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투기 요격에 추격되는 중국 정찰풍선 |
(워싱턴=연합뉴스) 이상헌 특파원 = '미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가 오후 5시 15분에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할 예정입니다.'
지난 2일(현지시간) 오후 4시 25분께 미 국방부로부터 이메일이 들어왔다.
연방정부 업무 종료 시각을 앞둔 갑작스러운 브리핑 소식에 바짝 긴장했다. 그것도 국가안보 사안이라고 하니 혹시 북한과 관련된 것일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미국 영공에 중국 것으로 보이는 정찰풍선이 포착돼 전투기까지 출격해 격추를 검토했다는 내용이었다. 북한 관련 내용은 아니었지만 간단치 않은 사안이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4일 미국은 해당 풍선을 대서양 상공에서 격추했다.
미 정부는 풍선의 배후가 중국 인민해방군이라고 확신한다며 영토 주권에 대한 심대한 침해라며 중국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 뒤에도 미군은 알래스카(10일), 캐나다 유콘(11일), 미시간주 휴런호(12일) 상공에서 미확인 비행체를 포착해 전투기를 출격시켜 미사일로 격추했다.
미 정부는 이 3개의 미상물체에 대해선 '중국'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4일에 격추한 중국 정찰풍선과는 다르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의심 비행체를 무조건 중국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진실성'을 강조해 처음 격추한 풍선이 중국의 정찰풍선이라는 점을 더욱 부각하는 효과를 냈다.
중국 풍선 잔해 수거하는 미 해군 폭발물처리반 |
사태는 일파만파 커졌다. 미국은 중국 풍선 비행을 의도적인 영토 침해로 규정하고 주저 없이 무력을 사용했고, 중국은 민간용 풍선이 바람에 길을 잘못 든 것이라는 해명에도 미국이 과잉대응했다면서 반발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중국을 최대의 위협으로 규정하면서 미중 갈등이 사그라든 적이 거의 없던 터라 이 사태는 긴장을 배가했다.
미국은 중국의 정찰 풍선 개발과 관련된 기업들과 연구소를 제재했고, 중국은 미 방산업체 록히드마틴과 레이시온을 제재대상에 올리며 맞대응했다.
미국은 대중(對中) 관계 해빙이 기대됐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방중도 전격 취소했다. 그가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면담도 예상됐던 터라 중국의 타격도 컸다.
그렇게 치솟던 긴장은 지난 16일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사태와 관련한 첫 대국민 브리핑을 계기로 조정 국면에 들어가는 분위기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 정찰풍선의 영토 주권 침해 행위에 강력한 경고음을 울리면서도 시 주석과 대화를 기대한다는 메시지에 방점을 찍었다.
때마침 쉬쉐위안 주미중국대사 대리도 17일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미국이 중국과 협력해 방랑하는 풍선 하나가 양자관계를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가게 두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충돌을 피하자고 유화 제스처를 취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풍선 격추를 놓고 힘겨루기하는 상황은 여전하지만, 사태 초반과 달리 양측 모두 대화를 강조하면서 소강상태로 들어간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10∼12일 격추한 3개의 비행체가 민간기업이나 연구기관 등의 과학 연구과 관련된 풍선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히면서 머쓱해진 미국도 빠른 국면 전환이 필요하고, 중국도 어차피 격추된 풍선이 자국 것이란 사실을 인정한 만큼 현 정국 탈피를 모색하면서 접점을 찾은 모양새다.
결국 돌파구가 보이지 않던 미중 간 해묵은 갈등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급속히 악화했다가 양측 모두 대화 필요성을 느꼈다는 측면에서 결과적으로 양국 간 긴장을 완화할 기회로 작용할 여지도 없지 않아 보인다.
이제 관심은 독일 뮌헨안보회의에 참석 중인 블링컨 장관과 중국 외교라인 최고위 인사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만나 대화의 물꼬를 틀지에 쏠려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정상 소통을 언급한 만큼 미중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 역시 꿈틀대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미국 입장에선 이번 사태로 얻은 게 분명히 있어 보인다.
중국 정찰풍선 사태를 크게 키워 전 세계적인 핫 이슈로 만들었고, 동맹을 한 데 모아 해당 정보를 교환하는 등 동맹 결집 효과까지 거뒀다.
중국 풍선은 물론 미확인 비행체 3개까지 모두 최신예 전투기를 출격시켜 격추하는 '결단'을 보이면서 영토 주권 침해 등 국제질서를 어기면 무력이든 경제적 제재든 후과가 있을 것이란 점을 분명히 보여준 점도 미국의 노림수일 수 있다.
중국으로서는 대만 침공 시나리오의 걸림돌인 미국이란 존재를 한 번 더 상기하는 계기가 됐을 수 있다는 얘기다.
honeyb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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