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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공공요금 인상 파장

인플레이션 ‘구조 신호’ 보냈던 식당 주인들, 고지서 앞에서 “겁이 나 죽겠다”[난방비 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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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31일 인천 서구에 있는 쌈밥집을 운영하는 서명수씨(왼쪽)와 나민채씨가 메뉴판 앞에 앉아 있다. 식당 벽면에는 물가 상승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메뉴 변경을 예고하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성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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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쌈밥은 오는 2월이나 3월 말까지만 제공·판매할까 합니다. 1만3000원에서 1만5000원으로 올린 지가 약 6개월 정도 되고 있는데, 그래도 원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고 참 어려운 실정입니다.’

설연휴였던 지난 23일, 인천 서구의 한 식당 벽 한편에는 이같은 내용이 담긴 31줄짜리 자필 호소문이 붙어 있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60대 남성 나민채씨는 20년간 팔아온 우렁쌈밥을 메뉴에서 내리기로 했다. 식자재값이 계속 올라 마진이 줄었지만 손님이 줄까 봐 음식 가격을 무한정 올릴 수 없어서다. 나씨는 다음달 나올 가스비·전기세 청구서가 두렵다. 적자를 본 탓에 부가세도 체납하고 있다.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탄광 속 카나리아’처럼 에너지·교통·식비 등 전방위로 불어닥친 현재의 인플레이션 위기를 일찌감치 겪기 시작했다. 3년간 이어진 코로나19 거리 두기 속에서 겨우 영업을 유지해온 자영업자들은 지난해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식자재값까지 천정부지로 치솟아 비명을 질렀다. 그러던 차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난방비 폭탄까지 맞은 것이다.

나씨 부부가 새해 들어 내린 결심은 20년간 전문적으로 만들어온 요리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지난해 여름, 우렁쌉밥 정식 가격을 2000원 올리며 “이번까지 올리고 안 남으면 과감히 다른 거 팔자”며 나씨가 아내에게 얘기했던 말이 현실이 됐다.

이달 초 붙인 호소문에서 나씨 부부는 “모든 식자재 단가의 고공 행진으로 인해 1만5000원으로도 도저히 원가를 맞추기가 너무 힘든 현실”이라며 “고객님들은 1만5000원이 비싸다고 느끼실 테고 운영자로서는 원가가 너무 세니 서로 맞지 않는 상황이 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메뉴 변경 등 기타 여건을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나씨는 식당을 운영해온 20년간 총 네 번 가격을 올렸다. 그 중 두 번이 최근 2년 사이 일이다. 2020년 초까지만 해도 1만1000원이던 우렁쌈밥 정식은 지금 1만5000원이다.

특히 장류와 쌀 가격이 급등했다. 모두 우렁쌈밥의 필수 재료다. 나씨가 납품받는 된장은 1년 전 14kg에 2만5000원대에서 현재 3만2000원대로 올랐다. 국내산 쌀 30kg 한 포대는 6만원대에서 7만9000원대로 상승했다. 우렁, 돼지고기, 숙주도 비싸졌다. 그는 31일 “자영업자들은 음식값을 올리려면 1년을 고민한다”며 “국내산 좋은 식재료만 고집하는데 요즘 중국산 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라고 했다.

“겁이 나 죽겠다.” 예년 겨울보다 급등한 난방비는 나씨를 더욱 위축시켰다. 상추와 깻잎 등 쌈을 씻느라 매일 아침 두 시간 동안 틀어놓는 수돗물도 부담이다. 수도세가 이렇게 부담스럽게 느껴진 것은 지난 20년간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경향신문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의 한 국밥집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화구에 가스불이 켜져있다. 김송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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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찾은 서울 마포구의 한 국밥집. 솥과 뚝배기가 얹혀 있는 주방 화구에서 불이 활활 타올랐다. 식당 주인 김은주씨(78)는 돼지고기 국물을 내고, 국밥에 들어갈 족발을 삶기 위해 하루 평균 15시간 가스불을 켜둔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해 여름 돼지고깃값 인상으로 국밥 한 그릇 값을 1000원 올렸고, 두 달 만에 또 1000원을 올렸다. 주머니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컸다. 1년 전 50만원대였던 월 가스비는 올 겨울 들어 60만원대를 찍었다.

집이라면 옷을 껴입고 난방을 약하게 해 버티겠지만 식당에선 손님 때문에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이날 식당을 찾은 손님 두 명은 “날씨가 너무 춥다”며 전기 온열기와 가까운 곳으로 자리를 옮겼고, 온열기 온도를 높였다.

동대문구에서 10년째 족발집을 운영해온 안영철씨(50)는 지난해 여름에도 ‘가스비 폭탄’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6월에 청구된 요금은 20만1420원이었는데 한 달 사이 37만8420원으로 확 뛰었다는 것이다. 족발을 삶기 위해 하루 3시간 내리 가스 불을 켜둔다는 안씨는 전기세도 걱정했다. 그는 “히터는 겨울철 한 대만 틀지만, 영하 10도 이상 내려가면 두 대를 틀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가스불로 철판을 달궈 음식을 만드는 노점상들도 “남는 게 없다”고 했다. 토스트를 만들기 위해 뜨거운 철판에 마가린을 바르던 서울 마포구의 노점 주인 A씨는 가스, 식빵, 계란 가격이 올라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는 “지금 토스트가 2500원이다.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단골 손님 얼굴 보면 못 올린다”고 했다.

마포구의 한 분식 노점 메뉴판에는 바뀐 가격표가 종이로 덧대져있다. 지난해 10월 가격을 500원씩 올렸다. 매대 안쪽에는 등유 난로가 놓여 있었다. 노점상 임모씨는 “등유가 휘발유값보다 더 비싸다”며 “리터당 800원에 사던 걸 1600원에 사고 있다. 난로 안틀면 추워서 장사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서대문구에서 붕어빵·계란빵을 파는 김성대씨(72)는 “LPG 가스 20kg 한 통은 5만5000원인데, 3일이면 다 쓴다”며 “비슷한 양을 쓰고도 작년에는 한 달에 40만원이 나갔는데 지금은 55만원이 나간다”고 했다. 1년 사이 계란 한판 가격은 6000원대에서 8000원대로, 팥 가격은 1kg당 4000원대에서 8000원대, 봉투값은 1000개에 1만2000원에서 1만7000원으로 올랐다. 김씨가 파는 붕어빵은 두 개에 1000원, 계란빵은 하나에 1500원이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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