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종교단체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13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정부의 화물연대 탄압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별도의 운송업을 하지 않고 ‘번호판 대여’를 통해 수익을 얻는 ‘지입전문회사’가 화물운송시장에서 퇴출된다. ‘화물차 안전운임제’는 폐지된다. 대신 강제성 없는 가이드라인 성격의 ‘표준운임제’가 도입된다. 화물차주에 대한 처벌규정도 폐지된다.
하지만 민주당은 안전운임제를 2025년까지 연장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어 국회통과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화물노조도 안전운임제 폐지와 관련 “화주의 입장만 반영한 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6일 국회에서 당정협의를 연 뒤 이 같은 내용의 ‘화물운송산업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표준운임제는 화주와 운수사 간의 계약의 강제성을 없애고, 대신 운수사와 차주 간 운임계약을 강제하는 데 방점이 있다. 화주가 운수사에게 일정기준 이상의 운임을 지급하는 의무는 폐지되지만, 운수사는 차주에게 표준운임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또 표준운임대상 품목 차주의 소득수준이 일정 기준 이상 도달하면 표준운임 적용대상에서 제외한다.
운임제 원가 책정 방식도 개편한다. 원가산정방식은 설문조사가 아닌 납세액, 유가보조금 등 자료를 토대로 책정한다. 화물연대 조합비, 휴대전화 요금, 세차비 등은 원가산정 항목에서 제외된다.
운임을 결정하는 운임위원회 구성은 ‘공익위원 4명, 화주 3명, 운수사 3명, 차주 3명’에서 ‘공익위원 6명, 화주 3명, 운수사와 차주 각 2명’으로 변경, 운수사와 차주 비율을 대폭 낮췄다.
표준운임지급 위반 시 제재규정 역시 완화된다. 위반횟수, 경중과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5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내렸던 방식에서 우선 시정명령을 내린 후 점증적으로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개선한다.
화물차주 운송계약 체결시 유가와 연동해 운임을 산정하는 표준계약서도 도입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물량이나 장기 운송계약시 유류비 변동에 따른 운임 조정사항을 계약서 내용에 포함토록 해서 유류비 상승시 운임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안전운임제 효과 불분명” ‘표준계약서’ 도입
화물차 번호판 대여 등을 통해 수익을 얻는 지입전문회사는 화물운송시장에서 퇴출된다. 운송회사로부터 일정 수준의 일감을 받지 못한 차주에게는 개인운송사업자 허가를 내주고, 물량을 제공하지 않는 운송사는 가장 강력한 처분 중 하나인 ‘감차처분’이 내려진다.
국토교통부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또 ‘번호판 장사’를 없애기 위해 모든 등록운송사는 화물차주에게 예외없이 일감을 제공해야 하고, 운송실적을 신고해야 한다. 화물차주 역시 운송실적을 신고해 교차검증이 가능하도록 한다. 실적이 없는 운송사는 처벌수준이 사업정지에서 ‘감차’로 강화된다.
지입계약시 차량의 실소유주인 지입차주(화물차주) 명의가 아닌 운송사 명의로 차량을 등록하는 기존 방식도 개선된다. 지입차주가 운송물량을 받기 위해서는 운송사에 지입차량 등록을 해야하는데 이때 화물차주 명의가 아닌 운송사 명의로 지입차량 등록을 해왔다. 운송사는 지입계약 체결 명목으로 화물차주에게 2000만~3000만원을 받는 등 불공정 사례가 빈번했다는 것이 국토부의 설명이다.
앞으로는 운송사가 지입차주 명의가 아닌 운송사 명의로 지입차량 등록을 강제할 경우 적발시 감차처분이 내려진다.
번호판 사용료 수취와 같은 부당금전 요구행위는 전면 금지된다. 운송사의 부당행위 근절을 위해 불공정 계약사례를 구체화해 계약무효는 물론 감차 등 행정처분도 내린다. 또 화물차주들이 언제든 불공정행위를 신고할 수 있도록 관련 신고·조사를 전담하는 공정계약 신고센터도 설치한다.
운송사가 차량 및 운전자를 직접 관리하는 직영차량에 대해서는 차종에 관계 없이 신규 증차를 허용하고, 직영 비율이 높은 운송사는 물류단지 우선 입주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과적으로 인한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관련 처벌이 강화한다. 판스프링 등 화물고정장치 이탈방지를 의무화하고, 불법개조시 사업허가·자격취소와 처벌이 내려진다. 또 중대사고 발생시 5년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의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관련법 개정작업에도 들어간다. 다만 과적시 화물차주에게 주로 책임을 묻던 방식은 화주와 운수사 공동책임으로 바꿔 차주의 책임을 경감하기로 했다.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이날 ‘화물운송사업 정상화 방안’과 관련, “화주의 입장만을 반영해 사실상 기존 안전운임제를 폐지하는 내용”이라며 반발했다. 지난해 말 일몰된 안전운임제는 화물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임금을 보장해 과로·과적·과속을 막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로, 화물운송업계의 최저임금제로 불린다. 당초 안전운임제 일몰 연장을 제안했던 국토부는 화물연대 파업 이후 입장을 바꿔 이 제안을 무효화했다.
화물연대는 이날 성명서에서 “정부는 지입제를 포함한 화물운송시장의 병폐를 없애고 화물노동자 처우를 개선하겠다며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정작 시장의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할 방법이나 화물노동자 처우를 개선할 실효성 있는 방안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며 이같이 밝혔다.
화물연대가 가장 문제삼고 있는 부분은 ‘안전운송운임(화주와 운수사 간 운임) 화주책임 삭제’다. 화물운송시장에서 운송계약은 화주-운수사-화물 노동자 구조로 이뤄진다. 최초 운송계약은 화주와 운수사 간 맺어지며 운임 역시 이 과정에서 가닥이 잡힌다. 최초 운임 지급자인 화주의 운임을 강제하지 않으면 최종적으로 화물 노동자 운임을 제대로 보장하는 것이 어렵다는 게 화물연대 설명이다.
앞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화물연대 총파업 직후인 지난해 11월25일 “정부에서 안전운송운임과 화주 처벌조항 삭제를 추진한다는 잘못된 내용이 확산해 일부 화물차주들이 동요하고 있는데, 해당 내용이 반영된 법안은 이미 국회에서 철회됐다”며 “이런 내용은 앞으로도 전혀 추진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국토부 방안에는 “화주와 운수사 간 계약은 강제성 없는 가이드라인(화주의 운임 지급 의무 및 처벌 삭제)을 통해 관리”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송운임의 강제력을 없애고 가이드라인 형태로 제시하는 것은 화물운송 및 운임지급에서 화주대기업의 책임을 삭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국토부 방안에는 화물차 기사들이 구입한 차량을 운송사 이름으로 등록해 일감을 받는 방식인 지입제를 규제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화물연대는 “지입제 폐지, 다단계 축소 등 산업구조 개선은 화물연대가 출범 때부터 주장해온 구호였지만 현재까지도 근본적 구조개혁에 이르지 못했다”며 “산업구조 개편을 위해선 기존 정책이 실패한 이유부터 돌아보고 안전운임제 확대, 지입제 완전폐지 등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2월9일 국민의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안전운전임제를 2025년 말까지 3년 더 연장하는 화물자동차법 개정안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통과시킨 상황이라 정부안대로 개정될지도 미지수다.
국토위를 통과한 개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지 이날 60일째가 됐다. 국회법은 법사위가 이유 없이 법안이 회부된 날부터 6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않으면 상임위원회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법안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은 양곡관리법에 이어 화물자동차법도 본회의에 직회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31일 기자간담회에서 “법사위가 게이트키핑을 하지 못하게 하는 첫 사례로 양곡관리법이 새로운 길을 열었다”며 “(화물자동차법 등) 나머지 법들도 가급적 미루지 않고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민주당은 정부안 발표로 개정안 쟁점이 안전운임제 일몰 연장뿐 아니라 표준운임제, 지입제 개선 등으로 확대된 만큼 바로 본회의 직회부 시도를 하기보단 당내 논의, 이해관계자 의견 청취 등의 과정을 밟을 예정이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 나는 뉴스를 얼마나 똑똑하게 볼까? NBTI 테스트
▶ 이태원 참사 책임자들 10시간 동안의 타임라인 공개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