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990원 공식’, 이제는 식상
7일 서울 시내의 한 노브랜드 매장. 대부분 상품의 가격표 끝자리가 ‘80원’이나 ‘800원’으로 끝난다. 신주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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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신주희 기자] ‘화장지 3개입 5280원, 냉동 닭가슴살 1㎏ 6980원, 체다치즈볼 한 통 4380원, 게이밍 마우스 1만2800원….’
노브랜드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의 가격표다. 자세히 살펴보면 ‘숫자 8의 비밀’이 숨어있다. 소수 품목을 제외하고 대부분 상품이 ‘80원’ 또는 ‘800원’ 단위로 끝난다는 사실이다. 노브랜드는 2014년 처음 문을 열 때부터 이 같은 ‘가격표 공식’을 유지해왔지만 이를 눈치 챈 소비자들은 많지 않다.
그동안 대형마트는 ‘990원’, ‘9900원’ 할인 가격 정책을 펼쳐왔다. 앞선 가격이 1000원, 1만원보다 훨씬 소비자들에게 저렴하게 다가오는 효과로 ‘단수가격 전략’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영국의 행동경제학자인 리 칼드웰이 쓴 ‘9900원의 심리학’에 따르면, 단수가격 전략은 심리학에서 ‘패턴 매칭의 규칙’을 노린 효과다. 이 규칙에 따르면 4900원 가격의 샌드위치는 5000원에 가깝지만 4000원대로 분류되고, 5100원짜리는 5000원대로 분류되어 소비자들은 전자를 훨씬 싸다고 인식한다.
실험에서도 2000원과 2500원인 두 상품을 비교했을 때, 소비자들은 가격 차이가 거의 없다고 인식했다. 반면 가격을 10원씩만 인하해 각각 1990원과 2490원으로 책정하면, 그 차이는 훨씬 큰 것으로 인지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대형마트가 똑같은 가격 정책을 유지하면서 ‘9의 상술’은 더 이상 소비자들에게 먹히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가격표 끝자리의 990원이 식상하다고 여기면서 자연스레 가격을 올림 해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에 노브랜드는 상품의 끝자리 가격을 8로 통일함으로써 그동안의 가격 정책과는 다른 전략을 취했다.
노브랜드는 오픈 초기부터 “기존 대형마트보다 더 싸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집중해왔다. 그중 하나로 쓰인 전략이 바로 80원·800원 단위 가격 책정이라는 설명이다.
노브랜드 관계자는 “상품 가격이 90원·900원으로 끝나면 이젠 고객들이 쉽게 올림해 100원, 1000원으로 인지하지만 80원 단위는 그렇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실제 6일 서울 강서구의 한 노브랜드 매장서 만난 이모(24) 씨는 “노브랜드에 (물건을) 사러 자주 오지만 가격표 끝자리가 모두 80원·800원인 줄을 처음 알았다”며 “이번에 산 과자도 3780원인데 3800원 대신 3700원으로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미 소비자들은 90원으로 끝나는 단수가격 전략에 익숙해져 있다”며 “사실상 80원·800원으로 끝나는 가격 정책도 단수가격 효과를 기반으로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더 싸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joo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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