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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이슈 5·18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

'계엄군 총에 실명' 5·18 피해자들 정신적 손해배상 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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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국가기관의 불법 체포·구타·고문 정신적 고통 인정

연합뉴스

슬픔에 잠긴 1980년 5월 광주
[5·18기념재단 제공]


(광주=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정부가 5·18 당시 계엄군의 총에 맞거나 구타당한 시민들에게 신체뿐 아니라 정신적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잇따라 나왔다.

광주지법 민사13부(임태혁 부장판사)는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 63명과 유족 3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고 12일 밝혔다.

강해중(89)씨는 1980년 5월 23일 자녀들과 광주에서 화순로 가던 중 주남마을 부근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두 눈이 실명됐다.

강씨는 공수부대원들이 광주를 빠져나가는 길목에서 시민들이 탄 버스를 공격한 '주남마을 버스 총격 사건'의 목격자이기도 하다.

그가 총에 맞기 직전 목격한 것은 군인들이 양쪽 산에서 총을 겨누고 있고 미니버스가 유리창이 깨진 채 반듯하게 멈춰 서 있는 모습이었다.

연합뉴스

1980년 그날
(서울=연합뉴스) 1980년 당시 전남매일 사진기자로 활동했던 나경택 전 연합뉴스 광주전남취재본부장이 취재한 모습. 2017.5.18 [5·18 기념재단,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피해자 중에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폭행당하거나 총상을 입은 사람은 물론이고 길을 걷거나 회사에서 일하다가 쳐들어온 군인들에게 당한 이들도 있었다.

이모씨는 1980년 5월 18일 옛 전남도청 인근인 광주 동구 수기동 공업사에서 작업하다가 들이닥친 계엄군들에게 구타당했고 5일 만에 훈방돼 장해등급 14급 판정을 받았다.

나모씨도 5월 19일 광주 동구 금남로4가의 당구장에서 근무하다가 쳐들어온 계엄군에게 곤봉 등으로 구타당해 실신했고 수십 년간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겪었다.

진모씨는 5월 22일 시민을 폭행하는 계엄군을 말리다가 구타당했다.

그는 두개골 골절상 등을 입고 평생 노동능력의 80%를 상실한 채 살다가 지난해 8월 사망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청구한 금액의 6.6%∼77.1%를 인정해 정부가 각각 500만원∼1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이 헌법 질서 파괴 범죄를 자행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반인권적 행위로, 위법성 정도가 매우 중대하다"며 "원고들이 국가기관의 불법 체포·구타·고문으로 입은 고통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부는 5·18 보상법에 따라 이미 보상금을 받은 사람은 '재판상 화해' 효력이 발생해 더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헌법재판소는 해당 법 조항에 보상금 산정 시 정신적 손해를 고려하는 내용이 없다며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5·18 유공자와 유족 1천여 명이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areu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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