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월 민주 항쟁 등을 통해 민주주의가 발전해 온 과정을 파악한다”(2015 개정 교육과정)
두 문장의 차이가 정치권에 뜨거운 공방을 불러왔다. 이번 개정 교육과정에서 ‘5·18 민주화 운동’ 부분이 제외됐다며 더불어민주당과 광주지역 국회의원들이 “심각한 민주주의 훼손”이라고 반발했다. 이에 교육부·대통령실은 “현 정부가 일부러 제외한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교육 과정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부는 윤석열 정부를 향한 정치적 공세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가 2021년 12월 구성한 역사학과 교육과정 정책 연구진이 자율적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의 핵심 관계자도 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재진에 “(문재인 정부 때 구성된) 연구진이 교육부에 제출한 최초 시안에서부터 5·18 민주화 운동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22 사회과 교육과정 내용 중 역사 교과 부분 일부 캡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2015 사회과 교육과정 일부개정안(2018년) 중 역사 교과 부분 일부 캡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교육부·정부 “의도적 삭제 아니다”
논란의 중심에는 ‘교육과정 대강화(大綱化)’가 있다. 대강화란 국가 교육과정의 줄거리와 방향성을 ‘간략하게’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 교육과정이 너무 상세하게 제시돼 있으면 시·도나 학교의 특성을 반영하는 데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국가에서는 보편적인 기준만 제시하고 구체적인 세부사항은 자율성에 맡기자는 의미가 있다.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여준다는 측면도 있다.
교육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2022 교육과정은 2015 교육과정보다 좀 더 대강화했다는 것이다. 오승걸 교육부 책임교육정책실장은 4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비롯해 제주 4·3사건, 7·4 남북공동성명 등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 서술은 최소화했다”고 했다. 장홍재 책임교육정책관도 “시작점(4·19 혁명)과 끝나는 점(6월 민주 항쟁)을 표시한 것일 뿐, 5·18 민주화운동을 포함한 그 사이의 민주화 과정을 교육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지난 12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2022 개정 초중등학교 및 특수학교 교육과정 확정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교과서에서 빠졌다면 문제, 교육과정에선 제외될 수도”
전국역사모임 소속의 한 역사 교사는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대한 혼란이 있어 이런 논란이 빚어진 것 같다”며 “만약 오는 1월 말 마련되는 역사 교과서 편찬근거에 ‘5·18 민주화 운동’ 용어 및 표현이 삭제됐다면 문제겠지만, 교육과정은 큰 틀만 제시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가르치게 될 세부적인 내용은 빠질 수 있다”고 했다.
국가교육위원회 논의에서도 5·18 민주화 운동 용어 관련한 특별한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논의에 참여했던 한 국교위원은 “교육부에서 보내온, 연구진에서 보내온 쟁점 사항 중에도 5·18 민주화 용어 포함과 관련한 의견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
이재명 “노골적으로 5·18 민주화 운동 지우기 나선 것”
5·18 기념재단과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가 4일 오후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민주화운동이 제외된 개정 교육과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야당을 중심으로 ‘의도적인 삭제’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자유민주주의’ 표현은 정책 연구진 반대에도 불구하고 포함하면서 ‘제주 4·3사건’ 이나 ‘5·18 민주화 운동’을 제외한 것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지적이다. 6·25 전쟁 ‘남침’ 표현 포함도 대강화 기조에 어긋난다며 용어의 포함과 삭제가 ‘정권 입맛대로’ 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가 노골적으로 5·18 민주화 운동 지우기에 나섰다”며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광주·전남 더불어민주당·정의당·무소속 국회의원 20명은 이날 오전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엔 5·18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겠다고 밝혔지만, 지난해 열린 제42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했을 때는 진상규명에 대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며 “윤석열 정부의 5·18에 대한 태도는 철저한 외면과 폄하, 왜곡으로 가득하다”고 주장했다.
교육부 측은 “연구진들이 시안을 제출했고 온라인 국민참여소통채널, 공청회, 2차 대국민 소통채널을 통해 의견 수렴을 거쳤다”며 “들어온 의견 전체를 전달, 연구진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했다”고 설명했다. 6·25 전쟁 남침 등의 표현을 넣은 것이 교육부의 대강화 기조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대강화라는 본질, 방향을 해지지 않으며 국민들의 우려나 역사적 사실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구성할 내용 등을 전적으로 연구진 자율로 반영했다”고 강조했다.
━
이주호 “5·18 등 역사적 사건, 교과서에 기술될 수 있도록 할 것”
교육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공방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정선 광주교육감은 이날 “개정 교육과정 성취기준 해설에 5·18 민주화 운동을 명시해줄 것을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에 강력하게 요청한다”고 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김영호 민주당 의원은 “조만간 교육위 전체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따져볼 것”이라고 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이날 오후 입장문을 통해 “5·18 민주화 운동 정신을 학생들이 배울 수 있도록 ‘교과용도서 편찬 준거’에 ‘5․18 민주화 운동’과 함께 주요 역사적 사건을 반영하여 교과서에 기술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