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 요즘 포털 사이트 자영업자 커뮤니티는 '신용점수 떨어뜨리는 방법' 공유로 시끌시끌하다. 보통 700점대 후반 정도의 신용점수를 가진 사람들이 몇십점씩 낮추는 게 목표다. 질문도, 방법도 가지가지다. "은행 대출 막혔고, 카드론 막혔고. 지금 남은 게 현금 서비스 40만원인데 따로따로 받는 게 나을까요, 한꺼번에 다 받는 게 나을까요." "지금 782점인데 카드론 받아도 더이상 점수 하락이 안 되네요.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카드 연체가 답입니다. 카드 두 장 두 달 연체되니 756점에서 250점으로 훅 떨어졌어요." 하루에도 수십 개씩 저런 글이 올라오고 그 밑으론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얼마나 답답하고 오죽 급하면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든다.
자영업자들이 장사보다 신용점수에 매달리는 이유가 있다. 오는 20일부터 2차 신청을 받는 소상공인 전통시장 자금 대출 때문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신용점수 744점 이하(나이스평가정보 기준)인 저신용 자영업자에게 연 2% 고정금리로 최대 3000만원까지' 빌려준다. 지난달 1차 신청에선 4000억원 예산이 일찌감치 소진됐다. 이달과 다음 달에 각각 2000억원씩 추가신청을 받는데 자영업자들은 여기에 치열하게 도전하는 것이다. 요즘 은행 대출금리는 5~6%대. 신용점수만 낮추면 이자 비용을 월 십만원 남짓 줄일 수 있다. 천원짜리 한장도 아쉬운 자영업자 입장에서 "안 받으면 손해"라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
신용점수를 일부러 낮추는 게 화제가 된 건 이번만이 아니다. 2년 전에도 중소기업벤처부는 '신용점수 775점을 마지노선으로 한 금리 1.5%짜리' 대출을 해줬다. 그때도 제 신용점수와 금리를 맞바꾸는 자영업자들이 대거 등장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는 아예 은행 창구 직원들이 대출을 도와주려 신용점수 하락 팁을 암암리에 알려준 적도 있다. 이쯤 되면 고질병이라 부를 만하다. 공무원들에게 해결 방법이 뭐냐고 물어보니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신용점수 기준을 600점으로 낮춰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할 거다. 그렇다고 기준을 공개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번에도 775점 이하인 사람들은 혜택을 많이 보니까 그런 점을 높게 평가해야 한다."
이 정책이 좋은 취지로 시작됐다는 데 이견은 없다. 어떤 정책도 완벽할 수 없다는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부작용이 뭔지 뻔히 알면서도 그냥 두는 건 정부의 방임이다. 이런 상품이 자꾸 나올수록 자영업자의 신용점수는 전반적으로 낮아지게 된다. 자영업자 금융지원 예산은 어느 때나 한정돼 있다. 신용점수가 낮은 사람이 늘면 늘수록 지원 기준 신용점수도 함께 떨어지게 될 수밖에 없고, 자영업자들은 신용도를 더 낮추게 된다. 악순환의 고리다. 이 과정에서 금융사들이 짊어져야 할 리스크만 불어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얼마 전 기자간담회에서 "(은행들의 자영업자 지원정책이) 단체로 포장되다 보니 훨씬 의지 있는 금융사도 있고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금융사도 있어서 경쟁 환경이 조성이 안 된 측면이 있다. 지원 효과가 있는지, 어떤 금융사가 잘했는지 올해 1분기부터 (은행들의) ESG 지표가 될 수 있어서 잘 챙겨보겠다"고 했다. 그 감독 대상이 은행에 그쳐선 안 된다. 정책도 점검해야 한다. 정부를 감독하는 국회가 나서 '의지가 있는 부처는 어디인지, 어떤 부처가 잘했는지, 부작용은 뭔지 잘 챙겨봐야' 할 때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