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이슈 공공요금 인상 파장

난방비 급등에 ‘횡재세’ 급부상…“비현실적” vs “정의·공정”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정치권 중심으로 횡재세 논의 재점화

“세계적인 흐름…사회적 의무 다해야”

정유사들 “전력·난방 사업자도 아닌데…”


한겨레

지난해 7월25일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등 관계자들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지에스(GS)칼텍스 본사 앞에서 재벌 정유사의 폭리 행태를 규탄하고, 정부에 ‘횡재세'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른바 ‘난방비 폭탄’ 논란을 계기로, 지난해 고유가 덕에 15조원 가까운 수익을 챙긴 정유사들한테 ‘횡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재점화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기본소득당 등이 영국과 유럽연합 국가 등의 횡재세 도입 행보를 들어 우리나라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선데 따라서다. 정유사들은 “에너지산업 구조와 전력 시장이 다른 점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반박하며 논란이 커지는 모습이다.

정치권 “석유사업법 근거로 횡재세 부과 가능”


30일 국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기본소득당은 고유가 덕에 초과 수익을 얻은 에너지 기업들한테 세금을 더 거둘 수 있도록 법인세법을 개정하는 방식의 횡재세 입법을 추진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이재명 대표가 횡재세 입법에 앞장서고 있고,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장은 “석유사업법 18조를 근거로 정유사에 횡재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석유사업법 18조에는 ‘국제 석유 가격의 현저한 등락으로 인해 지나치게 많은 이윤을 얻게 되는 석유정제업자 또는 석유수출입업자’에게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석유 수급과 석유 가격의 안정을 위해 수입 가격과 국내 가격의 차액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획재정부장관과 협의해 부과금을 징수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장은 <한겨레>에 “고유가 상황에서 천문학적 수익을 올린 정유사들한테 횡재세를 부과하는 것은 전세계적 추세”라며 “정유사들이 이미 유류세 인하 정책의 수혜를 입었고, 정제마진도 다시 상승하는 추세여서 횡재세 도입에 반발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고금리와 고유가로 민생경제가 위기에 내몰린만큼 기업들도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차원에서 횡재세 논의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유사들 펄쩍…“형평성에 어긋나”


정유사들은 펄쩍 뛴다. 에스케이(SK)에너지·지에스(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스오일(S-Oil) 등 정유 4사를 회원사로 둔 대한석유협회는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영향으로 5조원의 적자를 보았을 때 보전을 해준 적 없는데 수익이 늘자 횡재세를 걷겠다고 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날 뿐더러, 외국 사례를 우리나라에 바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영국은 올해 1월부터 석유·가스 기업에 부과하는 횡재세율을 25%에서 35%로 올리고, 부과기간도 2028년 3월까지로 연장했다. 그러나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말 펴낸 ‘세계에너지시장 인사이트’를 보면, 영국 정부는 신규 석유·가스 개발 사업에 투자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세액 공제를 제공해, 실제로 횡재세를 내는 글로벌 석유기업은 없다고 소개돼 있다. 조상범 석유협회 실장은 “원유를 시추하고 탐사하는 영국 석유·가스 기업들한테 횡재세를 부과하는 이유는 기업이 노력하지 않은 결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석유 제품 공급이 부족해 시민들이 고통받기 때문이라는 논리였다”며 “한국 정유사들은 원유를 사와 정제해서 이를 제품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같은 화석연료 기업이라도 외국 원유 기업들과 그 역할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유럽 국가들의 횡재세가 화석연료 기업뿐 아니라 재생에너지·원자력을 포함한 모든 전력생산 사업자들에게 부과되는 것도 차이점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 9월 화석연료 생산업체뿐 아니라 전력기업에도 횡재세를 부과한 뒤 이를 재원으로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계획을 제안했다. 정유 쪽 뿐만 아니라 천연가스·석탄과 원자력·재생에너지까지 모든 에너지 기업들한테 ‘연대기여금’을 부담시키자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정유사들은 자동차용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을 주로 생산할 뿐 전력(전기)과 가스 부문까지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게 정유 업계 쪽의 설명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전기 원료의 65%가 석탄·천연가스이고, 난방의 주된 원료는 천연가스이며, 이러한 원료를 수입·공급하는 기업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 등 공기업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들 공기업은 미수금·적자 상황이 수조~수십조원에 달하는 지경이고, 포스코에너지와 에스케이이엔에스 등 민간 발전사들도 이번 횡재세 도입 논의에서 제외돼 있다.

“횡재세 부과 비현실적…시장경제 원칙에도 어긋나”


석유사업법 18조를 근거로 정유사에 부과금을 징수하는 것 역시 현실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나온다. 강승진 한국공학대 지식기반기술에너지대학원 교수(에너지경제학)는 “올해 한국 정유사들의 이익이 높은 이유는 정제마진 단가가 올라 국제 석유류 제품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라며 “18조는 유가 자율화가 실시된 1997년 이전에 만들어진 조항이다 보니 현재 상황과 맞지 않는다. 국제·국내 제품 가격의 차액 범위 내에서 석유수입부과금을 부과한다는 조항을 적용해도 그 차액이 없기 때문에 실효성 있는 주장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횡재세 부과 방식이 시장경제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난방비 폭등 등 비상 상황이어서 논란이 커지는 것 같다”면서도 “정책 변화로 기업이 노력하지 않아도 큰 돈을 벌 경우는 횡재세를 부과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석유를 미리 싸게 계약하는 등 노력을 했는데도 단지 이윤이 많다는 것만으로 횡재세를 요구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칙에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재원 마련은 유효…기업도 스스로 나서야”


횡재세로 재원 마련을 하겠다는 민주당의 의도는 공감받을 수 있지만 정부와의 협업 등 다른 풀이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제안들이 나온다. 홍종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환경경제학)는 “천연가스로 인한 에너지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경고는 지난해부터 계속 나왔는데 정부 대책이 부족하다 보니 재원 마련 측면에서 이런 논의가 나온 것”이라며 “횡재세로 재원 마련하자는 주장 이전에 정부가 예산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정부와 야당이 협력해) 에너지 요금 인상으로 고통받는 서민들에게 지원할 재원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기업 스스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문화 조성이 더 중요하다는 제안도 나온다. 조용성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은 “현재 난방비 폭등 등 직면하는 문제를 풀다 보니 이런 논의가 나오고 있으며 정의·공정이라는 측면에서 횡재세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라며 “당사자로 지목되는 정유사들도 사회적·윤리적 책임을 다해야 하고, 그래야만 정유사가 어려울 때 사회가 또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호떡·어묵도 이겼다…‘겨울 간식 지도’ 1등 메뉴는?
▶▶[그때 그뉴스] “커피 한잔” 부탁 노숙인에게 점퍼 건넨 시민▶▶마음 따뜻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뉴스레터 모아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