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월 8일 개봉을 앞둔 '다음 소희'는 당찬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김시은)가 현장실습에 나가면서 겪게 되는 사건과 이를 조사하던 형사 유진(배두나)이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강렬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부푼 마음을 안고 들어간 회사에서 소희는 첫 출근에 폭언과 폭설을 듣는 충격적인 경험을 한다. 하지만 동료들은 아무렇지 않게 업무를 이어 나가고 소희는 비윤리적 행태가 난무하는 회사에서 점차 메말라 간다.
'다음 소희'는 2017년 1월 전주에서 대기업 통신회사의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갔던 고등학생이 3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실화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정주리 감독이 "가급적 콜센터의 환경, 구성요소, 근무 조건은 가급적 사실적인 것들로만 채우려고 노력했다"라고 밝힌 것처럼 영화는 소희를 궁지로 내몬 주변 환경들을 사실적으로 그린다.
선배의 죽음을 직접 발견한 후 채 하루도 지나치 않아 업무를 강요하는 비인권적 행태 속에서 소희가 느끼는 불안함과 두려움은 그의 귀에 이명처럼 남아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 벨소리와 귀를 막는 소희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소희가 겪어야 하는 비합리적인 업무와 구조는 "넌 아직 실습생이지 않냐", "실습생이 도망갈까 봐 인센티브는 1~2달 후에 나온다" 등 직설적인 대사로 제기돼 직접적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영화는 김시은이 이끌어 가는 전반부와 사고 후 이를 조사하는 배두나가 이끌어 가는 후반부로 나뉜다. 두 주연 인물이 배턴터치 식으로 극을 이끌어 가는 구조다.
낯설 수 있는 전개 방식, 홀로 영화를 이끌어 나가야 하는 부담감에도 두 주인공은 탄탄한 연기력으로 극을 이끈다. '다음 소희'로 처음 장편 영화 데뷔를 알린 신예 김시은은 첫 장편 영화라고는 믿기 힘든 안정적인 연기력을 보였다.
김시은은 순수하고 맑은 고등학생의 모습부터 힘든 회사 업무에 치여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소희의 변화 과정을 개연성 있게 그려낸다. 자칫하면 과하다 느껴질 수 있는 감정신에서도 김시은은 힘을 뺄 때 뺄 줄 아는 노련함을 보여주며 신예답지 않은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시간이 지날 수록 쌓여만 가는 일들에 '영화 끝나기 10분 전인데 왜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불안해지기도 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는 끝내 해결되지 않은 결말에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그 답답함이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해결되지 않은 상황 속 그 '다음 소희'가 나타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달라는 소희의 처절한 절규일지도 모른다.
정주리 감독은 지난달 31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나도 그 일을 반복하게 한 사회 일원이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늦었지만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만들어지는 중에도, 만들어진 후에도 이 세상의 수많은 소희들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첫발을 내디뎠다 참담하게 무너져가고 있다. 현실의 소희는 이제 없지만 '다음 소희'에서, 그리고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마음 속에서 살아가며 끊임없는 외침을 이어가고 있다.
2월 8일 개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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