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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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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내서 일자리 구했지만, 주검으로 돌아왔다”···자연사로 기록돼 보상도 못받고, 유가족에겐 빚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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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월드컵 이주 노동자들의 사연

경향신문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건설 노동자가 수도 도하의 거리를 걷고 있다. 도하|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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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불에 탔고, 나는 속이 기름에 불타는 기분이에요”

카타르에서 사망한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의 부인 비파나는 남편의 죽음과 이로 인한 자신의 분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의 남편은 카타르의 극심한 고온 환경에서 오랜 기간 건설 작업을 하다가 사망했다. 진단서에 적힌 사망 원인은 “자연적인 원인으로 인한 심폐 기능 부전”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 34세였다. 그의 죽음은 국제앰네스티가 발표한 ‘삶의 전성기’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기록됐다고 엘파이스가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자연사’로 가려진 이주노동자 죽음들...폭염에 쓰러져갔다


수많은 카타르 이주 노동자들이 월드컵 건설 현장에서 사망했지만 정확한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가디언은 지난 10년 동안 카타르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 수가 6700명이라고 보도했고, 국제앰네스티는 1만5000명이라고 발표했다. 국제앰네스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망자의 70% 정도가 심장질환과 호흡기질환으로 인한 자연사다. 그들은 카타르로 이동하기 전 의무적인 의료 검사에서 모두 통과했다. 그러나 카타르 당국은 이들의 사망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고 있고, 이들이 업무와 관련이 있는지 조사하지 않았다. 그 결과 노동자의 유족은 고용주나 카타르 당국으로부터 보상받을 기회도 박탈당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카타르 월드컵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이주 노동자들의 관이 돌아오는 여정을 동반했다. 네팔 출신의 다섯 자녀의 아버지 크리팔 만달은 지난 2월 사망했다. 사망 진단서에는 사인이 ‘심장마비’로 나와 있다. 당시 그는 40세였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모하마드 카오 차르칸은 2017년 11월 침대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공식 사망원인은 ‘자연사로 인한 호흡 부전’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4세였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얌 바하두르 라나는 2020년 2월 또 다른 ‘자연적 원인으로 인한 심폐 부전’으로 사망했다. 그 역시 34세였다. 카타르에서 일하기 전 모두 건강 검진을 통과했다. 이후 그들은 카타르의 폭염에 장시간 노출된 뒤 사망했다. 당국은 그들 중 누구도 부검을 하지 않았다. 사인이 자연사인 만큼 유족 중 누구도 보상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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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도하 야외 작업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건설 노동자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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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월드컵은 처음으로 겨울에 열렸다. 기온 50도, 습도 90%에 이르는 6~9월 한여름 카타르의 살인적인 날씨에 선수들과 팬들을 노출시키는 것이 위험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월드컵 기반 시설을 건설하는 노동자들은 더위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수많은 노동자들이 카타르에서 사망했다. 하지만 카타르 당국이 월드컵과 관련 있다고 인정한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휴먼라이츠워치 중동 국장인 마이클 페이지는 “카타르의 자체 통계에 따르면, 건강한 젊은이들이 카타르에 도착해서 수천명이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자연사했다”고 비판했다. WHO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연속 보고서에서 뜨거운 온도에 노출된 뒤 며칠 만에 심장마비와 장기부전을 일으킨다고 경고했다. 국제노동기구 ILO는 카타르 당국이 ‘자연적 원인으로 인한 건강한 젊은이들의 사망’을 조사하여 가족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시정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2019년 노르웨이, 네팔, 호주, 키프로스의 전문가들이 2009년~2017년 사이에 카타르에서 네팔 노동자의 사망 증가 현황을 조사한 결과, 심혈관 질환에 기인한 사망자 571명 중 최소 200명이 극심한 열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문가들은 이들은 “적절한 보호 조치가 있었다면 사망을 피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보고서가 확산되면서 카타르는 지난해 6월부터 9월 중순까지 오전 10시에서 오후 3시30분 사이엔 야외 작업을 금지하게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고 휴먼라이츠워치는 지적했다. 그때까지 월드컵의 주요 공사는 이미 완료된 상태였다.

‘빚’내서 일자리 구했지만 유족에게 남은 건 대출금과 이자 뿐


카타르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이주한 노동자들 다수가 빚을 내서 일자리를 샀다.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수요가 엄청났기 때문에 그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모집 담당자에게 일종의 수수료를 지불한 것이다.

카타르에서 사망한 노동자 크리팔 만달의 부인 마누 데비(38)는 “우리가 가진 모든 돈을 모집 담당자에게 줬다”고 말했다. 모하마드 카오차르 칸 역시 카타르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방글라데시에서 전 재산 3915유로를 지불했다고 설명했다.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법은 이러한 관행을 금지하고 있지만 카타르는 이를 감시하지 않았다”면서 “수만명의 노동자가 카타르에서 일하기 위해 매우 높은 이자율로 대출을 받아 빚을 져야 했다”고 말했다. 빚을 져서 카타르에 일자리를 구했지만 결국 사망한 고인의 가족들은 이제 가장의 수입 없이 갚아야 할 빚만 남은 채 살아가고 있다. 또한 일부는 살아 돌아왔지만 무더위로 인한 신부전증 때문에 투석을 받아야 하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어 이전처럼 일을 계속할 수 없는 상태에 처했다. 이들은 계속해서 대출금과 높은 이자를 갚아야 하는 처지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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