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종로구 4.16연대 강당에서 산재·재난 유가족 및 피해자, 종교·인권·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모여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에 즈음한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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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로 시행 1년을 맞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싸고 재계·경영계와 노동계가 법의 명확성을 두고 맞붙었다. 재계·경영계는 법상 ‘경영책임자’의 범위와 ‘안전보건조치’의 명확성이 부족하다고 했다. 노동계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연계하면 법의 내용은 충분히 명확하다며, 실제 처벌이 이뤄지지도 않은 법의 실효성을 이야기하기엔 시기상조라고 했다.
고용노동부는 26일 오후 서울 중구 로얄호텔서울에서 ‘중대재해법 시행현황 및 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현재 중대재해법이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데 동의했다.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영계는 법률을 지킬 수 없다는 집단적 의사표시를 하고 있고, 노동계는 더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며 “수사의 진척 속도가 매우 느려 아직 처벌된 경영책임자가 한 명도 없다”고 했다.
중대재해법의 문제와 대안을 두고는 재계·경영계와 노동계의 의견이 양극으로 갈렸다. 경영계는 법이 모호하고 지나치게 처벌 위주라고 봤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연합회 안전보건본부장은 “처벌의 과도성에 비해 개념과 적용대상, 책임범위 등 많은 조항이 불명확하다”며 “처벌요건을 명확히 하고, 경영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은 적정수준의 경제벌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2월9일 중대재해기업 사업주를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 전국건설노동조합원들이 청와대 앞에 놓은 안전화에 향을 피우며 사망한 노동자를 추모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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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과 이행 조치’ 등을 의무화한 법 제4조의 모호성을 문제 삼았다. 서정헌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4조에서 규정하는 유해·위험요인에 대한 조치를 두고 전문가들조차 판단이 갈린다”며 “현장에서 이행과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노동계는 중대재해법이 규정하는 경영책임자의 의무가 분명하다고 했다.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중대재해법은 시행령을 통해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확보의무를 분명히 했다”며 “경영계가 모호하다고 주장하는 조문들은 법 제정 과정에서 관료중심 사고와 경영계 로비 때문에 법이 후퇴한 부작용”이라고 했다.
법의 실효성을 이유로 개정을 추진하는 게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왔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처벌법인 중대재해법은 재판 결과가 누적된 뒤에 판단해야지, 집행되지 않은 법의 실효성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엄정한 법 집행을 위한 보완책을 마련하고, 중대재해 감축을 위한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예방대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26일 강은미 정의당 의원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영책임자와 의무 규정은 모호한가-중대재해처벌법 적용 11개 공소장을 통해 본 경영책임자 의무규정’ 좌담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조해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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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국회에서 열린 전문가 좌담회에서도 ‘중대재해법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 등이 모호하지 않다’는 의견이 나왔다. 중대재해전문가네트워크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는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이 주최한 좌담회에서 현재까지 중대재해법으로 기소된 11건의 공소장을 전수 분석한 결과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관리체계는 사업장의 안전조치 의무 이행을 감독하는 체계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재계가 모호하다고 공격하는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이행 조치 의무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연계해보면 매우 분명한 의미로 살아난다”며 “절차 이행이 모호한 게 아니라 (기업들이 느끼기에)번거롭고 비용이 드는 일일 뿐”이라고 했다.
중대재해법 위반 사건 수사가 미진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정학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노동부의 기소의견송치도 너무 적고, 대기업 기소는 1건도 없다”며 “2024년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법이 확대되는 만큼 수사 능력과 인력을 늘릴 획기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민주노총과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본부 관계자들이 26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중대재해 처벌 무력화하는 윤석열 정권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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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는 학계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중대재해처벌법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올해 6월까지 법 개선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노동계는 노동부가 ‘노사가 추천 전문가로 TF를 구성하겠다’는 약속을 어겼다며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운동본부는 이날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29건의 중대재해법 사건에 11건만 기소한 검찰, 노동자 죽음에 반성은커녕 법 개악만 주장하는 경영계, 노골적인 친기업 정책으로 법 개정 TF를 발족한 윤석열 정부, 법 시행 1년간 달라지지 않는 현장과 끊이지 않는 노동자 죽음의 행진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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