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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화물연대 총파업

“저는 ‘안전운임제 폐지’에 겁먹고 강제노역을 하는 차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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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개시명령에 어쩔 수 없이 운전대 잡은 30년차 화물기사의 ‘분노’

경향신문

화물연대 파업을 지지하는 비조합원 화물기사 조동현씨가 자신의 차량에 ‘강제노역 차량입니다’라는 문구 등을 적은 현수막을 매달고 운행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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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군 북쪽 끄트머리의 한 산중턱을 30년차 화물기사 조동현씨(51)와 그의 낡은 볼보 450마력 트레일러는 매일같이 오른다. 산골을 가로지르는 편도 2차선 도로를 오르면 시멘트 공장이 나온다. 이 공장에서 생산된 시멘트를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에 채워 전국 곳곳으로 나르는 게 그의 일이다.

이 지역에 눈이 내린 6일 오전에도 조씨와 BCT는 미끄러운 언덕길을 천천히 올랐다. 2014년식 구형 BCT는 빙판길에서 자주 멈칫거렸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가 13일째 파업 중이지만, 정부가 시멘트 화물기사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려 공장에는 BCT가 계속 오갔다.

조씨는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내려진 다음날인 지난달 30일부터 트레일러 앞면에 스스로 만든 주황색 현수막을 걸고 운행 중이다.

“법과 원칙에 의한 강제노역 차량입니다. 안전운임제 폐지와 유가보조금 폐지에 겁먹은 차주가 운전 중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강제노역 차량’과 ‘겁먹은 차주가 운전 중’이라는 문구는 빨간색이다. “동네 인쇄소에 5만원 내고 맡겼어요.” 디자인은 인쇄업체가 했지만 문구는 조씨가 직접 정했다.

화물연대 소속이 아닌 조씨는 지난달 24일 시작된 화물연대 파업에 ‘비조합원’으로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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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끼니 해결해요” 화물연대의 파업을 지지하는 비조합원 시멘트 화물기사 조동현씨가 6일 충북 단양시의 한 시멘트 공장에서 평소 끼니를 해결하는 음식들을 들어 보이고 있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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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고 하는 건데 범법자로 몰아…노예 된 것 같다”

강제로 운전대 잡은 30년 화물기사의 ‘분노’

파업 동참 못한 미안함에
억울함 담은 현수막 제작
“옛날로 돌아갈까봐 걱정”


화물연대 초창기에 잠깐 가입했다가 ‘노조 활동이 안 어울리게 느껴져’ 탈퇴한 뒤로 처음 단체활동에 참여했다. 지난 6월 파업에도 동참하지 않았지만, 최근 정부가 안전운임제 추진 약속을 미루고 화주 처벌 면제까지 추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안전운임제 적용 대상인 BCT를 모는 그는 제도 시행 이전을 똑똑히 기억했다. 화주는 내키는 대로 운임을 정했다. 기사들은 거래가 끊길까봐 억지로 저가 운행을 맡아야 했다. 하루 16~17시간, 한 번에 최장 26시간까지 일하고 집에 월 200만원 남짓 가져다줬다. “돈 벌고 픽 쓰러져 자고 다시 새벽 3시에 나가는” 동안 딸들은 “뭐 하고 다니는지도 모른 채” 20대로 성장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며 그도 화물연대와 함께 차를 세웠다. 지금도 그의 차엔 소화제와 파스, 3000㎎ 고용량 비타민제 등이 가득하다.

안전운임제가 적용된 지금은 정해진 운임을 보장받을 수 있어 형편이 나아지고 여유도 생겼다. 과거엔 하루 4시간짜리 운행 ‘4탕’을 뛰어도 빠듯했다면, 지금은 ‘2탕’을 하고 귀가해 가끔 딸들과 야식도 함께할 수 있다. ‘목숨을 걸고 운행하던’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며 그도 화물연대와 함께 차를 세웠다.

시멘트 화물기사들은 파업에 들어가기 전 시멘트를 공급받는 거래처들의 사일로(저장고)를 가득 채웠다. 조씨도 거래처를 돌며 사일로를 채웠다.

“우리가 파업한다고 공장도 같이 죽자는 뜻은 아니거든요.”

그러나 정부는 대화 의지가 없었고 교섭은 평행선을 달렸다.

거래처 사일로가 비어가던 지난달 29일, 조씨는 운송사 사무소장과 지역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기사들의 사정을 다 아는 사무실 소장은 ‘업무에 복귀하라’고 섣불리 말하지 못했다. 서울 사무실에 다녀오겠다며 나선 소장은 곧바로 다시 돌아왔다. 서울 사무실에 국토교통부 직원과 경찰이 들이닥쳐 명단을 달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돌아온 것이었다. 때마침 사무실 라디오에서 정부가 시멘트 화물기사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어떡하지, 일해야 하나….” 망설이는 소장을 보며 조씨는 결국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거래처에서는 시멘트가 떨어진다고 하고, 저기(정부)는 강제로 일하라고 압박하고,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거죠.”

그날 밤 조씨는 잠들지 못했다. “공산국가도 아닌데, ‘친애하는 영도자 윤석열 각하님’께서 명령을 내리시는 것도 아니고….” ‘노예가 된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자 그는 휴대전화를 들고 현수막 문구를 적어 내려갔다. “법과 원칙이라는 얘기를 정부가 계속하니까” ‘법과 원칙’을 적었다. “이게 강제노역밖에 더 되나” 싶어서 ‘강제노역’을 적었다. “안전운임제와 유가보조금이 없어지면 일을 그만두고 차를 팔아야 해서” ‘안전운임제’와 ‘유가보조금’을 적었다. 다음날 인쇄소에서 현수막 5장을 뽑아 한 장을 차 전면에 내걸었다.

“파업에 함께하지 못해 미안해서 이거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조씨는 현수막을 계속 걸고 다닌다. 현수막을 걸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할까 봐 무섭다고 했다. 그러나 미안함을 갚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했다. 조씨는 “BCT 업계는 바닥이 좁아서 기사들도 다 동료고 아는 선후배”라며 “지금 운행하는 기사들 모두 파업 중인 기사들에게 미안해하고 있다”고 했다.

조씨가 만든 현수막 5장은 지금 모두 바닥났다. 업무개시명령을 받고 나온 다른 비조합원 BCT 기사들이 “그거 나도 한 장 줄 수 있냐”며 하나씩 얻어갔다고 했다.

“누가 잘했든 잘못했든, 난 정치 하나도 모르고 운전밖에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 그런데 멀쩡히 운전하는 사람들, 정치적인 게 아니라 살려고 하는 건데 범법자로 만들어가지고…. 일하면서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해요.”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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