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해리 왕자 자서전 ‘스페어(spare)’ 내용이 출간 전 공개되면서 영국에서 후폭풍이 거세다.
자서전에는 자신의 첫 성관계나 마약 흡입 경험 같은 사생활뿐만 아니라 어머니인 고 다이애나빈과 아버지 찰스 국왕 사이 일화까지 자세히 담겼다. 책 제목으로 쓰인 ‘스페어’(덤)는 영국 왕실 차남을 칭하는 말이다. 자서전은 10일(현지 시간) 정식 출간 예정이었으나 6일 스페인 일부 서점이 몰래 판매를 시작하면서 영국을 비롯한 유럽 언론이 앞 다퉈 내용을 소개했다.
400쪽이 넘는 자서전에서는 2008년 아파치 헬기 조종사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한 해리 왕자가 “25명을 사살했다”고 언급한 대목이 가장 큰 논란거리다. 해리 왕자는 “자랑스러운 기록은 아니지만 부끄럽지도 않다”며 “그 25명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체스 판에서 말을 없애는 것과 같았다”고 밝혔다. 또 “나쁜 사람들이 착한 사람들을 죽이기 전에 먼저 제거된 것”이라고도 표현했다.
이에 대해 영국 국방부 대변인은 “안보와 관련된 작전 세부 사항은 언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도 관련 질문에 “우리 군에 매우 감사한다”고만 말했다. 아프간 파병 영국군 부대장을 지낸 리처드 캠프 전 대령은 BBC방송 인터뷰에서 “해리 왕자가 잘못 판단한 것 같다”며 “사실이 아닌 발언은 영국 군과 정부에 해를 끼치려는 이들에게 이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 정권은 해리 왕자가 전범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반발했다. 탈레반 경찰 대변인 칼리드자드란은 “이런 범죄는 언젠가 국제 법정에 회부될 것이다. 해리 왕자처럼 자랑스럽게 자백한 범죄자는 국제사회가 보는 가운데 법정에 서야 한다”고 밝혔다.
해리 왕자 개인사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해리 왕자는 자서전에서 17세 때 코카인을 처음 흡입했고 이후 몇 번 더 했다며 “확실히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같은 나이에 나이 많은 여성과 들판에서 첫 성관계를 했다고도 밝혔다. 또 어머니와 어떻게든 만나고 싶어서 영매(靈媒)를 찾아간 적도 있으며, 형 윌리엄 왕세자와 함께 찰스 국왕에게 커밀라 왕비와 결혼하지 말라고 간청했다고도 했다.
영국 왕실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1994년 찰스 국왕 자서전을 쓴 왕실 측근 조너선 덤블비는 7일 BBC에 “(해리 왕자 자서전은) ‘B급 유명인’이나 할 만한 폭로”라며 “최근 국왕과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극히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이로=강성휘 특파원yol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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