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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튀르키예 지진 피해 시리아 난민, 혐오 떠밀려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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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지진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터키) 내 시리아 난민들이 난민 혐오에 떠밀려 역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시리아로 되돌아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5일(현지시각) 튀르키예 남동부에서 시리아 북서부 반군 통제 지역으로 향하는 바브 알하와 국경에 튀르키예에서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시리아 난민의 행렬이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바브 알하와 국경 통제소 쪽은 하루 3000명 가량의 난민이 이 국경을 통과해 시리아로 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매체에 설명했다. 6일 지진 뒤 이 통로는 지진 뒤 튀르키예에서 사망한 시리아 난민들의 주검 1400구를 고국으로 돌려 보내는 역할도 해 왔다.

12년 간 이어진 내전 탓에 튀르키예로 대피한 이들의 등을 떠민 것은 직접적으로는 지난 6일 튀르키예 남동부와 시리아 북서부를 덮친 지진이다. 반나절 만에 규모 7.8과 7.5의 강진이 연이어 덮치고 여진이 이어지며 양국에서 4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내전으로 삶터를 잃고 튀르키예로 피난한 시리아인들은 이번 지진으로 다시 한 번 집을 잃어 버리는 고통을 겪었다.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주 레이한리에서 지진을 겪은 시리아인 피르얄 팔라하는 집이 지진으로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게 됐다며 "시리아에 있는 집도 파손됐지만 그곳에 사는 게 여전히 더 나을 것 같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이들이 시리아로 발걸음을 돌린 이유를 지진 피해 자체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 지진으로 시리아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내전 중 인권 침해 등을 이유로 미국 등의 제재를 받는 시리아엔 초기 도움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특히 북서부 반군 통제 지역은 유엔(UN)조차 초기 대응 실패를 인정했을 정도로 구호 상황이 열악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진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인들이 자국 내 비교적 피해가 덜한 지역에 사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의탁할 수 있는 반면 대부분의 튀르키예 내 시리아인들은 도움을 청할 사람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튀르키예인 우선" 지진 뒤 차별 노골화…대피소서 쫓겨나고 집단 폭행 우려도 

지진 뒤 튀르키예 내에서 노골화되고 있는 난민 혐오도 시리아 난민을 밀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감자 자루와 옷더미를 지고 어린 두 자녀와 배우자와 함께 밥 알하와 국경에 줄을 선 40살 모하마드의 튀르키예 남부 안타키아에 위치한 집은 이번 지진으로 무너졌다. 이웃들이 잔해 속에서 가족들을 구해줘 목숨은 건졌지만 살 곳이 없어 찾아간 가까운 마을에서 '튀르키예인이 우선'이라는 이유로 3일 동안 임시 주거용 천막 제공을 거절당했다. 향후 몇 달 간 시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친척과 함께 생활할 예정인 그는 "적어도 시리아엔 임시 주거 천막이 있고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 사람들이 우릴 도울 것"이라고 <뉴욕타임스>에 밝혔다.

다른 시리아 난민들도 지진 뒤 튀르키예에서 차별과 폭력을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지진 뒤 튀르키예 남동부 시리아 국경 부근 아카칼레의 한 사원에 피신해 있던 레얄 클레이프는 "튀르키예인들에게 사원 (이용) 우선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쫓겨났다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매체는 그가 시리아로의 귀환을 고민하며 시리아에 있는 집이 "내전 중 폭격 당하긴 했지만 아는 사람들이 있으니 가족이 굶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남부 메르신에서도 임시 쉼터로 이용되고 있는 학생 기숙사에서 시리아인들이 쫓겨나는 일이 있었고 남부 안타키아에서는 재난 구조 자원봉사에 참여 중이었던 이름을 우사마라고 밝힌 시리아인이 집단 폭행을 당할 뻔 했다고 15일 보도했다. 우사마는 매체에 "사람들은 상처를 입었고 그들을 비난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전에 이 정도 수준의 차별을 경험한 적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지난 주말 안타키아 등 지진 피해 지역 상점과 가정집 약탈이 벌어지며 범인이 시리아인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튀르키예 극우 "난민 귀환 편도 승차권 모금" 혐오 선동…제1야당까지 "집권 땐 난민 돌려 보낼 것" 공언 

차별 사례는 일부이고 여전히 튀르키예 당국은 난민에게 구호를 제공하고 있으며 많은 튀르키예인들이 시리아인을 돕고 있지만 외신들은 지진 전부터 튀르키예 내에서 난민 혐오가 위기 수준으로 치닫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2021년 8월 수도 앙카라에선 튀르키예인들이 집단으로 시리아인 소유 상점과 집, 자동차 등을 공격하는 일이 일어났다. 한 시리아 청소년이 튀르키예 청소년을 싸움 끝에 살해한 사건이 난민 혐오로 번진 탓이다. 같은 해 11월엔 인종 혐오 동기로 서부 이즈미르에서 튀르키예인이 시리아 노동자들이 자던 방에 불을 내 시리아인 3명이 숨졌다. 이듬해 1월엔 이스탄불에서 19살 시리아인 청년이 자던 중 습격을 받아 숨졌고, 남동부 디야르바키르에선 18살 시리아인 청년이 공원 산책 중 공격 당해 살해당했다.

튀르키예 극우 정당은 난민 혐오 정서에 불을 붙이고 있다. 난민이 튀르키예 사회를 "침략"하고 있다는 수사를 즐겨 사용하는 극우 승리당은 지난해 영화 형식의 9분 짜리 반이민 영상을 제작해 유포한 데 이어 지난 1월엔 시리아 난민을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편도 버스 승차권' 구매 모금까지 진행했다.

그러나 혐오를 이용하는 정당은 극우에 국한돼 있지 않다. 오히려 난민 혐오 수사가 최근 튀르키예 정치권에 보편화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튀르키예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의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올해 5월로 예정된 대선 및 총선에서 집권하면 시리아 난민 300만 명 이상을 돌려보내겠다고 지난해 발언했다. 이 정당 소속 북부 볼루 지역 시장인 탄주 외즈칸은 외국인들을 떠나게 하기 위해서라며 2021년 난민과 이주민들에게 공공요금을 10배 높게 받는 등 차별적 정책을 시행하기까지 했다. 이 정책은 이후 법원에 의해 정지됐다.

혐오 선동은 코로나19 대유행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경제난과 맞물려 더 효과를 발휘하게 됐다. 1월 튀르키예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58%에 달한다. 지난해 10월엔 전년 대비 85%로 치솟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더해 시리아 내전이 장기화되며 처음엔 난민의 고통에 연대했던 시민들이 이들의 기약 없는 귀환 일정에 공감을 잃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실시된 여론조사에선 튀르키예인 82%가 시리아인이 귀국하길 바란다고 답하기도 했다.

"재입국 어려울 수 있다는 걸 알지만…시리아로 가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야당의 경우 혐오 선동은 난민을 적극 받아들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공격까지 겸한다. 튀르키예는 시리아 난민을 가장 많이 받아들인 나라로 유엔난민기구(UNHCR) 집계를 보면 올해 2월2일 기준 확인된 시리아 난민 542만 명 중 64%인 350만 명이 튀르키예에 거주 중이다. 이 중 150만 명 가량이 이번 지진 피해 지역에서 거주해 왔다. 튀르키예가 시리아 난민의 유럽으로의 이동을 제한하는 경계선 역할을 하면서 유럽연합(EU)은 2016년 튀르키예에 난민 지원을 위한 60억유로(약 8조2530억원) 자금 지원을 약속했고 2021년 30억유로(약 4조1270억원) 추가 지원을 승인했다.

그러나 혐오 정서가 커지자 선거를 앞둔 에르도안 대통령도 지난해 100만 명 규모 시리아 난민 귀환 장려를 위한 정책을 발표한 상황이다.

튀르키예 내 난민 혐오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난민들은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불안감에 떨면서도 다른 방도가 없어 시리아로 향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매체는 15일 시리아 쪽 바브 알하와 관리당국이 지진 피해 지역에 거주하는 시리아 난민의 재입국을 3~6달 가량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튀르키예 당국엔 확인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시리아로 돌아가기 위해 줄을 선 두 아이의 아빠 29살 유니스 알새에드는 매체에 "물론 튀르키예가 재입국을 막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면서도 "시리아로 가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프레시안

▲지난 13일(현지시각) 지진 피해를 입은 시리아인들이 시리아 북부 알레포주 진디레스의 임시 주거 천막에 모여 있다. 지난 6일 튀르키예 남동부와 시리아 북서부를 규모 7.8의 지진이 강타해 4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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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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