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서로 다른 가치관, 이성 관계에도 고민”
젠더갈등, 출생률에도 영향 미쳐
지난해 3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학술지
젠더평등 높을수록 출생률 높아져
전문가들 “성별 돌봄과 경제활동 인식 개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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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 1. 서울 성북구에 사는 남모(26·여) 씨는 연애의 시작 자체가 과거보다 힘들어진 것 같다고 느낀다. 인터넷상에서 여성혐오 발언들을 많이 봐서다. 남씨는 여성폄하가 심한 남초커뮤니티(남자들이 주로 가는 커뮤니티)를 방문하는 일이 꺼려지고, 성차별적인 대화를 자주 하는 남자를 만날까 두려워졌다. 남씨는 “과거엔 건전한 토론이 가능했던 것 같은데 여성에게 유리하게 말하면 페미(페미니스트)로 몰아가고, 남성에게 유리하게 말하면 개념녀(가부장적이고 전통적 사회가 주문하는 여성상을 훌륭하게 소화하는 여성)로 몰아가니, 남녀가 섞인 대화의 공론장을 만들기 힘들어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2. 서울 강남구에 사는 이모(28) 씨도 이성을 만나는 단계부터 젠더갈등(성별 간 갈등)으로 인한 고민이 없지 않다고 했다. 이씨는 “정치 이념부터 일상까지 가치관이 다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생각이 다른 이성과 일생을 함께할 수 있을지 고민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고질병이 된 젠더갈등은 출생률 재고의 걸림돌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3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학술지 ‘젠더평등과 출산율(출생률)의 관계에 대한 실증’에 따르면 젠더평등 수준이 높고 일·가정 양립의 가능성이 큰 사회에서 출생률이 반등했다. 반면 젠더평등 수준이 낮은 국가에선 낮은 출생률이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술지의 공동 저자인 김교성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젠더갈등이 크다는 것은 젠더평등 수준이 낮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인터뷰에서 “젠더갈등적인 요소가 부각되면 젠더평등 측면에서 통합하려는 노력으로 연결이 된다”며 “젠더 역할에 대한 반발과 갈등이 커지는 것을 줄일 수 있다면 젠더평등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연구는 OECD 16개국을 대상으로 지난 1980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단위로 시기를 구분해 젠더평등과 출생률에 대한 상관관계를 분석해 진행됐다. 젠더평등은 공적이나 사적 영역에서 성별로 인한 불이익을 극복하려는 노력과 결과 등을 의미한다.
젠더갈등의 원인을 놓고는 다양한 분석이 나왔다. 사회 진출이 활발해진 여성이 조직화돼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의견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이 표를 위해 젠더갈등을 도구화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자극적인 소재를 찾는 미디어가 젠더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불만도 없지 않다.
젠더갈등은 번번이 해소해야 할 우선과제로 꼽히지만 뚜렷한 해결방안이 없다. 여전히 ‘82㎏ 김지영(여권신장에 기여한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을 조롱하는 말)’ ‘한남충(한국 남자 벌레라는 뜻으로 남성을 조롱하는 말)’ ‘퐁퐁남(용돈을 받아쓰면서 상대방의 거부로 성관계를 못하는 남편)’ 등 혐오 표현이 범람한다.
원인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고 해결의 기미도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젠더갈등이 출생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30대는 각자의 능력대로 스스로 부양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해 공평함에 대해 민감하다”며 “결국 경제적 상황과 형평성에 대한 남녀 간의 인식 차이가 같이 맞물려서 서로 타협점을 찾기 어려운 게 오늘날 젠더갈등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출생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는 정책을 넘어 남녀 간의 인식 차이를 해소할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봤다. 김 교수는 “남녀 공동 육아 문화가 자리 잡은 스웨덴처럼 ‘라테파파’가 정착할 수 있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며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여한다고 해서 출산율(출생률)이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경제활동과 돌봄노동이라는 부담에서 여성이 아직 두 가지를 짊어지는 현상이 남아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라테파파는 커피를 손에 들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를 의미하는 말이다.
yckim645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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