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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날씨가 갑자기 초봄처럼 포근해졌습니다. 겨울의 한복판인 1월인데 이렇게 따뜻한 게 얼마 만인지… 이것도 다 기후변화의 영향이겠죠? 유럽도 이상 기후로 스키장에 눈이 없을 지경이라고 하더라고요. 계절이 바뀐 건 아니지만 날씨가 풀리고 그러니까 왜인지 새 옷을 장만하고 싶다는 기운이 마구마구 솟는 듯합니다.
표지에서 알 수 있겠지만 이번 주 마부뉴스는 <나비효과> 특집으로 준비해 봤어요. 혹시 <나비효과> 특집을 처음 접하는 독자분이 계실 수 있으니 간단히 소개해드리고 가겠습니다. <나비효과> 특집에서는 내가 고른 이 아이템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작은 소비의 날갯짓이 저 먼 곳에 어떤 태풍을 일으킬 수 있는지 데이터로 정리해서 독자에게 친절하게 풀어보려고 합니다. 어느새 5번째더라고요. 오늘은 우리가 사서 입는 옷들의 날갯짓이 우리 지구엔 어떤 태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패션의 나비효과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마부뉴스가 독자 여러분에게 던지는 질문은 바로 이겁니다.
독자 여러분은 ZARA, H&M에서 옷 얼마나 사나요?
빠르고, 다양하고, 값싸게 살 수 있어요
독자 여러분은 새 옷을 사려고 하면 어디를 이용하나요? 보통 무신사나 탑텐, ZARA와 같은 SPA 브랜드를 이용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SPA 브랜드를 지칭하는 또 다른 말, 패스트패션입니다. 아마 독자 여러분들도 패스트패션이라는 용어, 들어본 적 있을 겁니다. 주문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처럼, 패스트패션은 최신 유행하는 디자인과 아이템을 바로바로 반영해서 생산, 유통까지 이뤄지는 패션 산업을 뜻해요. 다양한 디자인의 옷을 만들어 빠르게 회전시키는 시스템이다 보니 소비자 입장에선 최신 유행의 옷을 다양하고 값싸게 구매할 수 있어서 이득이죠.
H&M, ZARA 등 패스트패션 업체들은 길게는 3주, 짧게는 2주 안에 신상 제품을 찍어내고 있어요. 그런데 패스트패션을 넘어 '울트라' 패스트패션을 지향하는 브랜드도 속속 나오고 있더라고요. 혹시 독자 여러분은 SHEIN(쉬인)이라는 브랜드 들어본 적 있나요? SHEIN은 기존 패스트패션의 2주 사이클을 5일(!)로 줄였어요. 압도적인 물량 공세에 힘입어 SHEIN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동안 매출이 폭증했습니다. 그 덕에 2021년 6월엔 ZARA와 H&M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패스트패션 업체로 올라섰죠. 2021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패션 앱이 바로 SHEIN이었을 정도입니다. 아마존을 제치고요.
그렇다면 SHEIN이 새로 만드는 옷의 양은 얼마나 될까요? 마부뉴스가 직접 정리해 봤습니다. 기간은 1월 3일부터 1월 9일까지 1주일간으로 했어요. 국내 SHEIN 홈페이지에 신상품이 얼마나 올라오는지 분석해 보니, 결과는? 놀라지 마세요. 지난 1주일간 SHEIN이 쏟아낸 신상품은 무려 3만 8,025개였습니다. 많게는 하루에 7,000개가 넘었고 적어도 3,500개 이상의 신상을 찍어냈더라고요. 이 기세로 52주를 채우면 SHEIN이 1년 동안 새롭게 만들어내는 제품은 197만 개가 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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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엄청난 양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합성섬유 덕분입니다. 물론 SHEIN은 중국 광저우 전역을 SHEIN 제작 공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물량을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오죽하면 중국 패션 생산 시설의 30%가 SHEIN의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추정 자료가 나오겠어요. 여튼, 합성섬유는 석유나 석탄에서 추출한 성분을 활용해서 만든 섬유를 뜻합니다.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아크릴이 대표적이죠. 처음 합성섬유를 만들었을 땐, 신세계가 열린 듯했어요. 면을 제조할 때보다 물이 적게 들고, 목화를 재배하면서 사용한 독성 살충제를 이제는 더 이상 쓸 필요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폴리에스테르 섬유는 제조 과정에서 화석 연료를 훨씬 많이 쓴다는 거였어요. 2015년 MIT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섬유용 폴리에스테르 생산에 얼마나 많은 탄소가 배출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5년에 생산된 폴리에스테르 중 섬유에 사용된 건 약 80% 정도입니다. 섬유용 폴리에스테르 제작 과정에서 배출된 온실가스는 무려 7,060억kg! 이 정도 양은 185개의 석탄 발전소가 연간 배출하는 탄소 배출량과 맞먹고, 1억 4,900만 개의 자가용의 연간 배출 탄소량과 같은 수준이죠.
SHEIN과 같은 울트라 패스트패션 기업에 힘입어 현재는 8년 전보다 훨씬 더 많은 합성섬유 옷들이 나오고 있으니… 탄소 배출량도 그보다 더 커졌겠죠. UN에 따르면 전 세계 의류 산업이 배출하는 탄소량은 전 세계 배출량의 10% 정도입니다. 현재와 같은 흐름으로 패션 산업이 계속 굴러간다면 2050년엔 26%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경고가 담긴 보고서들도 나오고 있죠.
세탁기에서 빠져나오는 미세섬유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옷들이 많아지면서 생기는 또 다른 나비효과는 세탁 과정에서 등장합니다. 바로 합성섬유 의류를 세탁하면 미세플라스틱이 나온다는 거죠. 미세플라스틱은 플라스틱 제품이 분해되면서 생기는 아주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말합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과 유럽 화학물질청에서는 크기가 5mm보다 작으면 미세플라스틱으로 보고 있는데 기준에 따라 더 작은 녀석들만 미세 플라스틱으로 보기도 해요. 합성섬유는 곧 플라스틱이거든요. 그래서 합성섬유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섬유들도 당연히 미세플라스틱이라 할 수 있죠. 특히 합성섬유에서 나온 미세플라스틱을 미세섬유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합성섬유에서 미세섬유는 얼마나 나올까요? 마부뉴스가 영국 플리머스 대학의 연구팀이 2016년에 진행한 연구 데이터를 가져와 봤습니다. 연구팀은 세탁기를 한 번 돌릴 때마다 얼마나 많은 미세섬유가 나오는지를 살펴봤어요. 기준은 세탁량 6kg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4인 가족 1회 평균 세탁량이 7kg 정도고 1인 가구의 일주일 치 세탁량이 평균 5kg 정도라고 하니까 6kg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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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kg의 아크릴 소재의 옷을 세탁했을 때 나오는 미세섬유의 양은 무려 72만 8,789개입니다. 폴리에스테르와 면 혼방 직물보다 5.3배, 폴리에스테르보다는 1.5배 많은 수치죠. 아크릴은 울과 같은 모직물을 대체하는 합성섬유인데 양모와 혼방해서 사용되곤 합니다. 따뜻하고 폭신한 니트의 라벨을 살펴보면 아크릴이라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물의 온도, 세제 종류 등에 따라 세탁과정에서 나오는 미세섬유 개수는 영향을 받을 수 있어요. 위에서 나온 연구팀의 수치는 6kg의 세탁물을 기준으로 평균 예측 수량을 계산한 거라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전 세계 규모로 본다면 미세섬유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요? 1950년부터 2016년까지 전 세계의 합성섬유에서 나온 미세섬유를 누적해 보면 그 규모가 무려 560만t에 달합니다. 1950년엔 122t 정도밖에 되질 않았지만 2016년엔 그 규모가 360kt로 증가했죠. 당연히 합성섬유를 많이 사용할수록 미세섬유도 많이 나올 테니까요. 2016년까지 누적된 미세섬유 양의 절반 가까이가 최근 10년 동안 만들어진 미세섬유였습니다.
묻으면 안 썩고, 태우면 유독가스
유행에 따라 쉽게 산 옷들은 몇 번 입고 나면 다시 장롱에 고이 모셔두기 십상입니다. 패스트패션이라는 게 워낙 유행에 민감하고 회전율이 빠르잖아요. 유행에 따라 휙휙 바뀌는 만큼 몇 번 입지 않고 버려지는 경우가 많아요. 게다가 상대적으로 값싼 옷이라는 인식 때문에 옷을 버리는 것에 대한 부담도 적죠. 그 영향으로 전 세계적으로 배출되는 의류 폐기물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죠. 2007년부터 2020년까지 우리나라에서 나온 폐의류 현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과거에 비해 그 규모가 늘어나고 있죠? 2007년에만 하더라도 하루에 122t 정도의 헌 옷이 나왔습니다. 물론 100t이 넘는 이 정도 양도 상당하지만 그 이후 계속해서 폐의류 양은 늘어났어요. 2014년엔 처음으로 일일 배출량이 200t을 넘겼고, 2020년엔 역대 최고치인 하루 평균 225.8t을 기록했습니다. 연 단위로 보면 2020년 한 해에만 8만 2,423t의 헌 옷이 나온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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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버려진 의류 폐기물 중에 중고로 되팔리는 옷은 10% 언저리. 일부 매립되거나 소각되는 옷을 제외한 나머지 옷들은 해외 개발도상국으로 수출하고 있어요. 201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헌 옷 수출국 5위를 기록하고 있죠.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는 선진국에서는 버려졌지만 아직 더 쓸 수 있는 옷을 값싸게 수입해 자국민들에게 나눠줄 수 있으니 이득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수입해 온 헌 옷 중 팔리지 못한 옷은 그냥 버려지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상 개발도상국들이 선진국들의 헌 옷 매립지 역할을 하고 있는 거죠.
게다가 합성섬유는 잘 썩지도 않아요. 폴리에스테르 섬유가 완전히 분해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무려 200년! 그리고 소각을 시키면 플라스틱을 태우면서 생기는 유독가스 때문에 추가 처리가 필요하죠. 그렇다면 재활용을 하면 좋을 텐데, 재활용을 하려고 하더라도 합성섬유에 천연섬유가 혼합되어 있다면 소재들을 일일이 분류해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요. 실로 만들어서 재활용을 하려고 해도 섬유 속에 염료를 또 하나하나 제거해야 하고요. 그러다 보니 보통 헌 옷을 활용해 가방이나 에코백 같은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정도의 재활용만 이루어질 뿐 합성섬유 자원을 말 그대로 '재활용' 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우리가 입고 버린 헌 옷뿐 아니라, 패션 업체들이 팔고 남은 재고들도 문제입니다. 패스트패션으로 1달에도 몇 번씩 새 옷들을 찍어내면 재고량은 쌓일 수밖에 없잖아요. 실제로 국내 패션산업의 연말 재고액 동향을 살펴보면 2007년엔 4조 원 규모였던 게 2019년엔 7조 5,335억 원으로 늘었어요. 이렇게 남은 재고들은 대부분 소각처리 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추가로 환경오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패션 기업들은 바뀌고 있나요?
지속 가능한 패션 산업을 위한 목소리는 이곳저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위에서 주욱 살펴본 것처럼 패션 사업은 옷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세탁하고 버려지는 모든 과정에서 환경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각성의 목소리가 큰 상황이죠. 그렇다면 기업들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여전히 많은 양의 옷들이 과다 생산되고 있는데 말이죠.
독자 여러분, 잠깐 스크롤을 올려서 우리나라의 의류 쓰레기 그래프를 기억해 두세요. "2020년에 폐의류가 하루에만 220t 넘게 나온다." 그런데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던 데이터가 있습니다. 바로 폐섬유 쓰레기죠. 폐섬유는 옷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공장에서 버려지는 녀석들인데 한 번 아래 그래프를 봐 보세요. 엄청나죠? 폐의류와는 비교가 되질 않습니다. 하루에 나오는 폐섬유는 1,089.7t으로 폐의류량의 5배에 가까워요. 1년 단위로 보면 폐섬유만으로만 39만t이 넘는 쓰레기가 나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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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해외 다국적 기업의 악명은 더 높겠죠.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패션 기업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중 하나가 UN 기후협약 중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패션산업 헌장'이라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이 헌장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요. 나이키, 케링, Levi's, ZARA, H&M 등을 포함해 모두 110개 기업들이 지속 가능한 패션 산업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헌장에 서명한 기업들은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중간 목표로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30% 감축하겠다고는 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먼 상황이죠. 전 세계 판매량이 높은 10개 회사를 대상으로 STAND.earth라는 환경단체가 검증을 해봤는데 유일하게 Levi's만이 배출량 감소 흐름이 나타났을 정도니까요
기업들이 알아서 움직이지 않으니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겠죠? EU와 미국에선 패션 기업들, 특히 패스트패션 기업들을 향해 몽둥이를 들고 나섰어요. EU는 작년 3월 패스트패션을 규제하는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EU 공동체의 법령을 발의하는 집행위원회에선 2030년까지 재활용 섬유를 일정 비율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고, 팔리지 않는 재고품의 폐기를 금지하는 규정을 제안했죠. 미세플라스틱을 배출하는 섬유는 사용을 제한하는 등 강력한 규제도 포함되었어요. 프랑스에선 2025년부터 신규 출시되는 모든 세탁기에 미세섬유 필터망 설치가 의무화되기도 했고요.
미국도 비슷한 흐름입니다. 미국 뉴욕주에선 연 매출 1억 달러가 넘는 패션 기업들을 대상으로 모든 생산 과정에서 발생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시해야 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어요. 단순히 생산 단계에서 이뤄지는 직간접적인 탄소 배출을 규제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발송을 포함한 전 과정에 걸쳐 패션 기업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겠다는 거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는 우리들이 입을 옷보다 더 많은 양의 옷을 사고 있고, 기업들은 팔릴 옷보다 더 많은 양의 옷을 만들고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현실입니다. 패션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심각한 만큼 변화는 필요합니다. 지속 가능한 패션 시장을 만들기 위해선 가장 먼저 변해야 하는 건 기업일 겁니다. 기업이 그렇게 움직일 수 있도록 제도의 변화를 만들어주는 정부의 변화도 뒤따라야겠고요.
우리나라의 변화 속도는 환경 선진국에 비해 느린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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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민 기자(hyemin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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