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우크라 전쟁 여파로 난방비 급등…건물 단열에 주력
'넷 제로' 리모델링, 지속가능 에너지 대책…유럽서 히트펌프 인기
전통 건축물이 많은 독일 중부의 도시 고슬라 |
(서울=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유럽의 건물 탄소중립 시계가 빨라졌다. 가스비 급상승으로 인한 난방비 걱정이 '넷 제로'(탄소 순배출량 0) 건물 확대의 촉매제로 작용했다.
이번 겨울을 앞둔 시점만 해도 유럽은 온통 암울한 전망으로 뒤덮여 있었다. 전기요금 급상승에 이어 예고된 난방비 '폭탄' 앞에 경제적 부담뿐만 아니라 저소득층 및 노인층 사망자 증가 등의 우려만 쌓여 갔다.
러시아가 유럽으로 흐르는 천연가스 공급을 줄여버리자 대안을 찾기가 어려웠다. 전쟁 전까지 유럽은 수입 가스의 절반을 러시아에 의존해왔다. 중동 등으로 수입선을 넓혔지만, 부족한 가스의 일부만 충당할 뿐이었다. 폐쇄 예정이던 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 연장도 실효성이 크지 않은 단기 처방전이었다.
가동이 중단된 러시아-독일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 (CG) |
◇ 유럽, 난방 '대란' 앞두고 건물 단열에 주목
난방 연료 부족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유럽 각국은 건물 자체의 난방 기능을 높이는 방법에도 주목했다. 단기적으로도 이번 겨울을 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데다, 장기적인 에너지 정책이기도 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더라도 가스 공급 문제는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큰 만큼, 지속가능한 대안이 필요했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화석연료 공급에는 언제든 새로운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유럽은 건물 분야에서도 2050년에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목표를 설정해놓았다. 건물 탄소중립은 단열 향상과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 사용, 고효율·저탄소 난방 장치, 건축 자재의 탈탄소화 등으로 이뤄진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21년 12월 모든 신축 건물을 2030년까지 '넷 제로'로 만드는 방향으로 '건축물 에너지 성능에 관한 지침(EPBD)' 개정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단열 기능이 떨어지는 건물의 보수를 원활하게 하는 조치들이 주요 내용이다. 건물의 에너지 시스템을 디지털화하기 위한 지원 방안도 들어 있다.
이에 앞서 EU는 건물 개보수율을 높이기 위한 조처를 해왔다. 2020년에 EU는 매년 건물 전체의 2%를 리모델링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매년 전체 건물의 1% 정도인 리모델링 비율을 두 배로 올리겠다는 방안이다.
EU가 이렇게 나오는 데에는 건물에서 탄소 배출량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에너지 관련 탄소 배출량의 39%가 건물에서 나온다. 이 가운데 4분의 3은 냉난방 등 건물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나머지는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다. EU의 '넷 제로' 달성을 위해 건물의 탄소중립은 필수 불가결하다.
소등 시간이 1시간 15분 앞당겨진 프랑스 파리 에펠탑 |
◇ 구옥 많은 유럽의 단열 고민…'넷 제로' 리모델링 가속
특히 유럽에선 오래된 건물이 많기 때문에 단열 문제는 골칫거리였다. 영국의 경우 비영리단체 에너지세이빙트러스트(EST)에 따르면 1919년 이전에 지어진 집이 20%에 달한다.
더구나 보존 가치가 있는 구옥의 경우, 집수리하기가 까다롭다. 단열재와 이중 유리창, 태양열 패널 등을 건물에 보강 및 설치하기 위해선 지자체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이를 위한 행정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난방 위기가 현실화하자 영국에선 건물 단열에 팔을 걷어붙였다. 오래된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 적용해온 규제 완화에서 나섰다. 영국 보수당은 최근 관련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독일은 지난해 3월 내놓은 '에너지 가격 상승 종합 대책'에서 건물 '넷 제로' 정책을 강화했다. 2023년부터 신축 건물에 상향된 에너지 표준을 적용하고 2024년부터는 신규 설치 난방시스템의 65%를 재생에너지 가동으로 의무화했다.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건물에 대한 리모델링 지원 규모도 확대하기로 했다.
독일 등 유럽에서는 건물 내 가스보일러를 히트펌프로 교체하는 바람도 불고 있다. 독일 정부는 올해 2월까지 히트펌프 생산과 기후 친화적인 건축자재 사용 등에 6억 유로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히트펌프는 바깥 공기나 땅, 물 등을 이용해 열을 전기로 끌어오는 원리로, 삼성전자 등 국내 히트펌프 제조사의 지난해 유럽 수출이 급증하기도 했다.
최강 한파, 난방 증기 내뿜는 건물들 |
◇ 한국, 건물 탄소중립 걸음마…"리모델링 보조금 늘려야"
우리나라의 경우도 건물 탄소중립을 위한 움직임이 점점 더 활발해지는 추세다. 서울시의 경우 2026년에 '건물 온실가스 총량제'를 도입 예정이다. 더구나 최근 '난방비 대란'으로 건물 단열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커진 만큼, 건물 '넷 제로'의 흐름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은 우리나라 전체적으론 건물 탄소중립과 관련해 걸음마 단계다. 2050년 탄소중립에 건물 부문도 포함돼 있으나, 실효적인 방안이 부족하다. 신축 저탄소 건물에 대한 세제 혜택이 늘고 있지만, 건물 탄소배출과 난방비 증가의 주요 원인인 구축 건물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탄소중립 대책이 미흡하다. 산업계의 기술 연구도 속도가 느린 실정이다.
이런 탓에 관련 논의도 바빠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가 주최하고 민주당 이소영 의원이 주관한 '건물부문의 2050 탄소중립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이명주 명지대 교수는 "탄소중립을 위한 100대 핵심기술에 건축물 용도별 냉난방 에너지 요구량을 절감할 수 있는 에너지 절약 설계기술 및 건설기술을 추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의 임현지 연구원은 4일 통화에서 "영국이 노후 건물의 그린 리모델링에 최대 800만원 상당을 지원하는 등 유럽 주요국들은 구축 건물의 탄소중립에 보조금 지원을 늘리고 있다"면서 "매년 건물 리모델링 목표 비율을 EU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lkbin@yna.co.kr #플랫폼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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