으며, 2007년에는 핵확산방지조약(NPT) 평가회의에서 참고 자료로 소개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일본군이나 일왕을 비판하는 내용까지 담은 <맨발의 겐>이 우익 눈 밖에 난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비롯한 단체들은 그간 이 작품을 교육 현장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전 메시지를 담은 이 작품이 군사대국화를 추진하는 일본 정부에 거슬렸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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