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헤럴드경제 언론사 이미지

천재시인 이상 詩 ‘건축무한육면각체’ 비밀…물리학으로 풀었다

헤럴드경제 구본혁
원문보기

천재시인 이상 詩 ‘건축무한육면각체’ 비밀…물리학으로 풀었다

서울맑음 / -3.9 °
- 광주과기원 이수정 교수팀, 반복되는 시공간의 표현이자 병적인 사회에 대한 통찰
건축무한육면각체 - 진단 0 : 1의 일본어 원문(왼쪽) 동일작의 한국어 번역문(오른쪽).[GIST 제공]

건축무한육면각체 - 진단 0 : 1의 일본어 원문(왼쪽) 동일작의 한국어 번역문(오른쪽).[GIST 제공]


[헤럴드경제=구본혁 기자] 일제 강점기시대 천재시인으로 꼽혔던 이상의 난해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물리학적 관점에서 해석한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기초교육학부 이수정 교수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머세드 물리학 박사과정생 오상현 씨가 이상의 시 ‘진단 0 : 1’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해석한 논문을 이상문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에 게재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들은 이상의 시 ‘진단 0 : 1’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시공간에 관한 시임을 규명하고 이를 해설했다.

연구팀은 지난 2021년에 이상의 대표적 난해시인 ‘삼차각설계도’와 ‘건축무한육면각체」를 4차원 기하학·물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하여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진단 0 : 1’은 가운데 점(•)이 대각선을 가로지르는 11행 11열의 숫자표와 ‘진단 0 : 1’이라는 표현 등이 등장하는 짧은 시이다. 이에 대한 기존의 해석으로는 행이 바뀔 때마다 1/10씩 곱해지는 등비수열이라거나, 대각선을 사이에 둔 대립에 관한 묘사라는 관점 등이 있었다.

연구팀은 기존의 해석에서 벗어나 물리학적 관점에서 새로운 해석을 제안했다. 연구팀은 숫자표의 숫자를 시공간 좌표로 보고, ‘진단 0 : 1’이란 마치 종이를 말아서 양 끝이 이어진 원통형으로 만들듯 시공간의 경계를 연결하고 반복시키는 진술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진단 0 : 1은 건축무한육면각체의 시공간적 배경을 설정하는 시이며, 여기에 나타난 시공간의 연결과 반복이라는 주제(주기경계조건 모티프)는 반복, 무한, 공포, 권태, 자아분열 등 이상 문학에 등장하는 다른 모티프와 긴밀한 관계를 갖는다고 밝혔다.

또한 연구팀은 이상의 다른 작품인 ‘삼차각설계도 – 선에관한각서6’을 토대로 숫자표에 등장하는 수열 ‘1234567890’이 무한히 반복되는 수열의 순환마디이자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시공간 좌표를 암시하는 것이라 해석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발상을 ‘주기경계조건 모티프’로 명명했다.


‘주기경계조건 모티프’를 토대로 ‘진단 0 : 1’의 숫자표를 이어 붙여보면 숫자표의 경계 부분에서 숫자 배열의 불연속성을 볼 수 있다. 이는 시공간이 부적절한 주기성을 가지는 것으로, 이어붙인 숫자표의 상반부를 왼쪽과 아래쪽으로 한 칸씩 이동시켜 포개어 붙임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0 : 1’은 이러한 ‘이동시켜 포개어 붙이기’를 의미한다. 숫자표의 상반부를 이동시켜 포개어 붙일 때 그 가운데 부분에 주목하면, 0과 1, 그리고 가운데 점(•)이 다음과 같이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수정(왼쪽) 교수와 오상현씨.[GIST 제공]

이수정(왼쪽) 교수와 오상현씨.[GIST 제공]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진단 0 : 1에 대한 새롭고 혁신적인 해석을 제안했을 뿐만 아니라, 주기성 시공간을 문학의 소재이자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상의 문학적 독창성과 전위성에 대한 이해를 끌어올렸다”며 “이는 차원주의(Dimensionism) 등 당대 유럽의 예술운동 사조보다 혁신적인 문학적 시도”라고 말했다.


이번 논문은 ‘이상 시의 주기경계조건’ 논문 시리즈의 첫 번째 출판물로, 시리즈의 후속 논문에서는 ‘삼차각설계도’, ‘건축무한육면각체’, ‘오감도’ 등에 드러난 주기경계조건 모티프와 그 해석에 관해 다룰 계획이다.

nbgkoo@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