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이슈 주목 받는 아세안

인니·필리핀에서 남북 통일의 해법을 찾는다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정부, 아세안 등 통합 사례 연구범위 확대
통일부, 동남아 분쟁 해결 선례 분석 연구용역
한국일보

권영세(오른쪽)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3년 업무계획보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아세안 지역 국가들의 갈등 및 통합 과정에 대한 연구를 통해 남북 통일의 길을 모색하기로 했다. 통일부는 지난달 27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2023년 업무 추진계획을 보고하면서 ‘통일‧통합 관련 국제협력 강화’ 차원에서 기존 독일 위주였던 통일·통합 정책사례 연구 범위를 아세안 등으로 넓히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통일 해법을 찾기 위해 독일 이외의 지역으로 눈길을 돌린 건 기존 분단 국가 연구에선 해법찾기가 어렵단 얘기로도 들린다. 독일과 예멘 외에는 대상이 없을 뿐 아니라 그간 두 나라에 대해선 충분히 분석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북이 등을 돌린 지 70년이 넘어 ‘한민족’ 간 재결합이라는 민족 동일성에 근거한 접근 방식은 분단 당시 세대 외에는 더 이상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현실 인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지난해 9월 발표한 ‘2022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응답이 31.6%로 2007년 조사 시작 이래 가장 높았고, 특히 20대(40.9%)와 30대(35.3%)의 부정적 응답 비율이 더 높아 통일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또, 2020년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최근 여론조사에서 핵무장 지지 여론이 70%까지 이르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이 단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2020년 이후 갈등이 격화하면서 당장 통일로 가는 길을 찾는 것보다는 갈등 봉합이 우선돼야 한다는 방향으로 인식이 전환된 것 같다”면서 “그런 면에서 아세안 지역의 갈등 사례 연구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통일부는 지난해 말 ‘남북신뢰구축을 위한 동남아시아 분쟁 해결 선례 분석’이라는 연구용역을 신재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에게 맡겼다. 신 교수는 △인도네시아 아체주 적대행위중지협정과 헬싱키협정 △필리핀 방사모로 기본협정과 포괄협정 △동남아시아 비핵지대 조약 △인도-파키스탄 정전 협정 등의 사례를 분석했다. 대체로 종교 등의 이유로 갈등을 빚어 분쟁을 벌이다가 공존의 길을 걷게 된 사례다.

약 30년 내전 벌였던 인도네시아 아체 지역

한국일보

인도네시아 반다아체 쓰나미 박물관 전경. 고찬유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수마트라섬 최북단의 아체 지역은 ‘메카의 테라스’라는 별칭을 지닌 인도네시아의 특별행정구역으로, 인구는 약 530만 명이고 그중 70%가 아체족이다. 13세기 동남아 지역에서 최초로 이슬람을 수용해 현재 인구의 98%가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민족적·종교적 특성을 지닌 아체 지역은 오랜 시간 외세에 대한 항전을 거치며 지역적 정체성이 강해졌다. 16세기에는 이 지역에 진출하려면 포르투갈과, 19세기에는 네덜란드와 전쟁을 치렀다. 네덜란드가 물러난 1942년부터는 일본의 침략에 맞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까지 싸웠다.

이후 인도네시아로 편입돼 잦은 소요를 일으키다가 1959년 자치권을 얻었지만 중앙정부와 갈등을 빚다가 1976년 분리 독립을 내건 자유아체운동(GAM)이 내전을 일으켰다. 2004년 12월 동남아 쓰나미로 인적·물적 기반이 무너진 후 2005년 다섯 번의 회담을 거쳐 같은 해 8월 ‘헬싱키 협정’을 맺고 이듬해 제주특별자치도 사례를 본떠 자치권한을 지닌 아체특별자치주가 됐다.

신 교수는 △협정 체결 과정에서 다양한 해석 가능성이 없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표현 사용 △무장해제를 위한 평화지대(Peace Zone) 전략 △중립성을 인정할 수 있는 국제 감시파견단 구성을 통한 협정 이행의 구속력 제고 등을 우리나라 통일정책 수립에 참고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또, 평화적·사회적 통합과 무력충돌 재발 방지 등을 위해 사면 정책을 적절히 활용한 점도 염두에 둬야 할 부분으로 지목했다. 북한과 통합 시 발생할 수 있는 지역적 소요 사태 및 북한 군부 세력에 대한 책임 문제에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 중재로 협정 맺은 필리핀 방사모로

한국일보

'모로 이슬람 해방전선' 군인들이 필리핀 대선을 앞둔 지난해 4월 마긴다나오 지역 도로를 순찰하고 있다. 마긴다나오=AF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방사모로는 아체와 이슬람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모로인은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과 술루 군도를 중심으로 거주하면서 이슬람교를 믿는 13개 부족을 이르는 말로, 방사모로는 ‘모로인의 땅’ 또는 ‘모로인의 나라’라는 뜻이다.

방사모로 주민들은 1565년부터 1898년까지 300여 년간 이어진 스페인의 식민지 통치기간에는 정치적·사회적 자율성을 비교적 유지했지만, 이후 스페인을 대신해 이 지역을 식민지배한 미국은 달랐다. 비무슬림 인구를 이주시키고 토지를 국유화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모로 지역에 대한 개입을 시도했다.

1946년 들어선 필리핀 정부 역시 종교·문화적 특수성을 인정하는 대신 가톨릭 중심의 단일 국가체제에 편입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했다. 결과적으로 1960년대 후반부터 40여 년 이어진 내전으로 수십만 명이 희생되고 방사모로 지역의 1인당 지역소득(2012년 기준)이 필리핀 전체 평균 1인당 지역소득의 26%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1986년 민주화 이후 필리핀에서 경제·문화적으로 가장 낙후한 지역으로 전락했다.

이후 2012년 10월 말레이시아 정부 중재로 체결된 방사모로에 관한 기본협정(FAB), 2014년 3월 체결된 최종타결안인 방사모로에 관한 포괄협정(CAB)을 거치면서 이 지역에 평화가 찾아왔다.

신 교수는 반체제 세력이 정당 체제 내로 편입되면서 상호 적대적 행위가 줄어들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반체제 세력이 기존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유연성을 보이면서 온건화한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또, 방사모로와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이슬람 문화를 공유하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장기간 진행된 평화 협상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중재자 역할을 한 점도 남북 통일 정책 수립에 참고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동남아 비핵지대·인도-파키스탄 정전협정도 검토

한국일보

인도-파키스탄 분쟁지역, 카슈미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밖에 아세안 10개국이 참여한 동남아시아 비핵지대(SEANWFZ) 조약과 세 차례에 걸친 인도-파키스탄 전쟁을 일단락 지은 정전 협정이 이뤄지는 과정도 한국 정부가 통일 정책을 세우면서 검토해야 할 사안으로 제시됐다.

신 교수는 “현재 북미 간, 남북 간 첨예한 군사적 긴장 상황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북핵 문제 해결과 비핵지대를 위한 길이 완전히 닫혀 있는 것만은 아니다”라면서 “(남북) 공통의 이해를 찾기 위한 절실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