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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번호판 장사’ 화물운송시장 60년 악습 뿌리 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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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화물 운송 [사진 = 연합뉴스]


지입제는 국내 화물차 운송업에 수십년간 뿌리내리며 화물운송 시장을 ‘복마전’으로 전락시킨 주범이다. 화물 차주들은 차량 한 대만 구입한 뒤 운송사 또는 운송주선사와 ‘지입(위·수탁)’ 계약을 맺어 일감을 따냈고, 하도급에 재하도급을 거치는 기형적인 운송 구조를 만들었다. 화물차주에게 영업용 화물차 번호판을 빌려주면서 이들에게 일감은 배당하지 않고 지입료만 챙기는 ‘지입전문업체’가 우후죽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는 현재 최대 7000개에 가까운 지입 전문회사가 국내에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국 화물차 중 23만대가 법인차인데 그중 지입전문업체에 소속된 차량만 10만대로 추정된다.

정부와 여당은 6일 국회 당정협의에서 이같은 지입제를 개혁하기 위해 실제로 운송 업무를 하지 않는 지입전문업체를 퇴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날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운송 일감 제공 없이 번호판 장사, 도장값 등 여러 명목으로 실제 일하는 차주들에게 돌아가야 될 노동의 몫을 중간에서 뽑아가고, 이를 화주와 소비자인 국민에게 전가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기생구조를 타파하겠다”고 밝혔다. 어명소 국토부 2차관도 “지난 60년 동안 추진하지 못했던 지입제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정은 지입전문업체들의 불법이나 탈세가 드러날 경우에는 면허를 회수조치하기로 했다. 또 운송사가 일정 비율 일감을 차주에게 주지 않고 지입료만 받는다면 감차 처분을 내려 시장에서 퇴출시킨다. 화물차주가 개인운송사업자 허가를 받고 나가게 되면 운송사에는 차는 없고 등록대장 상 번호판만 남게 되는데, 운송사의 사업권으로 볼 수 있는 번호판을 회수해 이를 개인사업자에게 주는 것이다. 번호판은 현재 개당 5000만원 선에서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모든 운송사가 일감을 제공하고 운송실적을 신고토록 관리를 강화하고, 운송사 신고 외에도 화물차주도 실적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한다. 실적이 없거나 거의 없는 운송사에 대한 처분수준도 기존 사업정지에서 감차로 강화한다.

또 지입계약 시 차량을 운송사 명의로 등록하던 것을 차량의 실소유자인 화물차주 명의로 등록하도록 개선하고 이를 위반하는 운송사에 감차 처분을 내린다. 화물차주는 지입계약이 종료된 후에 명의를 다시 이전받는 과정에서 운송사의 ‘갑질’에 빈번히 당해왔으나, 차주의 소유권이 명확하게 보장하는 것이다.

정부에 따르면 지입계약 시 계약 체결 명목으로 △번호판 사용료 2000~3000만원 요구 △차량교체 동의비용 700~800만원 요구 △지입계약 해지 시 명의이전 동의비용 300~400만원 요구 등 불공정 사례가 파다했다. 차량의 탄력적인 공급을 제한하는 수급조절제 등 각종 공급 규제도 수술한다.

지난해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사태를 불러온 안전운임제를 대신해 화주와 운송업체간 계약에서 최소 운송료 보장을 강제하지 않는 표준운임제를 도입한다. 기존 안전운임제가 화주의 운임계약까지 규율하면서 갈등을 유발했던 점을 고려해 화주와 운송사의 계약은 강제성 없는 ‘가이드라인’ 형태로 관리한다는 구상이다. 화주의 운임 지급 의무와 처벌을 삭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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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6월 화물연대 파업으로 파업에 참가한 화물차들이 주차돼 있다. [사진 = 연합뉴스 D]


다만 운송사와 화물차주간 운임계약은 지금처럼 강제해 차주를 보호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약자인 차주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저임금과 같은 표준임금을 내놓았다”며 “앞으로 운송사가 구상권 청구 등의 문제가 생기면 현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증서를 통해서도 가능하도록 국토교통부에 검토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표준운임제 적용 대상은 기존 안전운임제와 동일하게 시멘트·컨테이너 품목에 한정해 2025년 말까지 3년 동안 운영하고 추후 제도 운영 결과를 분석해 지속 여부를 논의한다. 또 기존 안전운임제에서는 설문조사에 의존해 원가를 산정했는데, 이를 납세액, 유가보조금 등 공적자료를 활용해 객관적으로 산정하고, 이해관계가 유사한 운수사와 차주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던 운임위원회 구성도 공익위원수를 더 늘려 의사결정구조를 개편하기로 했다.

표준운임제 외에도 유가 변동에 취약한 화물차주의 소득 불확실성을 개선하기 위해 화물운임과 유가를 연동한 ‘표준계약서’ 도입도 추진한다. 표준운임제가 적용되는 시멘트와 컨테이너 품목 외에도 일정 규모 이상의 물량이나 장기 운송계약 시 유류비 변동에 따른 운임 조정 사항을 내용에 포함해 품목과 관계없이 차주들이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화물차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위험물 운송차량과 노선버스 등에 적용되는 정기적 운행기록장치(DTG) 자료 제출 의무를 대형 화물차(대형 트랙터, 25t 이상 화물차)에도 부여해 화물차주의 휴식시간 준수여부, 운전습관 등을 모니터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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