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주목
신규·갱신계약부터 사고부담금 확대
무면허·뺑소니·마약 운전도 제외
신규·갱신계약부터 사고부담금 확대
무면허·뺑소니·마약 운전도 제외
[사진 이미지 = 연합뉴스] |
# 2021년 9월 새벽 A씨(34)는 인천 을왕리해수욕장 인근 도로에서 술에 취한 채 운전을 하다 오토바이로 치킨 배달을 하던 50대 가장을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보험사가 유족에게 지급한 보험금은 2억7000만원이지만 A씨가 낸 비용은 고작 300만원에 불과했다.
#같은해 부산 도심 한복판에서 대마초를 피운 뒤 환각상태로 포르셰 차량을 운전한 B씨(45)는 7중 추돌 사고를 내고도 사고 처리 비용으로 한 푼도 내지 않았다. 피해자 9명에게 지급된 보험금 8억1000만원은 모두 보험사에서 부담했다.
위 사례들처럼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 일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이로 인한 교통사고가 전국에서 속출하고 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올해부터 음주운전 사고를 낸 이들은 각자의 차보험 갱신 상황에 따라 사실상 보험 혜택을 적용받지 못한다는 것. 지난해 7월 28일부터 가해 운전자 부담을 크게 올린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자배법)’이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은 신규 가입 또는 갱신하는 자동차보험 계약에 적용되는데 여전히 모르는 운전자들이 많아 소개한다.
자배법은 마약, 약물, 음주, 무면허, 뺑소니 사고 시 운전자가 의무보험 한도 내에서 피해자에게 지급된 보험금 전액을 ‘사고부담금’으로 내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고부담금이란 사고를 낸 사람이 보험금의 일부를 부담하는 것을 말한다.
법을 어기지 말라는 경각심을 주고, 사고 예방을 위해 마련된 제도이지만 그동안 한도가 높지 않아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음주 운전 기준은 운전자 혈중알코올농도가 0.03% 이상인 경우다.
자배법 개정안은 보험사가 의무보험으로 보장해주던 보험금 전액을 개인이 사고 부담금으로 부담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자동차보험은 모두가 예외 없이 가입해야 하는 의무보험과 원하는 사람만 가입하는 임의보험으로 나뉜다. 의무보험은 차 사고를 내면 대인(對人)은 사고 1건당 1억5000만원, 대물(對物)은 2000만원까지 보상해준다. 이전까지는 음주·마약 등 상태에서 운전하다 사고를 내면 사고 1건당 이 금액에서 대인은 1000만원, 대물은 500만원까지만 개인이 사고 부담금으로 물게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개인 사고 부담금이 대인 1억5000만원, 대물은 2000만원까지 상향됐다. 의무보험 보장 한도까지 사고 부담금 한도가 올라간 셈이다.
특히, 기존의 사고당 부담금이 아닌 사망자와 부상자 수에 따라 각각 부담금을 내도록 해 가해자의 사고 부담금이 확 늘었다. 사실상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제는 음주 사망 사고 등을 내면 사고 보상금으로만 수억원을 물어줄 수 있다. 극단적으로는 10억원정도의 돈을 자비로 부담해야 하는 경우도 나온다. 물론 여기에 형사 합의금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럼, 왜 이렇게 사고부담금이 ‘껑충’ 뛰는 걸까.
피해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은 기존과 동일하게 보험사에서 일괄 처리하지만, 사고부담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보험사가 운전자(피보험자)에게 구상하는 방식을 취한다.
일례로 음주운전을 하던 홍길동 씨가 갓길에 주차돼 있던 외제 승용차를 들이받아, 동승한 친구 2명이 사망하고 1명은 전신마비(부상1급)의 피해를 입었다. 여기에 8000만원의 차량 피해가 발생, 종전 홍 씨의 사고부담금은 최대 1억6500만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변경된 제도로 인해 홍씨의 사고부담금은 6억5000만원으로 껑충 뛴다. 이는 보험사가 각각의 사망자 유족에게 3억원씩을, 부상자에게 2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하고 자동차 대물 피해액 8000만원까지 총 8억8000만원을 지급하는데 이 금액 중 상당액을 홍씨에게 구상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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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사고부담금을 낸다고 해서 형사 책임이나 형사 합의금을 물어줘야 할 책임이 없어지지 않는다. 사고부담금과 별개로 가해자가 추가적으로 더 많은 돈을 물어줘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간혹 뜻하지 않게 음주운전자의 차량을 동승하는 친구나 직장동료들이 있는데, 이러다 사고가 나면 음주운전을 말리지 않은 책임을 물어 동승자가 받을 사고보험금이 최대 40% 감액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음주, 마약, 약물, 무면허, 뺑소니 운전은 고의성이 높은 중대한 과실”이라며 “사고 시 피해 규모도 크기 때문에 운전자의 경제적 책임을 강화해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도 변경으로 교통사고 감소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찰이 차량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음주 단속을 하고 있다. [사진 = 매경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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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최근 국회 김회재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2022년 2회 이상 적발된 상습 음주운전자 수는 16만2102명에 달했다. 이들 중 74%는 음주운전으로 적발되고 10년 안에 다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분석됐다. 더욱이 1년 이내 음주운전 재범자가 2만9192명으로, 전체 상습 음주운전자의 18%를 차지했다.
3회 이상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사람도 7만4913명이나 됐다. 3년간 전체 음주운전 적발 건수의 20.5%에 해당한다. 음주운전을 하다 단속에 걸리는 사람 5명 중 1명꼴로 3회 이상 상습범인 셈이다.
김 의원은 “상습 음주운전자 중 74%가 10년 이내 재범을 저지르는 만큼 10년의 기간을 특정해 이들에게 더 강한 처벌을 부여하는 개정 법안을 발의할 것”이라며 “조속히 보완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파트 단지 내 음주운전도 면허 취소될까…법원 판단은?
누구나 자유롭게 통행이 가능하다면 아파트 단지 내 도로라도 음주운전 행정처분이 가능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최근 제주지법 행정1부(김정숙 수석부장판사)는 A씨가 제주경찰청을 상대로 ‘자동차운전면허 취소 처분을 무효화해 달라’며 낸 소송을 기각했다.
앞서 A씨는 지난해 10월 18일 음주상태로 제주 서귀포시 한 아파트 단지 내 도로 약 20m를 주행하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95%로 조사됐다. 현행법상 혈중알코올농도 0.08% 이상은 면허 취소에 해당한다. A씨는 같은 달 29일 면허 취소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A씨는 이에 불복하고 지난 1월 10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지만 기각되자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아파트 단지 내 도로는 그 출입구에 차단기가 설치돼 있고 그 옆에 경비실이 있다. 기본적으로 아파트 주민 차량으로 등록된 차량만 통행할 수 있다. 특히, 차단기에도 등록차량, 방문차량이라고 표시돼 있다”며 “불특정 다수의 사람 또는 차량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도록 공개된 장소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아파트 주민 또는 그들과 관련한 특정한 용건이 있는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고, 자주적으로 관리되는 장소다. 도로교통법상 도로에 해당하지 않아 면허 취소 처분은 위법하다”고 강조했다.
[사진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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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도로교통법상 도로가 아닌 곳에서의 음주운전 형사처벌은 가능하다. 하지만 행정처분에 대한 예외는 빠져있어 이를 이유로 운전면허를 취소하거나 정지하는 행정처분은 할 수 없다는 것이 A씨의 입장이다.
그러나 법원은 A씨의 이 같은 주장에도 경찰 처분이 적법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단지 내 도로는 외부도로와 직접 연결돼 있고 아파트 단지 내를 관통하는 도로”라며 “왕복 2차로의 도로 중앙에는 황색 실선이, 갓길에는 흰색 실선이 그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또 법원의 사실조회 결과 경비실 직원 및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이 지난해 1월12일께 담당 경찰관에게 ‘현재까지 통제를 하지 않고 있어 외부차량의 출입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답변한 점도 인용했다.
재판부는 “사건 당시 외부차량이 별다른 통제 없이 아파트 단지 내로 진입해 도로를 통행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현실적으로 불특정의 사람이나 차량의 통행을 위해 공개된 장소로, 도로교통법상 도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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