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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저희는 도대체 왜 이런가요” 이태원서 또래 잃은 20대의 한탄이 오래가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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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핼러윈 참사 한 달, 세월호 스쿨닥터 김은지 재난 트라우마 전문가 인터뷰



세월호 참사를 겪은 세대에게 또 트라우마가 누적됐다. 10대 땐 한동안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는 배가 침몰해 친구들을 잃었기 때문이다. 20대가 되어선 대학 생활도 선배들처럼 자유롭게 누리지 못했다. 감염병 재난이 전 세계를 덮쳤기 때문이다. 이제야 모여보나 했는데 이태원 참사는 또다시 축제를 즐기려던 또래들을 집어삼켰다.

이태원 참사로 숨진 20대는 현재까지 106명이다. 전체 희생자 158명 가운데 가장 많다. 세월호 생존 학생들을 치료해 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은지씨는 진료실에서 ‘세월호 세대’의 탄식 섞인 한탄을 자주 듣는다. “저희는 도대체 왜 이런가요.”

켜켜이 쌓인 재난 트라우마를 회복할 방법은 무엇일까. 경향신문 영상 채널 ‘이런 경향’은 김은지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아동청소년위원장을 인터뷰했다. 김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 이후 생존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단원고등학교에서 2년간 스쿨닥터로 상주했다. 이후 재난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심리 치료를 진행해왔다. 사단법인 마음건강 이사장인 그를 지난달 21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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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스쿨닥터 출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은지씨가 지난달 21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양다영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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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참사 과정을 시민들이 목격했다. 세월호 참사는 뉴스 보도를 통해, 이태원 참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졌다.

이태원 참사의 영향으로 심리상담을 받은 시민 중 절반은 미디어를 통해 참사를 ‘간접 목격’ 했다. 최현정 한국심리학회 재난심리위원장은 지난 1일 열린 ‘재난 상황에서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심리지원 정책 토론회’에서 참사 이후 약 한 달 동안 일대일 심리지원을 받은 대상자가 221명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6%가 사고를 직접 목격하지 않고 뉴스로 접한 불특정 다수였다.

김 위원장은 “간접 트라우마가 누적되면 큰 트라우마처럼 정신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재난 이후 처음 3~4일은 누구나 회피, 재경험, 과각성 같은 증상이 생길 수 있어요.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증상이 계속된다면 일상생활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해요”라고 말한 그는 이번 참사 트라우마를 회복하기 위해 “사회적 지지”를 보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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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7일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교실 칠판에 전남 진도 해상에서 실종된 학생들이 꼭 돌아오길 기원하는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다. 정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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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일주일째인 2014년 4월 22일 오전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교실 책상에 희생자들의 영면을 기원하는 국화꽃이 놓여 있다.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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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겪은 세대에게 또 트라우마가 누적됐다면서요.

“진료실에서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세월호 세대’인 친구들이 투덜거리면서 얘기하더라고요. ‘저희는 도대체 왜 이런가요’라고요. 올해 들어서 코로나가 어느 정도 가라앉고 ‘이제 취업할 수 있을 거야’ ‘모여서 무언가 할 수 있을 거야’라고 기대했었는데 이태원 참사로 인해 한 번 더 꺾인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 20~30대가 슬픔, 절망감, 무력감을 많이 호소한 이유 중 하나였을 겁니다. 그 친구들과 같은 세대고, 얼마나 어렵게 이 시기를 지나왔는지 공감하기 때문인 거죠.”

-사건을 간접적으로 접해도 트라우마가 생기나요.

“세월호 참사 이후 마음을 크게 다치면 트라우마가 생긴다는 사실이 많이 알려졌죠. 트라우마는 교통사고를 당했거나 살인 현장을 목격했을 때만 발생하는 게 아닙니다. 직접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를 보거나 들을 때도 간접 트라우마가 쌓일 수 있어요. 재난 피해자를 상담할 때나 사고 영상에 자주 노출됐을 때 등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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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9일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인명사고 현장에 30일 새벽 핼러윈 호박 모형이 놓여 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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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의 유형은 무엇이 있나요.

“트라우마는 ‘빅 트라우마(Big Trauma)’와 ‘스몰 트라우마(Small Trauma)’로 나뉩니다. ‘빅 트라우마’는 죽을 뻔한 큰 사고를 당한 걸 말해요. 예를 들어 비행기나 자동차 사고를 당했거나 강도를 만난 상황 같은 거죠. ‘스몰 트라우마’는 그 정도로 강력한 건 아니지만 직간접적으로 일상에서 자잘하게 생기는 사건을 말해요. 학교에서 친구들이 놀렸다거나 창피를 당한 상황이 대표적이죠. 여기에 이번 이태원 참사 현장을 SNS 영상으로 접한 분들이 포함됩니다. 그동안 트라우마 연구는 ‘빅 트라우마’에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전문가들은 간접 트라우마가 오랫동안 누적되는 걸 경계해야 한다고 말해요. 큰 트라우마와 비슷한 증상을 보일 수 있거든요. 심각한 정서적 영향을 줘서 정신 건강을 해칠 수 있어요.”

-참사를 간접 목격한 시민들에게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 관련 뉴스를 많이 본 시청자를 연구한 결과를 보면요. 텔레비전 노출이 많을수록 불안 증상이 더 높다는 해외 연구 결과가 있었어요. 미디어 노출 자체가 스트레스 증상을 만드는 주요 원인이었죠.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연구가 있는데, 사고 영상에 많이 노출된 사람들이 불면, 불안, 자살 사고 등을 더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참사 이후에도 특정 장면이 자꾸 생각나고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자려고 누워도 영상이 떠오르고 계속 긴장된다면 ‘간접 트라우마가 생긴 게 아닐까’라고 의심해봐야 합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트라우마 증상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첫 번째는 회피. 사고 때와 비슷한 상황을 피하게 되는 겁니다. 최근 많은 분들이 이야기한 ‘출근할 때 지하철을 타는 게 두렵다’ ‘약속을 취소한다’ ‘사람 많은 곳 가는 게 꺼려진다’ 등의 경우가 회피에 해당하는 증상입니다. 회피 증상은 일상생활에 가장 많은 어려움을 초래합니다. 사람을 만나거나 바깥에 나가는 게 어려워지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학교 폭력을 당한 친구는 학교를 피하게 되는 식으로요.

두 번째는 재경험. 그때의 상황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겁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이 달리는 차를 보면서 그 차가 자신에게 달려들 것처럼 느껴지는 게 대표적인 증상입니다. 이번 참사 이후 만원 지하철에서 ‘숨쉬기 힘들었다’라고 이야기하신 분들도 재경험 증상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은 과각성. 트라우마 기억이 몸에 남아 신체가 트라우마 상태가 되는 거예요. 작은 소리, 밝은 빛, 촉감에 예민해지면서 트라우마를 다시 떠올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증상들이 계속 진행되면 점점 밖에 나가는 게 힘들어지고, 피하는 게 많아지고, 몸이 과각성 상태에 놓이기 때문에 예민해지고 무력해지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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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경기 안산시 한 스튜디오에서 세월호 스쿨닥터 출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은지씨가 재난 트라우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양다영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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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너무 빨리 돌아온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니냐는 독자 사연도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이 저를 찾아와서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참사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저는 벌써 잊어버린 것 같아요.’ ‘3주밖에 안 지났는데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도 괜찮은가요.’ 하지만 애도와 내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경계가 있어야 합니다. ‘애도하는 나’도 있지만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나’도 있는 거죠. 엄마의 딸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애인이기도 한 것처럼요. 그래서 희생자분들께 편지를 쓰는 시간을 따로 둔다든지 해서 내 삶을 사는 시간과 애도하는 시간을 분리하라고 권유합니다.”

-트라우마에서 회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재난 이후 트라우마로 발생할 수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그 원인이 외부에서 온다고 정해진 유일한 정신과 질환입니다. 따라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회복도 외부로부터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죠. 저는 세월호 생존 학생들을 긴 시간 봐왔는데요. 이 친구들을 연구하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외상 후 울분 장애(PTED)가 진행될 때 ‘사회적 지지’가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재난 경험자들을 어떻게 돕느냐, 어떻게 지지하느냐에 따라서 트라우마가 외상 후 ‘장애’가 될 수도 있고, 외상 후 ‘성장’이 될 수도 있는 거죠.”

-이번 이태원 참사도 ‘사회적 지지’를 보내는 게 중요하겠습니다.

“다른 재난보다도 이번 이태원 참사는 ‘사회적 지지’가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일이 혼자 고립된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잖아요. 다수가 함께 있는 공간, 많은 이들이 즐기는 축제에서 발생한 재난입니다. 우리는 보통 힘든 일이 있으면 주변 사람에게 의존합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하다 보면 마음이 편해진 경험이 다들 있을 거예요. 우리는 관계를 통해서 내 안의 크고 작은 상처들을 회복해 나갑니다. 이번에 사고 현장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분들도 소통하는 과정에서 회복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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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일어난 골목에 지난달 20일 시민들의 추모 메시지가 붙어있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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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에 이어 직간접적으로 이태원 참사를 겪은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많은 분들이 끔찍한 트라우마를 경험하세요. 그렇다고 해서 그분들의 삶이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많은 사람은 ‘생존자들이 과연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라며 걱정했었죠. 하지만 그 친구들은 자기 삶을 대부분 살아가고 있어요. 물론 증상이 없거나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닙니다. 큰 고통을 경험하더라도 살아갈 힘이 우리한테 있다는 거죠. 그래서 트라우마를 겪은 분들께 ‘당신도 힘들지만, 이 순간을 지나갈 수 있다’라고 말씀드립니다.”

-트라우마를 회복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을까요.

“‘어떡하면 이 감정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저희가 그다음에 해야 하는 건 뭘까요?’ 이런 질문을 종종 받을 때면 오히려 되묻습니다. ‘그다음 무얼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셨어요?’라고요. 아마 많은 분들이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무력하게 많은 사람을 잃지 않을 수 있었으면’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지금은 비록 힘들고 슬프지만,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이 될 수 있습니다. 1999년 화성 씨랜드 화재 사건이 있었어요. 아이를 잃은 부모님의 트라우마는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분들이 시작한 게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이었어요. 부모님들은 한국 어린이 안전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트라우마 회복에 잘못된 타이밍은 없어요. 본인이 할 수 있을 때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크고 작은 작업을 시작하는 거죠. 자신의 삶을 존중하기 위해서 트라우마를 고민하고 회복하고 통합하는 과정만 있을 뿐입니다.”

▶ ‘이태원 참사 한 달’ 시리즈 1회 보러 가기

‘슬퍼할 자격’ 묻는 시민에게 세월호 스쿨닥터가 한 말

https://www.youtube.com/watch?v=Gd0BxQWTS40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11292208001

양다영 PD young@kyunghyang.com

▶ 백래시의 소음에서 ‘반 걸음’ 여성들의 이야기 공간
▶ 이태원 참사 책임자들 10시간 동안의 타임라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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