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 시위 펼치는 베이징 시민들 |
(베이징=연합뉴스) 한종구 특파원 =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던 중국 사회가 하루아침에 '위드 코로나'를 경험하고 있다.
수도 베이징의 쇼핑몰은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았고, 도심 곳곳에 자리 잡은 유전자증폭(PCR) 검사소는 개점 휴업 상태다.
상시적 PCR 검사, 감염자 집단격리시설 이송, 대규모 주거단지 봉쇄 등을 폐지하며 방역 만리장성의 문턱을 대폭 낮추면서 불과 며칠 전까지 코로나19 확산을 막겠다며 식당 내 식사를 금지하고 공공장소 출입에 48시간 이내 실시한 PCR 검사 음성증명서 제출을 의무화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됐다.
자칭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방역 정책이라며 3년 가까이 고집하던 '둥타이칭링'(動態淸零·역동적 제로 코로나)을 수정한 배경은 무엇일까.
관영 매체들은 오미크론 변이의 독성이 낮아져 그에 맞춰 방역 조치를 조정했다고 하지만, 오미크론 변이가 출현한 지 1년이 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문가들은 오랜 봉쇄에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방역 완화를 결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당국도 지난 7일 방역 완화를 발표하며 "더 과학적이고 정확한 방역과 방역 작업에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라며 민심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했다.
코로나19 검사받기 위해 줄 서 있는 베이징 시민들 |
최근 중국 전역에서 발생한 제로 코로나 반대 목소리와 장쩌민 전 국가 주석 사망 등 큰 사건의 흐름을 살펴보면 배경은 더 명확해진다.
집단행동이 처음 목격된 곳은 지난달 25일 신장위구르차치구의 수도 우루무치다.
우루무치 한 아파트에서 주민 10명 숨지고 9명이 다치는 화재가 발생했는데, 아파트 봉쇄를 위한 시설물 때문에 진화가 지연돼 피해가 커졌다는 주장이 확산하며 주민들이 봉쇄 해제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시위는 이튿날 우루무치에서 3천200㎞ 떨어진 상하이로 확산했다.
상하이 주민 수백 명은 우루무치 참사에 분노를 표출하며 봉쇄 해제를 주장했고, 일부 주민은 '공산당 물러나라'라거나 '시진핑 물러나라'는 정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베이징 중심가에서도 주민 수백 명이 당국의 사과와 함께 제로 코로나 철회를 촉구하는 이른바 '백지 시위'를 벌였다.
우한, 청두, 난징, 광저우, 란저우 등 대도시에서도 시위가 벌어졌고, 명문 베이징대와 칭화대에서도 제로 코로나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중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진 것은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 이후 처음이다.
장쩌민 전 중국 국가 주석 추도대회 |
그러던 중 지난달 30일 장쩌민 전 주석이 사망했다.
장 전 주석의 사망은 제로 코로나로 숨이 막히는 일상과 오랜 경기 침체에 환멸을 느낀 중국인들에게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장쩌민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온라인에서는 장 전 주석 추모를 기회로 시위를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여기에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꼽혔으나 학생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실각한 후야오방 사망 사건이 톈안먼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는 점도 중국 긴장하게 했을 것이다.
공안이 밤마다 도심 번화가를 집중 순찰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결국 당국은 장쩌민 추도대회 다음날 갑자기 방역 완화 조치를 발표했다.
강력한 봉쇄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경제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로 부작용이 속출하는 상황에도 제로 코로나를 고수했으나, 방역 정책에 대한 불만이 반(反)체제 시위로 악화할 기미를 보이자 수정에 나선 것이다.
경제 악화 등 다른 상황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민심을 잠재우려는 의도가 가장 컸을 것이라는 게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다.
강력한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시민의 힘이 당국을 변하게 했다는 점은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중국인들도 이번 일을 계기로 '당신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아무도 당신의 운명을 개선해 주지 않을 것'이라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말을 온몸으로 깨달았을 수 있다.
방역 완화를 끌어낸 중국인들이 이번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도 새로운 변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지에 세계의 시선이 모일 것으로 보인다.
j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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