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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 대사의 ‘불통 대통령’ 따라하기?

한겨레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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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 대사의 ‘불통 대통령’ 따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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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지난해 10월 화상으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주중 한국대사관 국정감사에서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가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베이징 특파원단

지난해 10월 화상으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주중 한국대사관 국정감사에서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가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베이징 특파원단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는 오랜만에 부임한 ‘중국 전문가’ 대사라는 기대 속에 지난해 8월 초 취임식을 열었다. 이후 7개월째가 되어가지만, 중국 전문가로서 면모보다 소심하고 소통이 힘들다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최근 행보는 공교롭게도 ‘고교 동창’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 행보’와 쏙 빼닮았다.

정 대사는 6일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석달여 만에 열린 베이징 특파원과의 정기 간담회에서 미리 이메일로 받은 3개의 질문에만 답하고 들어갔다. 즉석 질문은 받지 않았고, 답변도 미리 적어 온 내용을 낭독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간담회가 아닌 일종의 발표회였다. 40여명으로 꾸려진 베이징 특파원단은 질문 없는 간담회에 반대했지만 정 대사의 뜻을 꺾지 못했다. 대사관 내 일부 직원도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문화방송>(MBC) 기자와의 갈등을 이유로 ‘약식 회견’(도어 스테핑)을 일방 중단했던 모습에 떠오른다.

정 대사는 질문을 받지 않는 이유로 지난해 8~9월 간담회 때 일부 기자가 ‘실명 보도’를 하지 않기로 한 규칙을 어겼다는 점을 꼽았다. 기자들이 규칙을 어겼으니, 자신도 사흘 전에 미리 이메일로 받은 질문에만 정리된 답변을 하겠다는 것이다. 갈등이 있었다고 소통의 문 자체를 막아버린 것이다.

정 대사가 ‘규칙 위반’이라고 지적하는 보도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을 상대로 지정학적 위험을 감안해 투자에 신중할 것을 당부했다”, “특파원 간담회에서 ‘대사를 처음 해 몰랐다’고 말했다”는 것들이다. 보도될 것으로 예상하지 못한 발언이 공개됐다면 당황했을 수 있다. 규칙 위반이라면 해당 매체에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하면 될 일이다. 정 대사는 이런 노력 대신 특파원단 전체에 재발 방지책을 요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현장 질문을 받지 않는 간담회’라는 의미 없는 ‘쇼’를 강행했다.

정 대사가 주장하는 규칙 위반 역시 분명치 않다. 간담회에 비실명 보도 규칙이 있는 것은 국익을 해칠 수 있는 내용이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지, 그의 사사로운 답변 모두를 지켜주기 위한 게 아니다.

더 걱정되는 것은 중국과의 외교다. 정 대사가 이런 소심하고 경직된 태도로 능수능란한 전문 외교관이 즐비한 중국과 외교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동안 학자로 갈고닦은 지식을 펼치기 위해서라도 좀 더 대범하고 유연한 태도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