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운전자 욕설 고스란히 들은 택시 뒷좌석 어린이들
법원 "정서적 아동학대 인정된다" 유죄 판결
대한법률구조공단 |
(김천=연합뉴스) 진병태 기자 = 차선변경 시비로 택시를 막아 세운 뒤 택시 기사에게 욕설을 하는 과정에서 택시에 탑승하고 있던 어린이가 이를 듣게 됐다면 아동학대죄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1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남균 판사는 택시 기사에게 욕설을 한 A씨에 대해 아동복지법위반(아동학대) 등으로 벌금 300만원에 처하고 4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했다.
경기 성남시에 사는 B씨는 지난해 4월 아들 2명(7세, 6세)과 함께 택시를 타고 가던 중 성남시 태재고개 부근의 8차선 도로에서 갑자기 끼어든 벤츠 차량에 의해 급정거되는 일을 당했다.
벤츠 운전자 A씨는 택시가 자신의 차량 앞으로 끼어들었다며 경적을 울리면서 따라와 택시를 멈춰 세운 뒤 택시 기사에게 달려와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었다.
택시 뒷좌석에서 아들 둘과 함께 있던 B씨는 "뒤에 아이가 있으니 그만 하세요"라고 호소했으나 A씨는 들은 척도 않은 채 택시 기사에게 2분여간 욕설을 이어갔다.
왕복 8차선 도로 한복판이어서 차량에서 내릴 수 없었던 B씨는 아이들의 귀를 막아주며 폭언에 노출되는 것을 최소화하려 애썼다.
이 사건 발생 다음날 B씨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당시 상황을 담은 영상을 올려 피해를 호소했다. 실제로 작은아들은 이 사건과 관련된 악몽을 꾸었고, 큰아이는 친구들과 놀면서 가해자의 말을 흉내 내기도 했다고 B씨는 말했다.
검찰은 A씨에 대해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운전자폭행) 등을 적용, 벌금형의 약식명령을 청구하였으나 법원은 사안이 중하다고 보고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재판부는 "A씨는 택시 기사에게 공포심을 느끼게 해 도로교통의 안전을 해쳤고, 피해 어린이들의 정신건강 및 정서적 발달에 해를 끼쳤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B씨를 변호한 공단 소속 조수아 범죄피해자 전담 변호사는 "아동에 대한 직접적인 폭언뿐 아니라, 아동이 들을 수 있는 장소에서 이뤄진 간접적 폭언도 아동학대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 판결"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조 변호사는 "'제주 카니발 사건'에서 보듯이 이전의 판례는 자녀가 보는 앞에서 부모를 폭행하고 폭언하더라도 아동학대로는 처벌받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제주 카니발 사건'은 2019년 7월 제주에서 카니발을 몰던 가해자가 차선변경 시비 끝에 피해자의 차량을 멈춰 세운 뒤 피해자 차량의 뒷좌석에서 자녀(당시 5세, 8세)가 지켜보는 가운데 차량 운전자를 폭행한 사건이다.
가해자는 1심에서 징역 1년 6월,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그에게 적용된 죄명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운전자 상해죄)으로 아동학대죄는 적용되지 않았다.
jb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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