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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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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컷 만화로 사회 풍자한 ‘나대로 선생’ 이홍우 화백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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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고 이홍우 화백. 경향신문 자료사진.


전남일보 ‘미나리 여사’, 동아일보 ‘나대로 선생’ 등 네 컷 만화를 그린 시사만화가 이홍우 화백이 지난 23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73세.

고인은 1949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개성중학교 1학년 때 부산 국제신보 독자만화에 당선됐다. 시사만화가의 꿈을 안고 상경해 서라벌고등학교에서 여러 신문과 학생 잡지에 만화를 실었다. 서라벌예술대 2학년이던 1967년부터 대전 중도일보에 ‘두루미’를 그렸다. 이 신문이 폐간된 1973년에 전남일보로 옮겨 ‘미나리 여사’를 그렸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고인은 글자 하나 없는 ‘미나리 여사’를 전남일보에 실었다. 미나리 여사가 소주를 앞에 놓고 울면서 피운 담배 연기가 만화를 가득 채웠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아내 옆에 서 있다.

고인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당시 최승호 전남일보 편집국장으로부터 “지금 광주에서는 계엄군의 만행을 기록한 모든 기사가 휴지통에 들어가고 있다. ‘미나리 여사’를 통해 은유적으로 이 상황을 전달할 방법이 없겠느냐”는 전화를 받고 이 만화를 그렸다고 말했다.

이후 고인은 스포츠동아 ‘오리발’을 거쳐 1980년 11월부터 동아일보에 ‘나대로 선생’을 연재했다. 그는 신군부의 집요한 언론통제 속에서도 해마다 5월이 오면 무등산과 광주를 소재로 만화를 그렸다. 2007년 8568회로 ‘나대로 선생’의 27년 연재를 마칠 때까지 고인은 권력을 향해 날선 비판을 했다. 1986년에는 당시 보도지침상 보도가 금지됐던 국회 국방위원회 회식 폭력 사건을 두고 “맞고 나니 눈앞에 별이 번쩍번쩍하더군”이라고 묘사했다가 보안사에 끌려가기도 했다.

고인은 검열로 인해 하루에 7~8번씩 만화를 다시 그리는 일이 있더라도 연재를 한번도 빼먹지 않았고, 이 점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2007년 제18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한 적이 있다. 상명대 문화예술대학원 만화영상학과 교수 및 석좌교수, 한국시사만화가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제1회 고바우 만화상, 동아일보 동아대상, 대한언론인상 공로상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경란씨, 자녀 상민·지현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302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26일 오전 8시10분.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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