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무장관 "난민 구조선, 위험한 항해 부추기는 역할" 입장 되풀이
지난해 11월 '지오 베런츠'호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난민들 |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이탈리아 정부가 지중해에서 난민을 구조하는 비정부기구(NGO) 구조선에 일부러 먼 항구를 배정하며 '몽니'를 부리는 듯한 모습이다.
25일(현지시간) 일간지 '라스탐파' 등에 따르면 이탈리아 내무부는 전날 국경없는의사회(MSF)가 운영하는 난민 구조선 '지오 베런츠'호의 입항 요청에 서북부 리구리아주의 라스페치아 항구를 배정했다.
난민 구조선의 구조 지점에서 가까운 서남부 시칠리아섬이나 본토 최남단의 칼라브리아가 아니라 극단적으로 먼 항구를 배정한 것이다.
MSF는 "우리가 있는 곳에서 라스페치아 항구까지 100시간을 항해해야 한다"고 설명하며 가까운 항구를 열어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라스페치아 항구는 프랑스령 코르시카섬보다 더 북쪽이다.
오는 28∼29일 라스페치아 항구에 도착할 예정인 MSF는 북쪽으로 향하던 도중 추가로 61명을 구조해 현재 '지오 베런츠'호에는 난민 130명이 탑승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가 자국에 입항하려는 난민 구조선을 먼 곳으로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프랑스 해상 구호단체 SOS 메디테라네가 지난달 17일 난민 구조선 '오션 바이킹'호로 지중해에서 난민 113명을 구조했을 때도 내무부는 구조 지점으로부터 1천700㎞ 떨어진 동북부 끝자락에 있는 라벤나항에 하선하라고 통보했다.
MSF는 앞서 지난 7일에는 일반적으로 난민을 하선하는 시칠리아섬에서 1천200㎞ 이상 떨어진 동부 안코나항을 배정받고 울며 겨자먹기로 긴 항해를 감수해야 했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난민 구조선이 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사이를 오가며 '난민 택시' 역할을 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쳐왔다.
취임 전부터 불법 이민자에 대해 강경 대응을 예고한 멜로니 총리는 지난해 11월 국제구호단체 소속 난민 구조선 4척의 입항을 거부해 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들과 갈등을 빚었다.
현실적으로 NGO의 지중해 구조 활동을 막을 방법이 없고, 입항 거부로 인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부담스러운 이탈리아 정부는 NGO의 구조 활동을 제약할 수 있는 우회로를 택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달 난민을 구조한 뒤에는 내무부에 곧바로 입항을 요청해 지정받은 항구로 지체 없이 가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두고 내무부가 NGO의 구조 활동을 옥죄기 위해 일부러 구조 지점에서 멀리 떨어진 항구를 배정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우려는 곧바로 현실이 됐다.
마테오 피안테도시 이탈리아 내무장관은 이날 난민 구조선의 존재 자체가 이주민들의 위험한 항해를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우연히 파손된 선박을 발견하고 구조하는 것과 체계적으로 구조 활동을 펼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NGO의 난민 구조선은 이주민들이 취약한 보트를 타고 목숨을 건 항해에 나서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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