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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만화와 웹툰

'부커상 첫 만화 후보' 작가 신작 "고립된 현실서 개인 내면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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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그래픽노블 작가 닉 드르나소
신작 '연기 수업' 출간 서면 인터뷰
우연히 연기를 배우기 시작한 10명
현실과의 경계 모호해지면서 미궁에
한국일보

닉 드르나소 작가는 독자로서 만화는 다른 매체와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하고, 개인적인 어떤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Drawn and Quarter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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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블은 문학인가. '노블'(novel·소설)이란 명칭에도 불구하고 문학계 내에서 배척의 시선이 없지 않다. 그 속에서 닉 드르나소(34)는 그래픽노블 '사브리나'로 문학의 범주를 한 뼘 넓힌 미국 작가다. 2018년 세계적 문학상인 영국 부커상 1차 후보작(롱리스트)에 50년 만에 처음 만화로 이름을 올리면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괴담과 음모론 등 현대사회 병폐를 오싹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심사위원단의 극찬을 받았다. 패러다임을 전환시킬 논쟁을 불렀지만, 정작 자신의 작품이 부끄럽기만 하다던 그가 5년 만에 신작 그래픽노블 '연기 수업'을 내놨다.

드르나소는 최근 한국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신작에 대해 "팬데믹과 그로 인해 사람들이 더 고립된 현실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데뷔작 '베벌리'와 '사브리나'가 사회·정치와 같은 공공의 공간을 다룬다면, '연기 수업'은 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연기라는 소재는 인간 심리를 풀어내는 데 적합했다. 그는 "몸을 쓰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 연기의 과정이 굉장히 내밀한 것이라서, 작품 전체가 보다 '내면적'인 내용으로 읽힐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그래픽노블은 우연히 무료 연기 수업에 참여한 10명의 인물들을 통해 현대인의 불안함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등장인물은 권태기의 부부, 누드모델, 친구가 거의 없는 젊은 여자, 전과가 있는 남자 등 모두 스스로를 사회부적응자로 여기는 이들이다. 일상과 다른 역할을 연기하며 해방감을 느끼지만, 수업이 거듭될수록 현실과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연극 같은 삶, 삶 같은 연극. 그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혼란과 막막함이 서늘하다. 수많은 가면을 바꿔 쓰며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현대인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그래픽노블 '연기 수업'의 작화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작가 닉 드르나소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현실과 허구의 오묘한 경계를 표현하기 위해, 전작보다 다채로운 색을 썼다. 프시케의숲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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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만화 속 인물들의 심리를 깊이 있게 표현하고 싶어 피규어도 직접 만들었다. 물성을 가진 캐릭터에 더 가깝게 다가가려는 시도다. "처음 해보는 점토 작업이라 어설펐다"면서도 "입체적으로 인물을 보는 데 도움이 됐다"고 그는 전했다. 그중에서도 연기 수업 강사이자 일종의 종교적 지배자로 군림하는 '존 스미스'를 그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는 "스미스의 독백을 쓰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했다. 그가 수업에서 무엇을 얻으려 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조종하는지 등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고심 끝에 완성된 스미스의 교묘함은 각 인물들의 심리 변화를 설득력 있게 만든다.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우선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작화 특성상 얼핏 비슷해 보이는 인물들을 구분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또 현실과 연극의 모호한 경계를 넘나드는 미스터리한 서사를 따라가려면 집중력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만화의 장점이 이를 상쇄한다. 다채로운 색채를 통해 현실과 연극이 구분되기도 하고, 표정이 없는 듯한 인물 그림은 오싹함을 고조한다. 정확한 대본을 쓴 후 그림을 그리는 꼼꼼한 작업 방식으로 내용과 그림이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한국일보

연기 수업·닉 드르나소 지음·목정원 옮김·프시케의숲 발행·268쪽·2만5,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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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나소에게 만화는 취미이자 직업이다. 순탄치 못했던 학교 생활과 성폭력 피해 등으로 힘들었던 사춘기에 유일한 탈출구가 만화였다. 15년 넘게 만화를 그린 그는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지속된 일"이라면서 만화 작업이 일이 된 지금도 "여전히 즐겁다"고 했다. 부커상 후보 소식에 기쁨보다는 부끄러움을 표했던 그에게 불만족은 창작의 에너지원이다. "책이 출간될 때마다 실망스러운 부분을 발견하는데, 그런 것이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이번 '연기 수업' 한국어판 출간과 관련 "다른 언어로 작품이 나오는 것은 최근 가장 보람 있는 일 중 하나"라며 기대를 표했다. 마영신의 '엄마들', 홍연식의 '불편하고 행복하게'와 같은 한국 만화를 재밌게 읽었다는 그는 "한국 독자들이 내 책을 읽는 데 들인 돈과 시간이 가치가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덧붙였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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