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정치인' 4대4 여야 동수…공직자는 여권 인사가 대다수
'친문' 김경수 복권 없는 잔형 면제엔 '정무적 고려' 관측도
野 "이명박 부패세력·박근혜 적폐세력 풀어준 묻지마 대방출" 비판
국무회의 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 |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을 앞둔 27일 취임 후 두 번째 특별사면을 통해 국민 통합 메시지를 발신했다. 여야 정치인을 두루 사면하면서다.
대통령실과 법무부는 윤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MB)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동시에 사면하는 등 여야 형평성을 고려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과거 관행적인 불법 행위에 관여한 공직자들을 대거 사면하는 대신, 지난 8·15 특사 때와 달리 경제인 사면은 배제했다고 설명했다.
◇ 尹 "국력 하나로 모으는 계기 되길"
이번 신년 특사 전체를 아우르는 키워드는 '국민 통합'이라 할 수 있다.
취임 이래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헌법정신을 거듭 강조하며 법과 원칙에 따른 국정 운영 기조를 이어온 윤 대통령이 모처럼 통합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사면 심의를 위한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이번 사면을 통해 국력을 하나로 모아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각계 의견을 수렴해 신중하게 사면 대상과 범위를 결정했다"라고도 했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국민 통합과 화합을 위한 신년사면"이라며 "마지막까지도 여론을 살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순수 정치인'의 경우 여야 균형을 고려했다는 게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전 대통령을 뺀 사면 대상 정치인 8명 중 김성태 이완영 이병석 최구식 전 의원은 현 여권, 전병헌 신계륜 전 의원과 강운태 전 광주시장, 홍이식 전 화순군수는 현 야권 출신이다. 4대4로 '기계적 균형'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면 대상 주요 공직자 66명 중 법무부가 보도자료에서 실명을 밝힌 35명을 보면, 김 전 지사를 제외한 34명이 모두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요직을 지낸 인사들이다.
대통령실은 야권 일각에서 제기하는 여야 불균형 지적에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은 여권 정치인이라기보다는 공직자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통령 고유 권한인 사면권 행사의 초점을 통합에 맞춘 것은 최근 뚜렷해진 국정 지지도 상승에 동력을 보태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상 사면 대상자를 추리고 사후적으로 컨셉트를 끼워 맞추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에는 애초 컨셉트를 통합으로 설정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편, 윤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 시절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적폐청산' 수사 지휘를 통해 재판에 넘긴 이들도 대거 사면 명단에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통합과 균형을 중시하되 기준에 따랐다"며 "사면 기준을 충족할 경우 윤 대통령 본인이 수사했는지 안 했는지는 따로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이 전 대통령 등에 대한 사면을 겨냥해 "부패 세력과 적폐 세력의 부활", "이명박 부패 세력과 박근혜 적폐 세력을 풀어준 묻지마 대방출 사면"이라고 반발했다.
◇ 이재명 '사법 리스크' 속 김경수 사면 주목
윤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일찌감치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전직 대통령이 갖는 상징성을 고려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안팎에서도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고 한다.
신년 특사를 내년 1월 1일자가 아닌 12월 28일자로 결정한 것도 이 전 대통령의 형집행정지 만료일(28일)을 고려한 배려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인 이 전 대통령은 특사가 확실시 되는 분위기 속에 형집행정지 연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1∼14일 윤 대통령 특사로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했을 때 윤 대통령 친서와 함께 이 전 대통령 서신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의 두터운 중동 인맥을 활용하기 위한 이례적인 조치로, 대통령실은 이번 사면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신분이었던 작년 11월 수감 중인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댁에 돌아가실 때가 됐다고 본다"며 사면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8·15 특사 때 이 전 대통령을 사면할 계획이었으나, "다음 기회로 미루자"는 참모들 건의에 막판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윤 대통령은 김 전 지사를 사면하면서 내년 5월까지로 돼 있는 잔여 형만 면제하고 복권은 하지 않았다. 당장 정계 복귀의 길을 열어주지 않은 것이다.
업무방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대선 기간 불법 여론 조작을 시도한 사실상의 선거사범인 점, 재판 지연으로 도지사 임기를 일부 채우며 피선거권 박탈 등 별다른 정치적 불이익을 받지 않은 점,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한다.
김 전 지사 본인이 사면과 가석방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낸 데 따른 국민 여론도 중요한 고려 사항 중 하나였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출석을 요구한 상황에서 대표적 친문(친문재인) 인사인 김 전 지사가 석방 뒤 장외에서나마 야권 구심점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정무적 고려도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 '적폐' 사범 구제 배경…"이제 일단락 지을 때"
윤 대통령은 소위 '적폐' 사범들에 대해 과거 관행에 따라 불법에 가담한 공직자를 구제하는 차원에서 접근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정부 초중반 재판에 넘겨진 이들 대부분 형기가 만료해 이미 석방된 상태라는 점을 고려, 사면·복권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이나 국정농단 사건 등 적폐청산 수사 대상이었던 사건을 이제는 일단락 지을 때가 됐다는 인식"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대구 달성의 박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 과거 검사와 피의자로 만난 악연에 대해 "늘 죄송했다"고 고개를 숙이며 보수 결집을 시도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배경 설명이다.
국정농단 사건 핵심 피의자였던 박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해 우병우 전 민정수석, 조윤선 전 정무수석 등 상징적 인물들을 일제히 사면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 중 국정원 댓글 사건의 경우 윤 대통령 본인이 검사 시절 윗선의 수사 외압을 폭로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계기가 된 사건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검사로서 직(職)을 걸고 처벌하려 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 간부들도 함께 사면한 것이 눈에 띈다.
이와 관련, 한 관계자는 "김 전 지사가 연루된 드루킹 댓글 수가 국정원 댓글 수의 200배에 달한다"며, 김 전 지사 사면과의 형평성도 고려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내란 선동 혐의의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대표 등에 대한 사면은 애초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미납 추징금 사면도 진지하게 검토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극심한 경기 한파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민간 경제 활성화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경제인 사면 역시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정치적인 통합의 제스처에 주안점을 두면서 8·15 특사 때 주로 포함한 경제인이나 민생사범 등은 제외됐다"고 말했다.
hanj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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