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탁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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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부 들어 민생 안 살핀다’, ‘탈원전 뒤치다꺼리하느라 힘든 거다’는 식으로 여야가 서로 상대편 탓을 한다. 그런 핑퐁 치기식 정치 공방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조영탁(63)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는 ‘난방비 사태’를 계기로 진행한 <한겨레> 인터뷰에서 “지금의 에너지 가격 결정 구조를 그대로 둔 상태에선 어떤 정부, 어느 정권이 들어선다고 해도 유가나 가스 가격이 올라갈 때마다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문제”라며 “정치 바람을 덜 타는 방식으로 가격 결정 구조를 바꾸는 게 생산적인 해법”이라고 말했다.
이번 난방비 사태로 극명하게 드러난 에너지 가격 문제의 핵심은 “거번먼트(특정 정부·정권)가 아닌 거버넌스(에너지 가격 결정 구조) 때문에 생긴 것”이며 “이는 최근의 전기요금 인상논란 역시 마찬가지”라고 진단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31일과 2일 두 차례에 걸쳐 전화로 1시간가량 이뤄졌다. 조 교수는 대표적인 에너지 전문가로 꼽힌다.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에너지기본계획 전력분과장, 전력수급 기본계획의 전문위원장으로 활동한 바 있고, 전력거래소 이사장을 지냈다.
난방비 사태가 에너지 정책에 주는 시사점과 대응방안은?
“당장은 (취약계층에 지급하는) 에너지 바우처 금액이 적절하냐는 문제가 있겠다. 현재 동·하절기로 나눠 가구 수를 기준으로 지급하고 있는데, 올해처럼 난방비가 급등하면 의미 없는 수준일 수 있다. 현재와 같이 사후적인 인상대책보다는 연료 가격에 연동해 지급하는 제도적 장치를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경우 예산편성상 불확실성이 커지는 어려움은 있겠지만, 여분의 예비비를 책정하는 식 등 여러 방안이 있을 것이다. 또 난방비 지원의 사각 계층, 바우처 대상 가구가 지원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전달체계의 미비점을 더 살피고 정비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 차원에서는 “에너지 이용 효율을 높이는 개선 사업의 확대” 필요성을 들었다.
“빈곤층에 대한 에너지 비용 지원과 함께 이중창 등 여러가지 단열 사업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국내 노후 건축물 중에는 단열에 신경을 안 쓰고 지은 게 많다. 물론 개선 사업 추진에서 ‘주인-대리인 문제’(주인과 세입자의 이해관계 불일치) 같은 장애요인도 있다. 몇 개월 안 살고 나갈 세입자 입장에서 굳이 단열 공사에 따른 불편을 감수할 이유가 없고, 주인 입장에서 난방비는 세입자가 내기 때문에 굳이 비용을 들여서 단열강화 조치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문제까지 고려한 에너지효율 개선 사업을 해나가야 한다. 건물의 단열을 높이는 건 탄소 중립과도 직결된다. 주민들도 좋고, 국가 경제는 물론 지구환경에도 좋은 일이다.”
조 교수는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요금 결정의 거버넌스, 즉 집권 정부가 사실상 결정하는 에너지 가격 결정 구조에 있다”며 “이걸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전 정부에선 뭐 했냐, 지금 정부는 왜 대응을 안 했느냐는 식의 싸움은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이 문제는 보수 정부냐 진보 정부냐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정부가 정권 안정을 택하지, 가격 올리는 선택을 하겠는가. 똑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거의 연례행사처럼 돌아오는 선거를 고려해서 인상 결정은 미뤄질 수밖에 없고, 지금처럼 누적됐던 문제가 한꺼번에 터지게 된다.”
현재 가스(도매가격)나 전기요금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결정하는 방식인데, 사실상 집권 정부에서 정한다고 볼 수 있다.
조 교수는 “이게 사실 개발도상국 시절의 낡은 체제”라고 말했다. “1960년대 초 이후 수출주도형 경제개발을 한다고 정부가 공기업 독점 체제로 바꿔 가격결정권을 쥐고 요금을 통제했다. 경제 개발하면서 물가를 잡고 수출해야 하니, 요금을 싸게 매긴 거다. 전기, 가스 요금은 이만큼만 받으라 하던 개발도상국형 요금통제 방식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진입한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거다.”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요금 결정 구조를 정치로부터 최대한 독립시켜야 한다. 정부로부터 독립된 성격의 규제위원회를 만들어, 여기서 에너지 가격을 결정하는 거다. 이자율을 금통위(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결정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국제 원유·가스 가격이 오르는 데에 맞춰 제때 요금을 조정하면서 이에 대한 사전 시그널(신호)을 주면, 소비자들은 여기에 대응하게 된다. 이번에도 독립 규제기구가 있어서 미리 시그널을 주었으면 아무리 강추위라도 소비자들은 요금 폭탄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을 것이다. 미리 단열하고, 가스를 덜 쓰고 하는 식으로 준비해 충격을 흡수하게 해야 한다. 가격 기능을 통해 메시지, 시그널을 미리 줘야 하는데 정치적 부담으로 폭탄 돌리기를 하니 문제가 쌓였다가 한꺼번에 터지는 거다. 이런 정책 거버넌스는 어떤 정부에든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국민들에게 급작스러운 충격을 유발한다.”
독립 규제위원회를 만든다고 해서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기업 독점구조 등 다양한 요인이 있어서 요금 결정의 거버넌스만 바꾼다고 해서 100%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진 않는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오른 만큼 그대로 다 반영은 못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 방식보다는 나을 거라고 본다. 집권 정부에 모든 결정권이 주어져 있는 지금 구조에선 선거를 의식하고 야당이나 언론의 비판이 두려워서 자꾸 다음으로 책임을 떠넘기게 된다. 독립 규제위원회를 구성하고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들이 모여서 결정하게 하면, 요금 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신뢰성이 높아지고, 정부도 정치적 부담 및 이해관계에서 한발 벗어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에너지 가격 같은 중대 사안을 정부가 손 놓고 있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
”물론 집권 정부의 성향에 따라 요금에 대한 정치적 입장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정부에서 관련 부처를 통해 독립 규제위원회에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통로(장치)를 만들면 될 것이다. 합리적 수준을 넘어서는 과도한 가격 인상인지 모니터링하는(감시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
조 교수는 “요금 통제보다 정부가 더 신경을 집중해야 할 중대사안은 에너지 복지 체계의 정비와 강화”라며 “차제에 에너지 빈곤층이나 여러모로 취약한 자영업자나 사업체에 대한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지원제도 및 예산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 가격을 독립적 위원회에서 원가 중심으로 운영하고 탄소 중립을 위해 탄소 비용 등도 반영하게 되면 에너지 요금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정책의 수용성이란 측면에서 에너지 빈곤층이나 취약업체에 대한 지원체계 없이는 독립규제위원회든 탄소 중립이든 제대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앞으로 정부나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나가야 한다고 보는가?
“독립 규제위원회 문제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전기 분야와 관련해 언급한 바 있고 현재 여러모로 고민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독립 규제위원회라고 하더라도 ‘독립성의 수준 및 방식’ 그리고 전기, 가스, 열 요금 등 ‘포괄대상의 범위’도 다양하기 때문에 정부의 시안이 나와봐야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조 교수는 이번 사태로 “정부가 요금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통제하고 개입해야 한다거나 거버넌스 개선 없이 국민 지원금만 더 확대하자는 식의 얘기도 나올 수도 있어서 우려되는 측면도 있다”며 “다양한 의견을 놓고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논의해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라도 “남 탓 하는 ‘정치 공방’을 벌일 때가 아니라 요금 결정 구조 개선을 둘러싼 ‘정책 공방’을 벌일 때”라고 덧붙였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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