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
일단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월 처음 내놓은 대책은 겨울철 난방비로 어려움을 겪는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 및 차상위 계층 등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에너지바우처 지원 금액을 2배로 상향하고, 가스요금 할인폭도 2배 확대하겠다는 것이었다. 대책이 미약하다는 비판이 일자, 지난 2월1일에는 추가지원책을 내놓았고, 여론이 악화하자 대통령은 중산층과 서민까지 지원하라고 지시했고, 야당 역시 상위 일부를 제외한 전 국민에게 에너지와 물가지원금을 지급하자고 주장했다. 현금성 지원에 치중한 정치권의 대책은 당연히 비판을 불러왔다. 이번 ‘난방비 대란’은 진작부터 예견된 것이었음에도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비판부터 시작해서, 가격 산정 체계의 문제점이며 공기업 적자 누적 문제, 취약계층의 주거환경 개선 필요성 문제, 에너지 사용 방식의 형평성 등 현재 사안과 관련된 구조적인 문제들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공통으로 보이는 문제를 찾아본다면, 애초에 논의의 시발점이 폭등한 난방비였던 까닭도 있겠으나, 단순한 현금 지원책을 넘어서 구조적인 해결 방안을 찾겠다는 경우에조차도 난방의 가격과 수요 및 공급의 관리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정치권 밖 시민사회의 논의도 기존에 가졌던 문제의식을 따라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경향을 만든다. 불평등에 관심이 있는 경우에는 올라가는 난방비가 취약계층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문제를 바라보면서 난방 가격을 낮게 유지하거나 지원금을 늘리라고 주장을 하게 만드는 것이고, 생태문제에 관심이 있는 경우에는 난방비를 올리지 않을 때 전력수요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음을 들어서 난방비 가격 인하를 주저하게 만든다. 주거환경의 개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함을 요구하기도 하고, 기본 생활에 드는 에너지는 복지 차원으로 지급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난방비에서 시작한 이런 논의 속에서 기후위기 시대를 대비한 에너지전환의 논의를 충분히 전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 보면 오히려 쟁점은 난방의 가격으로 다시 제한되면서, 기후위기 시대에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할 에너지 생산방식과 이를 위해 회피하지 않고 마주해야 할 현재의 소비 수준 축소나 불편할 수도 있는 삶의 변화, 사회적 전환을 논의하기 어렵게 된다. 난방비 논란 속에서도 결국 문제라고 지목되는 건 높아진 가격을 낼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거나,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취약계층의 주거상태가 되기에 십상이다. 국가는 사회적 재원을 들여서 이들을 지원하는 측이며, 시민들은 에너지 소비의 필요를 충족시켜줘야 할 대상이고, 빈곤은 사회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지원금이 필요한 사회적 부담일 뿐이다.
한동안 유행했던 녹색 뉴딜 논의는 그것이 과연 기후위기에 대응하기에 충분한 방안인가라는 논의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와 생태문제는 함께 해결되어야 하는 과제이고,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관계의 새판짜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캐나다에서도 화석연료에 더 큰 비중으로 의존하면서도 생존에 필요한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받고 있지 못한 원주민 지역의 문제를 역사적으로 형성된 불평등과 정의롭지 못한 상태의 결과로 보아, 이들 지역에서 새로운 방식의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문제와 과거청산의 과제를 함께 보고자 하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기도 하다.
한국 사회 역시 난방비 논란을 통해서 높아진 에너지 문제에 관한 관심을 단지 가격 산정 방식을 개선하거나 복지 대책을 강화하는 수준에 묶어두기보다는 탄소에 의존하는 산업구조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정의로운 전환의 과제로 보면서 새판을 짜려는 노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실제로 난방비 논란에서 제기된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문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극적으로 드러냈듯이 역사적으로 형성된 여러 갈등과 무관하게 한 나라의 정책만으로 해결할 수도 없으며, 잠시의 해결은 기후위기라는 더 큰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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